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무리들을 일컫는 말.)

영국에 영국요리에 버금가는 악명을 떨치는 것이 있다면 바로 훌리건이다. 축구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패싸움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얌전한 날에는 경기가 끝난 후 일반관중이 없는 곳에서 ‘정중한’ 패싸움을, 더비매치(라이벌 팀 간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벌떼처럼 일어나 경기장 난입은 기본이고 살인사건도 심심찮게 저지른다.

1985년 유러피안 컵 결승전은 이탈리아의 명문구단 유벤투스와 막강한 훌리건을 자랑하는 영국의 명문구단 리버풀의 맞대결이었다. 경기는 벨기에의 헤이젤 스타디움에서 열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은 양팀의 팬들로 가득차있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서포터들은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긴장은 점점 고조되었다. 서포터들은 서로를 향해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흥분한 리버풀 훌리건들이 분리팬스를 넘어 유벤투스 서포터들을 향해 달려들자 순식간에 유벤투스의 진영은 무너졌고 관중들은 뒤로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낡은 경기장 벽은 몰리기 시작한 관중들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날 경기는 결국 39명이 사망하고 600명이 부상을 입는 초유의 대참사로 경기의 막이 올랐다.

잇따른 참사 이후 1992년에 프리미어 리그를 새로이 출범시킨 영국정부는 훌리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함을 느낀다. 리그의 체질 개선과 공권력을 투입하는 노력 끝에 어느정도 훌리건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최근에는 이웃국가로 원정응원을 가는 훌리건 수 천명을 출국금지시켰다. 하지만 훌리건의 시초가 60년대 영국에서 하층민으로 전락한 20, 30대가 언더문화와 결합한 사회불만의 표출임을 생각해보면 훌리건 대책의 효과라기보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훌리건 문화가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한국형 훌리건의 등장

영국의 훌리건들은 사그라진 반면에 한국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의 훌리건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모습은 비슷하지만 이들이 주로 활개 치는 곳은 인터넷이다. 비방 가득한 악플로 타 대학을 공격하고 자신의 모교를 찬양한다. 이들도 여러부류로 나뉘는데 그냥 악플을 달거나 무조건 적인 찬양글을 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의 비방에 격분해 현실상에서 싸우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립대 졸업생 A씨가 자신의 모교를 비방하는 글을 올린 연세대 학생 B씨를 찾아가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 바 있다. 이중에서도 지능적인 부류는 수능 배치표나 졸업생 취업현황 같은 자료를 올려 자신의 모교와 타 대학을 비교한다. 문제는 이 자료들이 대학을 판단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열에 하나는 지표로 삼기에 부족한 근거들이며 숫자를 교묘히 수정한 허위자료도 심심찮게 올라와 오히려 대학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는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인지도가 낮아 정보를 얻기 힘든 대학을 지원하는 경우 이런 인터넷 훌리건에 의해 수험생의 선택이 좌지우지되기 쉽다.

(한 훌리건 사이트. 회원수가 7만 명에 가깝다.)

 

대학도 이를 의식한 듯 하나, 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대학서포터들이 그 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해당대학에 관한 질문이 올라오면 서포터가 대답을 해주거나 모교를 소개하는 블로그를 만드는 식으로 운영한다. 이렇게 공식적인 서포터들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지는 않아 훨씬 믿을 만 하다. 이화여대의 경우 지속적으로 악플을 다는 수십 명의 훌리건들을 고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입시철이면 여전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훌리건들이 들끓기 시작한다.

대학서열화의 피해자이자 가해자

사회 불만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한국형 훌리건과 영국형 훌리건은 태생적으로 닮아있다. 한국형 훌리건은 대부분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소수의 졸업생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은 모두 대학 서열화의 피해자다. 쉴 틈 없는 경쟁 속에서 대학을 가야만 했고 대학에서도 다시 서열을 나눌 수밖에 없다. 대학서열화는 이들에게 비틀린 애교심를 가져다주었다. 언제 경쟁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이들을 자기 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불안감을 해소하게 만들었다. 훌리건들은 항상 ‘우리대학은 최소한 ㅁㅁ대학보다는 합격점수가 높고 ㅇㅇ 대학 보다 취업률도 높고 선배들도 많다’고 말한다. 한국식 입시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한 훌리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훌리건들은 자신만의 서열을 만들고 자신의 모교를 찬양하며 의미없는 자신을 자위하는 놀이를 계속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