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빨갱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야 할뿐더러, 선거 때마다 자신이 ‘소수자’라는 것을 느끼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선거에서 ‘진보정당’을 찍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가치와 이념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소망 때문일 것이다. 좌우의 가치가 공존하는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신념을 걸고 투표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합진보당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이 ‘부정선거’로 밝혀진 사실은 이 땅의 진보들을 매우 힘 빠지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은 2일 기자회견을 열어, 현장투표 및 온라인투표 모두에 해당하는 광범위한 부실․부정선거가 진행되었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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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전부터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당 주류 ‘당권파’가 일으킨 문제였다. 이제야 세상에 알려졌지만 소수 당권파의 ‘비민주적’인 관습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 수평적 질서보다는 ‘상명하달’식의 소통 방법을 사용하고, 당내의 권력을 유지하는 목적 달성을 위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국민참여당 출신이나 진보신당 탈당파를 배제하고 ‘자기 편’을 주요 자리에 심으려고 할 것도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당권파는 진보의 죄인이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는 ‘진보의 정치’를 말아먹고 있다는 ‘실리의 측면’에서 그렇다. 통합진보당은 국민참여당을 진보라 할 수 있는지 등의 문제에 확실하게 답하지 못한 채, 선거 필승을 위해 급하게 조직된 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 득표율은 10.31%에 그쳐, 2004년 민주노동당이 얻었던 13.03%에 못 미쳤다. 지역구를 합쳐 13석을 획득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지지율이 목표에 비해 ‘덜’ 나온 것에는 ‘관악을 이정희 부정 경선’, ‘청년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인해 불거진 논란들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당권파가 있었다. 앞으로 통합진보당이 이번 사건을 얼마나 잘 추스르느냐는 별도의 문제겠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그나마 10%를 지켰던 ‘진보정당’ 지지율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조중동의 흑색 선전 때문이라고 항변해봤자, 어쨌든 빌미를 준 건 ‘원내 교섭단체’를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던 당권파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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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진보의 죄인인 더욱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진보의 가치’를 몸소 말살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도 무시하면서 이를 관행쯤으로만 여기는 소수의 당권파의 모습은 지금이 2012년이 맞는지를 의심하게 할 정도다. 이러한 도덕성으로 상징되는 진보가, 진보의 가치를 스스로 지키지 않는 진보가 보수정당의 비도덕성을 비난하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진보정당이 무너트린 진보의 가치는 이제 추구하기도 우스운 휴지 조각처럼 되어버렸다.

진보정당을 건설하고자 했던, 진보의 가치를 퍼뜨리고자 했던 많은 이들의 꿈과 노력과 소망들이 소수 당권파의 농간에 의해 무너져버렸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했던 10.31%의 ‘진보’는 ‘멘탈 붕괴’한다. 잘못도 없이 통합진보당에 싸잡혀 욕먹는 1.13%, 0.43%의 진보신당, 녹색당 지지자들은 더욱 어이가 없다. 진보의 죄인 당권파, 아주 쇄신해서 새롭게 태어나지 못할 바에야 물러나고 해체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이 땅의 진보를 믿었던 사람들에게 진 당신들의 죄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