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프로그램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퀴즈프로그램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장학퀴즈>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했고, 시간이 지나서 <가족 오락관>과 같이 연예인들이 나와 여러 퀴즈를 푸는 방식도 있었으며, 최근에는 이 두 방식이 적절히 조화된 KBS의 <1대100>이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1월 9일 막을 올린 <1억 퀴즈쇼>는 진행자가 문제를 내면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답을 보내고 그 자리에서 당첨자를 뽑는 방식으로 기존의 퀴즈쇼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에 힘입었는지 3번의 정규방송으로 10%대의 시청률을 넘보며 좋은 반응이 오고 있다. 하지만 ‘1억’과 ‘희망’을 선물하겠다는 <1억 퀴즈쇼>의 뒤에는 절망이 공존한다. 

 

사람들이 퀴즈쇼를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로는 ‘지적능력’을 통한 대박의 꿈이며 둘째로는 퀴즈쇼에 나오는 주인공을 통한 ‘대리만족’이다. 그런데 <1억 퀴즈쇼>에서 이 두 가지의 요소는 모두 변질되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키는 치킨은? 후라이드치킨” 과 같은 통계적인 문제나 신조어문제와 같은 ‘지적능력’과는 거리가 먼 문제들을 출제함으로써 퀴즈가 복권화(운에 따른)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그리고 기존에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에서 멈추던 시청자들이. 이제는 직접 참여하게 되면서 극소수의 희망을 위한 다수의 절망을 경험해야한다.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100원의 참가비에 기부라는 명목을 부여해준다. 그리고 한껏 들뜬 당첨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서 “너희도 하다보면 당첨될 수 있어”라는 희망고문을 한다. 결국에 진행자가 아닌 바람잡이 역할을 하고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절망은 외면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마지막 문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000만원이 넘는 문제를 푸는 참가자들이 문제를 틀리면 아무 언급 없이 전화가 끊긴다. 희망은 극대화시켜 보여주면서 절망은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프로를 비판 없이 수용하다보면 “나도 하다보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과 그 이후 찾아오는 절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게 된다. 

필자는 2011년에 KBS의 <1대100>에 100인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탈락했지만 ‘다음 번에 공부를 더 해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왔다. 하지만 <1억 퀴즈쇼>에서 화면에 내 번호가 보이지 않으면 그저 절망할 뿐이다. 그 상황에서 ‘다시 문자보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더 노력해야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퀴즈쇼에서 상금은 동기부여가 되어 시청자(참가자)의 지적욕구를 자극하여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1억 퀴즈쇼>에서 1억은 그저 목적일 뿐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한다. 
 
2월2일 <1억 퀴즈쇼>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사행성 조장’측면에서 주의조치를 받았다.  <1억 퀴즈쇼>는 이를 계기로 미디어의 역할, 나아가서 퀴즈쇼가 주어야할 지적 즐거움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봐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