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한방.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네 글자를 가슴에 품고 로또를 산다. 여기서의 ‘한방’은 예기치 못한 대박, 역전을 뜻한다. 그러나 이 ‘한방’을 노리다가 ‘한방에 훅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연예인이다.
  
최근 이 ‘한방’을 제대로 맞은 연예인은 최효종이다. 강용석 의원의 고소 사건으로 대세 개그맨으로 등극한 그는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과 연이은 태도논란으로 하락세를 겪더니 얼마 전에는 개인 쇼핑몰 홍보 논란으로 결정타를 날렸다. 뉴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적는 공간에 개인 주얼리샵을 홍보하는 글을 올린 것이다. 논란이 되자 최효종은 해당 글을 30분 만에 삭제하고 사과를 전했지만 네티즌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렇듯 오늘은 스타가 되어 정상에 올랐다가도 내일이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연예인들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 그 중심에는 네티즌이 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그들에게 네티즌들의 평가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네티즌의 모든 행동을 옹호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여태껏 도를 넘은 비난과 악성 루머로 꽃 같은 목숨들을 버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또 다른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연예인을 비판하는 것에 기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짚고 넘어갈 개념이 있다. 연예인은 공인인가에 대한 것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보자면 공인은 정치인, 공직자들처럼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블로그, 미니홈피 같은 개인 미디어와 SNS의 발달은 공과 사의 경계를 허물었고 따라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연예인은 그들의 사생활 즉, 사적 영역이 공적으로 노출된 존재라는 측면에서 준(準) 공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네티즌은 연예인이 ‘공인으로서’ 잘못된 행동을 했을 경우에만 그에 대해 정당한 비판을 하면 된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연예인들은 한 번 데뷔한 이상 365일 24시간 내내 연예인 아무개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은 파티, 마약, 불건전한 성관계 등의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위안을 얻고 그 유혹에 쉽게 빠진다. 때로는 갑자기 스타덤에 올라 힘들었던 과거는 잊고 거만하고 건방지게 행동할 때도 있다. 이럴 때 네티즌의 정확한 지적과 따끔한 질타는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의 네티즌들은 ‘공인으로서’의 연예인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개인으로서’의 그들까지 깎아내리기 급급하다. 인격 모독은 물론이거니와 연예인의 가족까지 건드리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심지어는 ‘나가 죽어라’, ‘왜 사냐’ 등의 상식 수준을 벗어나는 언어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런류의 질타는 비판이 아니라 힐난에 가깝다. 연예인이 공인이기에 겪어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한 것이다.

연예인이 대중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네티즌이 연예인보다 우위에 있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대중과 네티즌은 상하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공생 관계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가수들의 음악이 없다면, 연기자들의 감동이 없다면, 개그맨들의 웃음이 없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연예인이 준 공인으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네티즌의 오만이자 지나친 간섭이다. 또한 이미지로 평가받는 그들로서는 이미지가 하락한 것만큼 큰 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앞선 최효종의 사례에서처럼 당사자가 사과와 해명을 충분히 했을 때는 너그러이 용서해주는 관용도 필요하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실수하고 이를 계기로 더욱 성장하는데,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장의 기회마저 빼앗긴다면 너무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