“대선은 뜨거운 용광로입니다. 국민들의 쌓인 열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축제의 장이지요.”


바로 그 축제의 장을 열기 위한 서막, 여당인 새물결 미래당의 경선 레이스로 드라마 <프레지던트>는 시작한다. 49세의 3선 의원 출신 장일준(최수종)은 이 승부에 모든 것을 걸었다. 늘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이 나라에서 조직도, 계파도 없는 자신이 그나마 지금의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선전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이라는 판단에서다.
 

젊은 시절 시민운동가로 활동했지만 재계 3위의 재벌기업 사위라는 아이러니한 이력의 소유자 장일준을 세간에서 부르는 말은 ‘박쥐’. 그의 행보 역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마땅히 추구해야할 정도(正道)에서 살짝 비켜서 있다, 장일준은 현명하지만 영악하기도 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고 싶어 하지만 현실정치의 모순과 한계를 그대로 인정하며 이기기 위해서라면, 속임수와 편법일지라도 과감히 실행한다. 당내 보수파이자 무려 5선의 국회의원 경력을 가지고 있는 박을섭 후보의 성추문을 터뜨리고 그 피해가 또 다른 경선후보인 신희주에게 돌아가는 것을 모른 척 방관하거나, 캠프의 전략기획실장이 청와대를 해킹해 얻은 정책을 후보토론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써먹기도 한다. 그 때마다 “변했다.”, “이런 사람이었냐.”라는 따가운 질타가 쏟아지지만 장일준은 이렇게 대답한다. “난 변하지 않았어. 다만, 이번 승부에 모든 걸 걸었을 뿐이야.” 반드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욕심과 자신의 당선을 위해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그의 “뜨거운 권력 의지”를 주물(鑄物)화한다.

실제로 장일준이 처한 상황과 처지를 따져보면 그의 변명은 단순 궤변이 아니라는 판단이 든다. 처가가 탄탄한 재력을 갖췄다는 게 강점이긴 해도, 앞서 언급했듯, 그는 조직도 계파도 없으며 선거 도중이야 “상대방을 추월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을 위반하기도 하고 신호를 무시하기도 하는” 처사를 벌이지만 백로까진 아니더라도, 본래 원리원칙을 따지는 인물이라는 설명이 주변인들의 입을 통해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바, 그 꼿꼿한 자세가 적도 많이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새물결 미래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 후보인 김경모 후보는 굳건한 지지율과 신사적 이미지, 장일준을 능가하는 자금력, 그리고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암묵적이고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다. 이런 현실이 “정직하게 선거를 치르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그의 변명에 동조하게 만든다.

그러나 장일준의 비열한 모습도 눈 감게 하는 것은 그의 열악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장일준은 드라마 내내, 왜 그가 대통령감인지를 증명한다. 특히 사람을 포섭하고 설득할 때, 그의 현명함은 장기가 되어 빛난다. 당 대표이자 가장 많은 계파를 거느린 ‘고상렬’과 대한민국 정치의 산증인이자 거두인 ‘청암’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부터 말해 보자. 두 인물은 장일준이 돈을 흘리거나 넙죽 엎드린다고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감정의 골이 매우 깊기 때문이다. 고상렬은 장일준이 시민 운동하던 시절, 강경 반노조 발언을 빌미로 협박이 오고갔으며 청암과는 그의 형 장일도의 죽음 문제와 관련해 악연이랄 수 있는 관계였다. 정치 9단을 넘어 10단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장일준이 쓴 무기는 ‘진심’이었다. 도움이 절실하고 수세에 몰렸다고 비굴하게 굽실대는 게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어필하고 치부 많은 둘의 정치인생을 날카롭게 찌르기도 한다. 고상렬에겐 초선의원 시절의 패기와 열정을 일깨우면서, 청암에겐 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오늘날처럼 만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한다며 화해를 건넨 것이다. 청암과 고상렬이 미움으로 얽혀있는 장일준을 결국 지지하게 되는 모습은 장일준의 승리에 대한 카타르시스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작가는 타락하고 썩어 권력만 탐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쇠한 정치인들에게도 마음 한 자락에 순수함이 조금은 남아있으며 그것을 자극해 화합으로 승화시킬 인물이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장일준에게 투영한 것 아니었을까.

장일준과 그의 라이벌들의 관계 역시 주목할 만하다. 최초의 여성검찰총장 출신이며 장일준과 동년배인 신희주는 ‘정의 ․ 법치 ․ 원칙 주의자’이다. 정치경력이 없는 그녀는 아직 현실정치에 물들지 않았고 검찰총장 재직 시절, 정치거물들의 비리를 척결하며 그 원리 원칙 하나로 젊은 층의 견고한 지지를 얻었을 정도로 강직하다. 당초 장일준을 신선하고 영민한 소장파라 좋게 보았던 신희주는 지지율 1위인 김경모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장일준과 단일화하는 과정에서 “너무 거짓말에 능하고 술수가 뛰어난 사람”이라며 그를 마땅찮아 한다.

