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기장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바로 1978년에 지어진 고리 원전 1호기다. 설계 수명을 5년이나 넘긴 노후 원전 ‘고리 1호기’에는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고, 지난 2월에는 외부전원 공급과 비상발전기가 모두 정전되어 자칫하면 노심이 녹아내릴 수도 있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지역 주민들은 물론이고 부산, 울산 등 인근 도시에도 고리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널리 확산됐다. 그러나 정부는 고리 원전 1호기를 예정대로 가동하고, 추가 원전 건설도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기장군 주민들은 수년만에 직접 거리로 나서 “고리 1호기 원전을 폐쇄하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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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런 아찔한 사고가 규정대로 정식 보고되지 않고, 한 달 동안 철저하게 은폐되었다고 한다. 현장근로자의 말을 시의원이 우연히 들었으니 망정이지, 사고가 알려지지 않고 계속 묻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지극히 당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작년 3월, 일본 동부 대진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방사성 물질 노출을 우려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존폐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원전 사고 당사자인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 스위스 등 여러 국가에서 원전 의존도를 낮추거나 ‘탈원전’을 지향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는 청정에너지이자 대안이 없는 유일한 선택이라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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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세계 5대 원전 강국’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 때문에 원전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원자력 폐기하면 전기료가 40% 올라간다. 가구당 1년에 86만 원 정도 더 부담해야 한다”며 ‘겁’을 줬다. 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반원전을 주장하는 사람은 무지몽매”하다는 문제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본산 수입식품과 생활용품, 의약품 논란에 대한 정부의 반응도 일관적이다. 안전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고, 일본 수산물에서 검출된 방사성 물질도 기준치 이내여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경우도 엑스레이 촬영 등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방사능 노출량보다 적고, 1년으로 환산해도 연간 방사능 허용치를 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방사성 검사만으로 식품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면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중국에서조차 일본 식품 수입을 제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또한 방사능 연간 기준치가 믿을만하냐는 논란도 학계에서 꾸준히 일었기 때문에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다. 특히 그 대상이 어린이와 노약자고, 방사능 피폭 방식이 피부 노출이 아니라 식품 섭취일 경우를 생각하면 불안감은 더욱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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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이후 日후쿠시마현 생산 식품 수입 현황 ⓒ 이데일리

온라인에는 방사능 빗물, 방사능 화장품, 방사능 녹차, 방사능 밀가루, 방사능 생리대 등 방사능 오염 물질에 대한 소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해당 기업은 괴담일 뿐이고 안전성을 인정받은 것만 시중에 유통된다고 해명을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건강권과 행복권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괴담을 차단하겠다는 판단 이전에 괴담을 흘려들을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불안’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비판을 봉쇄하는데만 혈안이 될 게 아니라 적극적이고 믿을만한 대책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말했다. “고리 원전 사고로 국민 신뢰의 노심이 녹아내렸다.” 결국 방사능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시민들의 ‘무지몽매’가 아니라 정부의 ‘무사안일한 태도’다. 정부가 안전한 먹거리와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에 대한 국민들의 고민을 루머나 정치 공작으로 치부하고, ‘우리는 안전하다’는 정해진 답만 되풀이한다면 불안과 불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