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 당시, 박원순 후보가 운영하는 희망제작소의 ‘무급인턴’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최소한의 식비와 교통비만을 지급하고 무급으로 주5일 풀타임 업무를 인턴에게 시키는 희망제작소의 행태는 ‘희망을 제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실망감을 안겨줬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나는 꼼수다’를 필두로 한 박원순 일부 지지자들은 무급인턴 의혹을 ‘별 일 아니라는 듯’ 넘기기에 급급했다. 진보나 변화를 외치는 사람들조차 ‘무급인턴’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급인턴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나 보다. 지난 20일, 따끈따끈한 번역판이 나온 <청춘 착취자들>은 전 세계 무급인턴의 충격적인 실태를 폭로하고 있다. 비정부기구 무급 인턴 생활을 하며 인턴십의 불합리한 현실에 눈을 뜬 저자 로스 펄린(Ross Perlin)은 인턴십이 청춘을 착취하는 현실은 물론, 그 과정에서 기업, 정부, 대학 등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드러낸다. 심지어는 인턴십 중개업체나 대학 당국 측에 돈을 바쳐가면서까지 ‘무급 인턴’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오늘날 청년들의 비참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수많은 청년들, 인턴십 프로그램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완성된 세계에서 처음으로 나온 제대로 된 ‘인턴십 고발 보고서’다.

<청춘 착취자들>은 첫 장에서 꿈과 환상의 동산으로 알려진 ‘디즈니랜드’의 실체를 고발하면서 화끈하게 시작된다. 연간 7000-8000여명의 인턴들이 디즈니랜드에 상주하며 이 꿈의 동산의 밑바닥을 떠받친다. 인턴십 프로그램은 실제 직무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꿈의 기회’로써 청년들에게 홍보되지만, 실제로 디즈니랜드에서 인턴들이 하는 역할이란 것은 하루 종일 햄버거 패티를 굽고, 수조를 청소하고, 놀이공원 곳곳에서 ‘단백질 유출(디즈니랜드에서는 구토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원칙이다)’의 흔적을 치우는 일을 한다. 타지에서 온 무급 인턴들이 기숙사에 감금된 상태로 일하며 디즈니랜드 사측의 인건비를 줄여주는 동안, 디즈니랜드에서 유급 일자리를 차지했던 지역의 일꾼들은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게 되었다. 책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디즈니랜드의 악독한 인턴십은 국제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된 상태다. 우리나라 대학 곳곳에서도 디즈니 인턴십을 홍보하는 플랑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무급인턴 제도를 호위하고 있는 다양한 세력들에 대해서도 일갈을 날린다. 열악한 업무환경과 성희롱에 노출된 인턴들에게 ‘급여를 받지 않으므로 노동자로 볼 수 없어 원고의 자격이 성사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법원, 기업들이 무급인턴을 정당화시킬 수 있도록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 학생들에게 ‘학점’을 발급한 대학, 불법적 무급인턴을 방치하고 스스로가 무급 인턴을 통해 부족한 인력을 수급하고 있는 정부 모두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인턴십 프로그램의 확대를 틈타 우후죽순 등장해 인턴십을 구하는 학생들에게 고액의 ‘중개료’를 뜯어내고 그들을 무급 인턴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는 인턴십 중개업체들은 그야말로 ‘눈엣가시’다.

저자는 무급인턴 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나타나는 가장 커다란 문제로 ‘불평등의 재생산’을 지적한다. 무급인턴을 하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수준을 가진 상류층의 자제들만이 인턴십을 통해 ‘화이트칼라’가 되는 길에 몸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무급인턴을 하더라도 생계를 지원해줄 스폰서가 없는 중산층 아래의 배경을 가진 학생들, 유색 인종 학생들 등은 무급인턴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다 결국 ‘화이트칼라’ 직종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텍스트 속의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이러한 현실이 예증된다. 게다가 현재 인턴십 프로그램이 공개모집 방식보다는 ‘인맥과 연줄’을 통한 충원 방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평등은 더욱 더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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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1장, 로스 펄린은 ‘청춘 착취자들’에 저항하기 위해 청년들은 어떠한 종류의 무급인턴 제안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는 기업, 정부, 대학들에게 청춘 착취를 그만두고 실제 직업 경험을 쌓도록 해주면서 적당한 급여를 직업하는 ‘모범적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선회할 것을 종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로스 펄린의 바람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런 바람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급여 지급 없이 착취가 가능한, 또 이러한 착취를 청년들이 스스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자리를 얻으려 경쟁하고 있는 현실을 기업들이 쉽사리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장밋빛 전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이 책을 덮는 순간 씁쓸한 감정을 남긴다. ‘호구’로 전락한 청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청춘 착취자들’도 ‘착취당한 청춘들’도 읽어볼만한 텍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