“정치는 선과 악의 게임이 아니다.”라는 장일준과는 달리 신희주에게 선과 악, 옳고 그름은 너무나 분명했고 “적당히 검은 손과 타협하는 정치를 깨부수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했던 신희주는 현실 정치의 비정함을 다 알게 되자 단일화캠프에서 사퇴하며 정치계도 은퇴한다. 그러나 그녀는 은퇴를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장일준에 대한 지지만은 철회하지 않는다. 소신이 목숨처럼 중요한 신희주이지만 장일준이 반칙을 동원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만은 믿었기 때문이리라.

김경모 역시 꼼수를 경멸하며 야합과 음모가 난무하는 구시대 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고자 한다는 점에서 신희주와 같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된다면 장일준에게 총리직을 맡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장일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열세에 있는 장일준이 자꾸 반칙을 하자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온화하고 신사적이며 정도와 엘리트로서만 살아온 김경모는 드라마가 중반에 이르기까지도 난공불락의 지지율 1위를 고수하지만 그의 실패는 시청자의 눈에 뻔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김경모와 장일준이 신희주를 서로 포섭하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에서 장일준이 신희주에게 한 말로 잘 나타낸다. “배부른 사자는 먹이를 사냥할 수 없습니다. 김경모 후보는 이 사회의 상류층에서만 살아온 사람입니다. 배고파 본 적도 없고 배가 고파도 고고하게 살아온 타성에 젖어 본인이 사냥하길 거부할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좋은 행정가는 될 수 없어도 결코 선거에서는 이기지 못합니다. 신 후보도 젊은 나이부터 주류를 걸어왔지만 우린 둘 다 배고픔이 뭔지를 아는 환경에서 자라왔습니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거든 제 정책을 보십시오. 신 후보가 만들고 싶어 하는 나라는 제게 가깝습니까, 김경모 후보에게 가깝습니까.”

김경모와 신희주, 대선 경쟁자인 창조 한국당의 한대운 후보까지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성격 면에선 오히려 장일준보다 더 드라마 주인공다운 전형성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정직하고 바르고, “졌으면 졌지, 지저분하고 부끄러운 승부는 펼치지 않겠다.”는 게 그들 모두의 다짐이다. 헌데 신희주는 정치 경험이 없고, 김경모는 총리까지 지냈지만 학자와 행정가로서만 살았지 역시 정치꾼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다가 한대운마저 당대표를 3년이나 맡았다지만 어쨌든 의회 경력은 재선밖에 되지 않는다. 확실히 박을섭, 고상렬, 청암과 같은 노련한 정치인과는 아니다. 올림픽보다 더한 ‘선거’라는 경쟁에서 장일준보다 전투적이지 않고 고고할 수 있었던 이유가 현실 정치에 몸담은 경력이 짧기 때문이라는 논리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진실이었다.

