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번째다. 또 하나의 생명이 아스라이 사그라졌다. 삼성전자 LCD 천안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윤 모 씨가 지난 2일 재생불량성빈혈로 13년을 투병한 끝에 숨을 거뒀다. 윤 씨는 삼성전자에 입사에 천안 사업장에서 근무한지 5개월 만인 1999년 12월 재생불량성빈혈이 발병해 퇴사했고 이후 사망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수혈을 받아왔다. 윤 씨와 윤 씨의 가족들은 질병이 삼성LCD 사업장에서 일해 생긴 질병이라 주장해왔다. 삼성에 들어가기 전까지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데다가 빈혈수치가 조금만 나와도 채용에 문제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윤 씨 전까지 삼성전자·반도체와 관련해서 그동안 알려진 사망자만 해도 55명이다. 더 이상 삼성 공장과 그곳에서 일하다 질병에 걸린 피해자들과의 연관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숫자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3월 21일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산업보건위원회(ICOH)에서 인바이런사의 삼성전자 반도체 작업라인에 대한 조사 결과 이상없다고 검증받았다”며 삼성전자·반도체 근무관련 질병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질병원인이 공장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이라는 것을 의심해온 피해자들이 제기한 산재보상 행정소송 과정에 피고 측 보조 참가인으로 참여하여 정부에 “산재보상 불가”를 주장해 왔다. 노동자들의 산재보험 담당기관인 근로복지공단도 피고 자격으로 삼성과 같은 목소리를 내왔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반도체 관련 피해자중 산재 인정을 받은 건 단 1건에 불과하다.

ⓒ 오마이뉴스

 
삼성전자는 근무환경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는 문제투성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작업라인을 살폈다던 인바이런사는 안전보건문제에 관해 친기업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라 신뢰도가 떨어진다. 특히 백혈병 등은 잠복기를 거쳐 일정 기간 이후에 발병되므로 과거의 작업 환경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인바이런사는 최근 시점을 기준으로 문제가 된 작업장에서의 위험물질 노출 수준을 측정해 삼성이 제공한 자료만을 바탕으로 과거 상황을 추정했다. 삼성은 이를 바탕으로 전수조사가 아닌 특정 장소만의 결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이번에 사망한 윤 씨가 일했던 곳은 반도체라인이 아닌 LCD를 만드는 사업장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 셈이다.
개선의 여지는 보인다. 삼성은 올해 2월 삼성전자 건강연구소 부소장명의로 ‘반올림’에 “삼성퇴직직원들의 직업성 암에 관해 반올림과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대화제의 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첫 번째 산재가 인정된 다음에는 “털고 가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앞뒤가 바뀌었다. 털고 가고 싶다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성의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먼저다. 또한 유해물질 검출 의심을 받고 있는 모든 공장을 공개하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받아야 한다. 대화는 그 과정에 알아서 따라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들에 대한 산재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근로보험공단도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산재 인정이 늦어진다면 기업 편을 든다는 의심만 살 것이다.

윤씨가 치료를 받았던 병실 ⓒ 오마이뉴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 지금 삼성전자·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그곳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다고 의심을 받는 피해자들 중 언제 또 사망자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피해자들 중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들을 방치하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안 그래도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삼성의 이미지는 더더욱 나빠질 게 뻔하다. 삼성은 최악의 기업을 뽑는 2012 퍼블릭 아이 어워드에서도 3위에 오른 바 있다. 삼성이 먼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인정하도록 요구하고 문제가 되는 사업장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구하는 것이 그동안 이어져왔던 죽음을 막는 일이며 기업의 이미지 개선의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