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하는 영국인 매리앤(23) 양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을 당시 역세권 가판대나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들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멀버리, 입생로랑, 셀린느 등 값비싼 명품 브랜드의 제품들과 똑같은 물건들이 매우 싼 값에 판매되고 있었어요.”





트렌드에 민감하고, ‘남들이 하는 건 나도 하는한국은 짝퉁천국이라 불릴 정도로 짝퉁이 판치는 나라다. 짝퉁이 시중에 깔리는 과정은 주로 해외 스타들의 파파라치 사진 속에서 그들이 착용한 아이템이 화제가 되면, 그것을 베껴 싼 값에 대량 공급하는 식이다. 가죽의 질이나 디자인의 유사성에 따라 2~3만 원 대부터 30만 원 대 까지 판매된다. 비록 짝퉁이지만 한국의 명품 카피는 철저하게 대중들의 선호를 기반으로 형성된 문화라고 보는 것이 맞다.

스타들이 소장한 고가의 명품은 일반 사람들로선 구매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는 타협안인 것이다. 중장년층보다 경제력이 달리는 젊은 층의 이용비율이 월등히 높은 인터넷 쇼핑몰과 보세가게에서 특히 짝퉁이 판치는 사실을 봐도 알 수 있다. 짝퉁 문화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싼 가격에 피차 모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다 알고서 이루어지는 거래이므로 상호간 불만의 여지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이름값이 낮고 영세한 곳이 아니라, 소위 브랜드라 불리는 국내 백화점 입점 업체에서 대놓고 해외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모방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비쿰(Bequem)12년도 봄 시즌 가방 라인인 크리스탈은 롱샴(Longchamp)발잔라인과 로고만 다를 뿐 전혀 차이가 없다. 이에 대해 비쿰 사 직원은 시즌마다 트렌드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 브랜드 간에도 디자인의 유사성은 존재하며 해당 제품 역시 마찬가지라는 답을 내놓았다.

물론 국적을 막론한 모든 패션업계가 시즌마다 대세가 되는 스타일에 편승해 가지만 그것은 다분히 디자인적
특징에 한해서이다. 재작년부터 멀버리의 알렉사 백과 같은 샤첼백이 히트하면서 2~3년간 짧은 손잡이가 달린, 서류가방 느낌의 옆으로 넙적한 크로스백이 쏟아져 나왔지만 디테일은 각 브랜드마다 독특하게 표현됐다. 반면, 09년도에 파워 숄더가 히트를 치면서 버버리(Burberry)에서는 어깨에 러플이 가득 달린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는데, 컬렉션이 끝나기가 무섭게 국내 의류업체들은 버버리의 그것과 똑같은 트렌치코트를 내놓았다. 당시의 제품들은 드라마에서 여배우들의 의상으로도 많이 협찬되었다. 트렌드는 한마디로 팔리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인데 국내 업체는 최소한의 변형, 또는 그마저도 무시한 채, ‘트렌드라는 변명으로 결과물을 합리화 하고 있다.

 


롱샴의 발잔 라인<좌>, 비쿰의 크리스탈 라인<우>


사람들이 브랜드에 기대하는 것은 ‘차별성이다.브랜드의 제품을 착용한 나는 싸고 흔한 제품을 착용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자신감 때문에 브랜드의 입지도 생긴다. 거기에 백화점 제품은 고급스러움까지 조건화하면서 소비자들이 높은 가격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매력요소를 갖추게 된다. 국내 백화점 의류 잡화는 소득 대비 가격이 매우 비싸지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디자인이 아니라 그저 남의 좋은 떡을 베낌으로써, “허울만 브랜드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실제로 롱샴 발잔은 100만원 대, 비쿰 크리스탈은 30 ~ 35만원 대로 꽤 가격차가 나는 듯 보이나, 여타 해외 명품과 똑같은 짝퉁이 그보다 훨씬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을 볼 때, 비쿰 사의 행각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비록 아소스(Asos) SPA 브랜드가 타 제품의 디자인을 상당히 차용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신 가격은 10만 원 대 전후에서 20만 원 대로, 가죽을 사용하거나 겨울 외투 등 특별히 비싼 제품이 아니라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이다. 브랜드라는 이유로 이름값을 받으려는 국내 업계와는 대조된다.


국내 브랜드의 해외 명품 베끼기가 비합리적인 거래를 유발한다는 이유 때문에 지양해야 하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내 브랜드가 세계적인 의류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모방의 관행은 벗어던져야 한다. 제일모직 이서현 부사장이 빈폴을 세계적 의류기업으로 키우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지만 타미 힐피거폴로의 스타일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면서 어떤 점을 어필하겠다는 것일까?

국내 의류업체가 해외 패션업계가 제시한 트렌드를 따르며 상업적인 안전함을 추구하겠다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고유하고 신선한 디자인이 결여된 상품을 내놓으면서 가격은 비싸게 책정한다면 소비자들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만약 국내 의류업계가 단지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많이 벌어들이느냐, 적게 벌어들이느냐를 벗어나 더 큰 야망을 품고 있다면 기억하라! 랄프 로렌, 클로에, 마크 제이콥스 등 세계인이 사랑하는 브랜드는 모방이 아닌 창조를 통해, 트렌드의 추격이 아닌 선도를 통해 성장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