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무관심이 문제라 했다. 투표권을 갖고도 행사하지 않는 유권자들의 태도가 문제라 했다. 이 문제의식에 동의했었다. 나이 문제로 투표권을 갖지 못했던 4년 전의 이야기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킨 대선의 밀월 선거로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의 의석을 확보했다. 선거 결과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할 때마다, 2012년을 기다렸고 나 하나라도 제대로 된 기준을 갖고 현명한 투표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정치적 무관심의 원인은 개개인의 개념 부족에서 온 것이라고 여겼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총선을 한 달 앞둔 지금, 나는 새삼 정치 혐오 증상에 수긍이 간다. 정치권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희망이 아닌 무관심의 씨앗이 보인다.
 
단연 연일 언론을 도배하는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갑’이다. 공천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탈락자들의 항의, 불복 선언이 언론을 도배한다. 누가 됐고, 누가 안 됐고, 누가 불복했다는 내용이 몇 주 째 선거 보도의 9할을 차지한다. 탈당이 줄을 이어 무소속 후보가 대거 등장하고, ‘좀비 유령 신생 정당’들도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렇게 갈라져놓고 선거가 끝나면 어느새 재입당, 합당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의석수는 단 300석이니 누군가는 낙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데도, 낙천만 했다 하면 공천 기준을 문제 삼는 식으로 나오는 태도는 유아적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로 포장한 ‘밥그릇 정치’로 보일 뿐이다. 이런 분들이 정치권에 복무하시면서, 한국을 ‘무한 경쟁 사회’로 설계해 놓았다는 사실은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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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지도부의 리더십도 바닥이다. 공천 과정에서 ‘자기 사람 챙기기’로 계파 싸움을 조장하면서, 당을 하나로 묶어줄 가치 챙기기는 뒷전으로 두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통합민주당 한명숙 대표 모두 자기 정당의 공천에 대해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켰다’, ‘알찼다’고 자평한다. 그러나 공천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닌지는 애써 포장한 말이 아니라 공천 명단이 증명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박-친이 구분이 없었다고 말해도, 아무리 ‘386 공천’, ‘친노 공천’이 아니라고 해도, 공천 명단에서 드러나는 비율 편중을 반박할 근거는 되지 않는다.
 
대규모 국민경선을 도입하며 공천 개혁을 외쳤지만, 실상 국민의 뜻이 얼마나 반영된 것인지 체감하기가 쉽지 않다. 단수 공천을 통해 이미 공천이 확정된 후보 명단에서 이미 도덕성 논란이 불거진 후보와, 국민 민심에 역행하는 후보들이 다수 발견된다. 특히 여야가 동시에 ‘경제민주화’를 정책 아젠다로 내건 상황에서, 민주통합당 김진표 의원 등 이에 역행하는 가치관을 가진 정치인들이 공천장을 손에 넣기도 했다. 시민 사회는 이러한 공천 결과를 두고 ‘공천 개혁 후퇴’라고 비난했고, 실제로 국민들의 ‘변화 바람’을 타고 지지율 급등을 기록했던 민주통합당 지지율은 다시 주저앉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가 더 공천 잘했다’는 여야 지도부의 자화자찬은, 지금이 선거 코앞임을 고려하더라도 뻔뻔하다. 국민들이 수긍하지 못한 공천 개혁은 개혁이라고 할 수 없다.
 
국민들은 2012년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봄부터 찾아온 정치에 대한 환멸감이다. 선거 뉴스를 접할수록 희망보다는 비관을 갖게 된다. 공천 심사 문제뿐만 아니라, 야권 연대 과정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잡음들 그리고 ‘밥그릇 혈투’로 인한 정책 이슈 실종도 실망스럽기만 한 결과다. 과거 보았던 어느 못난 선거 못지않게 못난 모습이다. 여야가 개혁을 외쳤지만 말 몇 마디면 그뿐이다. 선거를 앞둔 한두 달 ‘벼락치기’로 국민을 공략하려니 제대로 준비가 돼 있을 리 없다. 식상한 말로 ‘그 나물에 그 밥’, 믿어 볼 세력이 없으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 시민의 희망 찾기가 아닌 ‘최소한의 의무감’으로 전락한다. 실망의 연속으로 2012년이 지나가게 될까, 정치 혐오 증상은 더욱 더 창궐하게 될까, 아니면 놀라운 반전이라도 나타나게 될까.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낸 지난해의 ‘안철수 신드롬’ 같은 엉뚱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