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기사에는 책의 내용이 일부 들어있습니다.


‘네가 그러고도 기자냐’, ‘이렇게 기사 쓰고 월급 받냐?’ 
흔히들 연예인들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으로 기사 한편을 뚝딱 쓰고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한 번 보고 후기인지 기사인지 모를 글들을 써대는 연예부 기자들을 향해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는 바로 이렇게 기사를 날로 쓰는 연예부의 인턴기자 이라희의 이야기다. 
최근 트위터 기사를 강하게 비판한 김민준 ⓒ뉴스엔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야!” 군대 같은 직장생활

“여러분도 직장생활 해보세요. 저널리즘? 인권? 균형감각? 귀신 멱따는 소리 하고 있네! 야! 그냥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야. 너넨 나이가 몇 갠데 원칙타령이니? 그렇게 살아봐, 어디한번! 사회생활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애? 그 좋은 원칙으로 집에서 장판 무늬나 세고 있을 거다!”

주인공 이라희가 신문방송학과 후배들에게 한 말이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길을 물어볼 때 ‘실례합니다’란 말을 안했다고 기분나빠하던 그녀가 취재에 도움이 될 법하면 아무나 붙잡고 다짜고짜 누구시냐고 묻고, 학력 차별에 그리도 반대하던 그녀가 고졸 여성과 경쟁상대가 됐다는 것에 기분 나빠하며 무시하게 됐다. 세상물정 모르던 여대생이 회사에 적응하는 과정은 25년 동안의 ‘나’를 잊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니, ‘나’라는 인격체가 아닌 회사의 부품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게 맞겠다. 
부장의 눈 밖에 난 연예인을 조지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연기력 논란, 영화 티켓파워 급락, 해외 돈벌이에만 치중 등의 해당연예인의 안티 기사를 써야한다. 친하게 지내던 연예인이 사고를 당한 장례식장에서도 노란 티셔츠를 입고 특종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헤매야한다. 
처음에는 부당한 요구가 참기 힘들어도, 한 번 두 번 참다보면 이미 최소한의 신념과 양심은 머릿속에 사라진지 오래다. 어느 순간 돌아본 자리에 나는 없고 회사의 한 마리 충실한 개만 남아있는 것이다. 하루에도 열 두 번 씩 사표를 던지고 나오고 싶지만 밀린 카드 값과 고지서를 보면서 참고 버티는 게 비단 라희만의 이야기겠는가. 
월 50만원에 하루 14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공짜로 일 배우는 거니 좋은 줄 알아라, 너 말고도 일 할 애들 널렸다’는 뻔뻔한 말에 더욱 악착같이 매달리는 게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회사는 언제나 갑이고 우리는 만년 을인 구조 속에서 ‘나다운 것’을 지키려는 시도는 사회부적응자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뿐이다. 
 
“앞으로 말하지 마. 누가 뭐 물으면 그때만 말해. 그것도 네, 아니요만 해. 그 외에 뭐 함부로 지껄이면 죽는다. 네 생각, 네 느낌, 네 주장 다 필요 없어. 알았어?”라는 명령에 절대복종하겠노라 대답하는 라희의 모습을 보며, ‘월급은 괜히 주는 줄 알아? 무심하고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인간이 되는 데에 대한 보상금이야.’라는 책 속의 문구가 새삼 피부에 와 닿는다.
 


사회생활이란 무엇인가

부장에게 혼나던 중 헐렁한 옷을 입는다고 “옷 좀 신경 써서 입어! 네 가슴 열두 번은 더 봤다!”라며 공개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라희는 “더 보셔도 돼요, 하하하”라고 맞받아친다. 그러자 누군가가 “이라희, 너 사회생활 잘 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중년 남성에게 가슴 보여주는 걸 즐기는 변태가 됨으로써, 신입사원의 가슴을 열두 번이나 들여다본 변태는 정상인이 되었다’는 속내는 까맣게 묻힌 채, 그녀는 사회생활을 잘 하는 신입사원이 된 것이다. 
도대체 사회생활은 무엇이며,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라희는 누군가의 말처럼 최선을 다해서 사회생활을 했다. 회사를 위해서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고, 경쟁지 몰래 단독보도를 따내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캐냈다.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만들고, 배신하고 아부하며 충성을 다 바쳤다.
남들도 그랬다. 거짓 연기로 기자를 속이는 연예인들, 홍보를 위해 소속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매니저들, 단독과 특종을 위해서라면 *엠바고는 지킬 필요도 없다는 언론사들이 서로 속이며 사회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면이 두꺼울수록 업계에서 오래 버티고, 이는 곧 사회생활을 잘 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결국 사회생활이란, 얼마나 티 안나게 가식적인지가 잘하나 못 하나를 판가름 하는 것이다. 
(* 엠바고: 어떤 뉴스 기사를 일정 시간까지 그 보도를 유보하는 것)
그런데 라희는 조금 덜 가식적이었다. 독불장군인 부장을 쫓아내려는 국장의 편에 섰다가, 부장이 국장을 밀어내고 승진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주동자를 밝히면 살려주겠다는 부장의 협박에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라희는 자신이 살겠다고 남을 사지로 밀어 넣을 만큼 가식적이지는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충성을 다 한 회사로부터 ‘넌 열정이 없어’라는 말과 함께 해고당했다. 고인이라 할 때 ‘고’자를 ‘높을 고’를 쓰는 멍청한 실수를 범하고도 새로운 권력자(부장)에게 붙은 인턴은 살아남았지만, ‘기자병’이라 불리는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정도로 열성적이었던 그녀는 조금 덜 가식적이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결국 능력이 인정받는 사회에서 말하는 능력이란 스펙도, 실력도 아닌 사회생활 능력이었다. 

당장은 힘들지만 열정이 있으면 언젠가 빛을 볼거라 위로 하던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며 코웃음을 보내는 이 이야기는 사회생활의 더러운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는 이렇지 않을 거야, 이건 소설일 뿐이야’라고 위로해 보지만 최대한 직접 겪었던 일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작가의 말은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산산조각 내버린다.
 
작가는 라희의 입을 빌려 20대의 자신을 위한 것이자, 열정 없는 청춘들을 위한 변명을 한다.   
 
“문학작품을 본 후 느낀 점조차도 다섯 개 중에 하나 골라야 했던 우리다.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라는 논술조차 서울대 출신 강사가 알려준 대로 새롭게 써야 했던 우리다. 교복 단추에 색깔 한번 못 칠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창의성? 그게 중요하다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이제 와서 창의성을 내 놓으라고? 시키는 대로 안 살면 평생 낙오되어 굶어 죽을 것처럼 협박해놓고 이제와선 네 뜻대로 한 게 뭐가 있냐고 꾸짖는 모양새라니,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 창의성 좀 보자고 했다고, 또 쪼르르 달려가 이게 내 창의성이에요, 하는 애들이 진짜 창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