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 나오는 정 많은 하숙집 아주머니는 현실 속에도 있다. 하지만 아주 운 좋은 경우에만 그렇다. 수많은 하숙생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주거에서 느끼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좁은 방, 식사 문제, 온수 사용 문제 같은 생활 속 문제에서부터 하숙 보증금, 하숙비 선납 같은 민감한 돈 문제까지. 매년 학기 초 이사철마다 꾸준히 지적되지만 개선의 여지가 안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숙생 수난기

대학생 이은정(23) 씨는 하숙집에서 지내던 시절을 떠올리면 끔찍한 기분이 든다. 책상, 침대, 헹거가 들어가면 꽉 차는 신촌의 하숙집은 한 달에 47만 원을 받았다. 최저주거기준(12㎡) 보다도 작은 방이었다. 온수 사용, 식사 시간, 냉난방을 다 주인이 통제했기 때문에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찬물에 씻고, 냉골에서 자고, 굶어야 했다. 오며가며 마주칠 때면, 하숙집 주인 부부는 이번 달 물값이 어쩌고 식대가 어쩌고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저는 돈을 내고 방을 쓰는 거기 때문에 물, 가스, 전기를 쓸 권리가 있고 생활에 참견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분들은 아니더라고요. 어쩌면 한 쪽의 이익이 상대방의 손해가 되는 상황에서 양쪽이 얼굴을 맞대고 같이 살아야하는 게 하숙의 근본 문제인 것 같아요.”

ⓒ 동대신문
하숙 생활이 불편하다는 말이 나와도, 하숙집에 들어가기는 오히려 어려워지고 있다. 동국대에 재학 중인 네티즌 ‘또라이’ 씨는 전역 후 하숙집을 구하려다가 충격을 받았다. 주인이 6개월분의 하숙비 선납을 요구한 것이다. 50만 원씩 6개월이니 300만 원,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가격이다. 하숙 보증금 문제도 있다. 취재 결과, 동국대 중문 주변의 하숙집들은 적게는 한 달 치 하숙비를, 많게는 200만 원 정도의 보증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선납이나 보증금을 이용해 주인들은 하숙생이 쉽게 이사를 갈 수 없게 묶어두는 효과를 얻는다. 하숙생은 억울해도 주인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다른 곳도 사정은 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다.

하숙생들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도 제한받는다. 경희대 부근 5평 남짓한 방에 살았던 장호남(24) 씨는 하숙집을 나오면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1년을 못 채우고 나가면 한 달 치 하숙비를 더 내고 나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50만 원이요.” 에어컨도 없고, 공동화장실에서 샤워를 할 때는 거의 찬물을 사용해야 하는 방이었지만 50만 원을 내기 싫으면 1년을 다 살아야만 했다. 장 씨는 50만 원을 주고 마는 쪽을 택했다. 타 지역 출신 대학생들의 경우 방학 때 지방에 내려가더라도 서울의 하숙방에 돈을 계속 내야 하기도 한다.

대학시절 3년 반이나 하숙 생활을 했던 김태선(29) 씨도 하숙집에서 나갈 때의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청주에서 대학을 다닌 김 씨는 동기 5명과 함께 방 두 개와 거실이 있는 18평 하숙집에 모여 살았다. “4학년 2학기가 되던 시점에 아주머니가 갑자기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졸업하기 전에 하숙집을 나가버리니까 학생들 계속 받으면 2개월 동안 돈이 안 들어온다는 이유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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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생에게 권리를 보장하라!

하숙집 주인이 일방적으로 정한 하숙 비용과 생활 규칙들에 대해 거주자들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이 관계에서 주인이 ‘갑’이고, 하숙생은 ‘을’이기 때문이다. 서초동에서 하숙 생활을 하는 조연희(21) 씨는 “하숙은 고를 때 잘 고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씨는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매우 잘 해주셔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살고 있지만 주변엔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계약서 작성이 의무가 아닌 하숙집은 말 그대로 ‘주인 마음’이다. 주인이 하숙생을 조금 더 배려해 주는 곳이면 다행이고, 아니면 불행이다. 한 마디로 복불복이다.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20대 모임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김은진 운영위원장은 “하숙은 원룸 월세 등과 달리 제대로 된 임대차계약이 없고 구두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거주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증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경제적 여건이 안 좋은 20대들이 하숙을 많이 선택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하숙 계약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오래된 관행에 국가가 일일이 개입하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림동 골목바람부동산의 조희재 대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전월세를 찾는 세입자, 하숙생들에 대한 신용보증을 해주면 집세 연체 위험성이 제거되어, 과도한 보증금이나 선납 제도를 수정해나갈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라며 국가의 역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동시에 하숙생 당사자가 스스로 나서 권리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조희재 대표는 “젊은 세대의 강점인 SNS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 정보를 공유한다면 정보 부족으로 입는 피해가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은진 씨는 “민달팽이 유니온에서 주거 데이터베이스를 모아 하숙집 담합 사례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해 하숙생의 권리를 찾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오랜 시간 곪은 문제인 만큼 해결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등록금 문제에서 국가장학금이라는 작은 성과를 얻어낸 것처럼, 주거 문제에도 반드시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대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 해당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주거 문제 해결은 더더욱 중요하다.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하숙생들의 작은 권리라도 하나씩 보장되어가는 앞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