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마케팅이 아니라 자본주의 예술이다 -신문방송학

전통적인 형태의 매체 광고에 대한 신뢰도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올해 4월 발표된 닐슨코리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92%가 ‘지인의 추천’, 즉 입소문을 신뢰한 데 반해 TV 광고(42%), 신문 광고(34%) 등은 매우 낮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2007년 조사결과에 비해 TV 광고는 27%, 신문 광고는 30% 하락한 것이다. 이 같은 광고 신뢰도의 추락은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마케팅)’ 등 새로운 형태의 광고 전략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는 최근의 트렌드와도 일치한다.

광고신뢰도의 추락은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사실 광고의 효과라고 부르는 그것은 처음부터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광고지만, 실패한 광고캠페인의 수가 성공한 광고캠페인의 수보다 곱절은 많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도 ‘돈만 날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은 기업이 광고비를 줄여야 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광고업계가 생존을 위해 부정해내야만 하는 것이었고, 광고의 효과를 기업에게 입증해내기 위한 연구의 결과로써 광고학이 발전하고, 스타마케팅과 같은 광고의 전략들이 개발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결국 대중의 머리 위에서 대중의 소비행위를 지휘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광고신뢰도와 광고 효과라는 것은 점점 추락하는 것으로 보인다.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광고를 보면 그 물건을 사게 된다’는 대답을 하는 1차원적인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광고의 효과와 성공 여부라는 것은 사전에 예측될 수 없으며 단지 광고 이후 제품의 판매율을 높인 것과 높이지 못한 것으로 나누어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광고의 효과라는 것은 광고인이나 광고주인 기업이 아닌 소비자로써의 대중이 완성시키는 것이다.

존 피스크에 의하면 소비 행위는 그 자체가 문화적 경제에서의 ‘문화 생산행위’이기도 하다. 이는 기업과 소비자의 일방적인 관계를 해체시키고 소비자의 주체성을 강조한 해석이다. 대중들은 본 목적을 과도하게 드러내며 대놓고 홍보하는 광고에 염증을 느끼고, 광고가 의도하는 그대로 행동하지(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대중이 흥미를 느끼는 광고는 문화적 텍스트로써 해석되어 소비와 함께 스스로 다시 생산할 수 있을만한, 즉 크리에이티브가 발휘된 ‘예술적’인 광고에 국한된다. 상품 판매라는 광고의 기본 목적을 은폐시켜두고 예술적, 심미적이거나 혹은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유쾌한 광고캠페인으로 소비자들을 ‘돌아서’ 사로잡은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대중들은 광고를 통해 ‘놀이’하면서 광고의 과정에 끼어들고 그 의미를 풍부하게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성공한 광고캠페인으로 간주되는 예술적 광고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제품의 판매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소비자들은 그저 광고를 즐기기만 할 수도 있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 광고 단위가 아닌 광고라는 형식 전체로 놓고 보면 이러한 크리에이티브들, 광고 소비 행위들, 광고를 통한 새로운 의미 생산 행위들은 한 가지 위치로 수렴하게 된다. 바로 물질만능주의, 소비에 대한 환상의 강화 등 자본주의적인 가치를 강화시키는 그러한 위치다. 즉, 광고는 단순히 개별 광고를 통한 마케팅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적인 가치를 강화시키고 떠받들고 언론-광고-기업 등의 다양한 주체들의 생존을 떠받치고 있는 ‘자본주의 예술’이자 그 과정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광고의 몰락과 대리인문제-경영학

광고가 헛짓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광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막대한 비용을 들인 광고가 매출을 올리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보인다. 마케팅 계의 바이블인 ‘Positioning’의 저자 알 리스(Al Ries)도 일찍이 그의 또 다른 저서를 통해 광고의 몰락을 주장했다. 그가 2002년에 출간한 ‘The Fall of Advertising and the Rise of PR’은 제목부터 광고에 대한 회의로 가득하다. 이 책에서 알 리스는 현대의 광고가 매출 증대에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고 진단하며, 광고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으로 다른 마케팅요소를 확대할 것을 권고한다. 그는 이 책에 등장하는 무수한 광고실패사례들을 통해 광고가 돈낭비인 이유들을 제시하는데 이들을 한 문장으로 요악하면 다음과 같다. ‘광고인들은 매출보다 광고상에 관심 있다.’

마케팅의 목표는 매출증대와 마켓쉐어 확보다. 그런데 마케팅 전략 하위개념에 속하는 광고, 정확히 말하자면 이를 제작하는 광고인들이 매출에 관심이 없다니, 아이러니다. 사실 이는 어쩔 수 없는 광고의 숙명이다. 대부분의 광고는 브랜드 인지도, 신뢰도, 이미지 등의 변수들을 목표로 하는데 이들은 단기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 안목으로 집행되는 광고이기에, 매출의 변화가 어떤 광고에서 기인했는지 알 수 없고, 따라서 광고인의 능력을 매출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광고인들은 매출이 아닌 광고상에 집중하게 된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뜻하는 ‘크리에이티브’가 주요 심사기준으로 작용하는 광고상의 수상은, 광고인의 예술가적 자부심을 한껏 높여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광고계약을 불러온다. 광고를 맡기는 기업의 입장에서 광고대행사의 능력을 평가할 기준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 다만 혁신적인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를 기억시킬 것을 기대할 뿐이다.

매출보다 광고상이 중요해진 아이러니의 원인이 광고평가의 어려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원인은 기업 외부에 존재하는 광고대행사가 자신들의 이익(계약 성사)을 광고의 본래목적(매출증대) 보다 우위에 놓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대리인을 고용할 때 발생하는 불이익을 ‘대리인 문제’라 부른다. 대리인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 기업이 대리인의 의중을 알 수 없는 문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리인 문제’가 발생하는 또 다른 사례로 전문경영인 고용이 있다. 기업의 소유와 운영을 분리시키는 ‘전문경영인제’는 높은 경영능력을 가진 대리인에게 경영을 맡김으로써 높은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인데, 경영실적 평가를 토대로 계약의 지속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는 경영인을 보다 수월하게 몰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대리인 계약은 치명적 단점을 갖는다. 전문경영인 역시 광고인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이익보다는 계약연장을 주된 목표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전문경영인은 기업의 장래성 보다 단기적 경영성과에 치중하기 쉽다. 또한 경영하는 기업의 규모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는 경우, 무리한 M&A(인수합병)를 통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도 한다. 기업을 위해 고용된 전문 경영인이 도리어 기업몰락의 주범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업도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문경영인에게 미래의 주식을 부여하는 스톡옵션제가 있다. 기업의 미래를 신경 쓰라는 의도에서 고안된 제도이다. 대리인에게 업무를 맡겨 골머리 앓느니 기업 스스로 해결하면 될 것 아니냐고? 대리인 문제가 무섭다고 아웃소싱을 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특정업무만을 전문화한 그들에겐, 기업 내부에서 조달할 수 없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광고인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창조적이면서도 효율적인 광고들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