장일준이 원하는 자리, 그 자리가 무려 일국의 ‘대통령’인 만큼, 장일준은 그 자신을 능력을 넘어서는, 더 큰 것을 요구받는다. 바로 주변인들의 ‘희생’이다. 어쩌면 장일준의 대통령을 향한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희생’을 발판으로 지르밟아 온 길일지도 모른다. 시작은 그의 형 장일도의 사형이다. 대학시절 정의감으로 군사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던 장일준은 모진 고문에 못 이겨 그의 형이 뒷배를 보아준다며 거짓자백을 해 버린다. 장일준은 자신의 형이 훨씬 더 그릇이 큰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훨씬 더 먼 미래를 봐. 싸우는 것도 이해하지만 네가 만들고 싶은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이 나라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넓게 봐야 해.”라고 말하던 사람이 바로 장일도였다. 대통령의 꿈도 본래 장일도의 것이었다. 장일도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이 나라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위해 나아가야하는지 고민하던 지식인이었고 그를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책을 읽었을 뿐, 당시 정부에 작은 반항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을 수양하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기꺼이 동생을 대신해 간첩혐의를 받고 사형 당한다. 죽은 장일도의 정신은 곧 장일준의 그것이 되어 이후 ‘정치인 장일준’의 철학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장일준이 청암의 마음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발언도 장일도가 그에게 해 준 말. “분노는 세상을 부술 수는 있어도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 연민으로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상대를 불쌍하게 보고 이해하는 것이 시작이다.” 드라마 내내 장일준은 단 한 번도 주인공의 특권인, 능력 있는 주변인의 도움이나 요행으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없다. 강철 같은 정신력으로 무장한 장일준에게도 대선 레이스는 거대한 산이었을 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 잡고 대통령에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은 죽은 형의 유지를 받들어 “화국의 나라, 흑과 백이 비기는 나라, 상하가 반목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일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캠프 선거본부장 이치수도 마찬가지다. 장일도의 절친한 친구이자 장일준의 고향 선배인 이치수는 장일준을 무척이나 아끼며 그의 능력과 그릇을 신뢰한다. 장일준의 참모로서 꼭 장일준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던 이치수는 장일준이 처가인 대일그룹 비자금 사건이 터지자 몰래 저격사건을 계획하고는 모든 책임을 혼자 지고 감옥에 들어가 버린다. 죽은 장일도와 장일준, 그리고 이치수가 만들고 싶었던 새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하지만 장일준을 위해 가장 많은 고통을 참아내야 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장일준의 ‘가족’이다. 장일준이 결혼 전 낳았던 숨겨진 아들 유민기는 대통령 후보자인 아버지를 둔 탓에 세상사람 누구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힐 수가 없다. 장일준의 아내 조소희 역시 남편의 숨겨진 아들의 존재와 남편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의심으로 괴로워한다. 가장 눈에 띄는 희생을 치른 사람은 장일준을 무조건 응원했던 장인 ‘조태호’. 대일그룹의 명예회장이자 대한민국 경제신화의 주역인 조태호는 대일그룹 비리문제가 터지자 사위인 장일준에게 자신을 비판하라고 하는가 하면 걸음도 못 걸을 정도로 노쇠한 나이에도 구속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못 입고 못 먹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기업가 조태호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 대통령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일준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불사한다. 유민기의 생모를 죽이고 유민기의 존재를 아는 방송국 기자까지 죽여 버린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장일준에게 조태호는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우리 집에 오던 날, 꿈이 뭐냐고 물어 봤었지. 자넨 대통령이라고 했어. 그런데 신기한 것은 코흘리개 어린애들이나 대답할 법한 그 말에 내가 믿음이 생기더란 거야. 그 때부터 나는 자네를 꼭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마음을 먹었지. 내 죄는 내가 다 안고 가겠네. 자네는 어떤 죄책감도 가지지 말고 부디 역사에 남는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게.” 그리고 범행을 저지른 심복과 함께 교통사고로 자살한다.

장인의 죽음 후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회의감을 품은 채, 선거 전 마지막으로 치른 대선후보자간 TV토론회에서 장일준은 국민을 향해 외친다. “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대통령될 자격이 없는 사람일 지도 모릅니다. 항상 올바른 길만 걸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저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국민 여러분들께 요구합니다. 희생하십시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십시오. 이 나라는 가난과 전쟁의 질곡 속에서 오늘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못 먹고 못 입으면서 당신들의 피와 땀을 희생해 오늘 이 나라를 이끌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모두들 복지를 외치면서 아무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잘 사는 복지는 돈이 들어가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두려워, 여러분들의 그 이기심이 두려워 아무도 세금을 더 내라는 말을 못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요구합니다. 미래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지금 고통스러워도 당신들의 후손들을 위해 희생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들의 이웃을 살찌우고 이 나라 경제를 살리고 흑과 백이 공존하고 상하가 다투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길입니다. 저는 그런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가엾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 제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TV토론회를 마지막으로 장일준의 대선 레이스는 끝이 난다. 그리고 이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준 후에야 얻은 대통령의 자리. <프레지던트>의 마지막 씬은 넓은 집무실에 혼자 고독하게 앉아있는 ‘대통령 장일준’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 집무실의 크기만큼이나 대통령 장일준이 감당해야 할, 대통령이 되기까지 벌였던 싸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힘겨운 싸움이 놓여있다는 것이 <프레지던트>의 결말이다. 여기서 장일준에 대한 파토스는 정점을 찍는다.

“그가 말했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이 나라가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정치인은 기득권을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어쩌면 대통령이 되어서 더 힘든 싸움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거대한 벽에 부딪혀 그가 꿈꾸던 것을 이루지 못할 지도 모른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고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어 그 뜨거운 권력의지로 그는 무엇을 하려 했던가. 그는 왜 그리도 힘든 길을 가야만 했던가.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드라마 프레지던트 中>

수천, 수만년의 문명사가 이어지는 동안, ‘군주’는 많았어도 ‘성군’은 드물었다. 정치에 대한 만성적 냉소가 익숙해진 유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장일준이 꿈꾼다는 “화국의 나라”는 실현 자체가 시대적 핸디캡에 부딪혀 부서질 수 밖에 없어보인다. 절대왕정도 아니고, 지금처럼 고도로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수없이 얽혀있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완벽하게 조정하고, 모두의 지지를 얻는 대통령은 그야말로 환타지에서나 등장할 소리가 아닌가. 그러나 시작만 보여주고 끝난 ‘대통령 장일준’의 결말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건, 아무리 냉소가 불치병으로 굳어졌더라도 이 드라마가 쌓아올린 이야기의 중심, ‘장일준’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어보고 싶은 시청자의 마음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