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소리가 요란하다’(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소식)로 시작해서,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로 끝난다. 문재인의 ’운명‘의 처음과 끝이다. 자살이 주는 파장이 컸다. 소탈한 그들의 동행도 마음을 울렸다. 거기다가 운명이다. 복합적인 ’감정과 그리움‘ 속에서 ’운명‘은 2주 만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문재인은 대선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2012년 1월,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설문조사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43%라는 압도적 지지로 1위를 차지했다. 여기저기서 노무현 대통령의 부활이 얘기된다. 노무현은 ’정말‘ 부활한 것일까?
 
 

차분하게 생각해보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은 파면 팔수록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란 이야기다. 콕 집어 두 개만 이야기 해보자. 사람들은 소통과 참여를 말했던 노무현을 기억한다. 극단적 언행과 행동으로 여당과도 이별했던 노무현은 기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재벌개혁과 서민경제를 부르짖는 노무현을 기억한다. 재벌개혁에 소극적이었고 삼성경제연구소를 신임했던 노무현은 기억하지 않는다. 여기에 FTA를 첨가하면 실상은 더욱 극명해진다. 추억은 그리움을 먹고 자란다. 나쁜 것이 그리울 리는 없다. 좋은 추억 행복한 기억 속에서 사람들은 노무현의 기억하고 싶은 면만 기억한다. 노무현 열풍 속에 노무현은 더 이상 노무현이 아니다. ‘감성과 그리움’에 기댄 추억의 노무현일 뿐이다.
물론, 국민은 옛 대통령의 추억을 ‘그리워’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은 본능적으로 바람을 쫓아간다. 반쪽 노무현이든 온전한 노무현이든 열풍이 불었으면 이용하는 게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리움의 대상으로서 노무현을 등에 업은 ‘친노’는 고달파 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반쪽짜리 노무현을 들고 자신들을 치장하기가 힘들다. 모순된 행동의 연속이다. FTA를 추진한 당사자들이기에 FTA앞에서 머뭇거린다. 재벌개혁에 지지부진했던 기억은 재벌 앞에서 그들을 자꾸만 작아지게 한다.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지만, 재벌 개혁을 얘기하는 사람은 천정배, 정동영, 박영선, 반선숙 의원 등 몇 없다. 노무현 열풍은 편향된 그리움 속에서 존재하고 친노는 그 그리움을 이용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진가는 감성이 아니라 정책에서 나온다. 감성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갈지자 정책 속에 노무현의 감성에만 기댄 친노가 일시적 바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람이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노무현의 공과 과를 철저히 구별해서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한다면 정말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친노’ 지도부가 들어선 민주통합당의 행보는 친노의 암담한 미래를 보여준다. 오히려 노무현 시절보다 더 악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부는 공천심사위원 명단에 민주당내 대표적 토건파인 박기춘 의원과 한나라당과 한미 FTA 합의문 작성을 주도한 노영민 의원을 올렸다. 공천 결과는 더 가관이다. 22일부터 발표된 공천 목록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임종석 사무총장부터 대표적 철새 정치인 이용희 의원의 아들 이재한씨까지 포함됐다. 무슨 바람이 다르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제 4.11 총선까지 두 달도 안 남았다. 다행히도 ‘반MB’라는 국민 정서가 ‘친노’를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현재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한겨레가 2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새누리당이 38.2%로 32.9%의 민주통합당을 앞질렀다. 27일에는 공천심사에 반발해 공천에서 탈락한 예비 후보 11명이 민주통합당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래저래 추억에 기댄 친노의 현실은 암울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