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부정경선의 파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부정경선 자체에 대한 비난여론은 수그러들었지만, ‘종북’ 논란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국회개원과 동시에 때마침 임수경 의원의 술자리 막말 사건까지 터지면서 ‘종북’은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 전반의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다. 부정경선에 책임지지 않는 당권파의 무책임함과 비민주적 행태가 이번 부정경선 문제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이 갖고 있던 종북성향이 더욱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이러한 분위기를 틈타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를 공격하고 나섰다.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은 ‘국가관이 의심된다’며 사상의 문제로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제명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북한보다 종북세력이 더 큰 문제다.”라면서 처음으로 ‘종북’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 대통령과 유력 대선후보까지 색깔론에 가담한 꼴이다.

 

그러나 문제는 야당과 진보세력이 ‘색깔론’에 대항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야당이 당 차원에서 성명을 내면서 대응하고 있기는 하나, 국민들은 이미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행태의 등을 돌린 상황이라 여론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또한 실제로 통합진보당 내 주요세력인 NL계열의 대북관이 국민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져있다는 점이, 오히려 새누리당의 공격을 정당화시켜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은 색깔론이 여론의 지지를 얻게 하는 불행을 초래하게 만들었다.

그뿐인가, 부정경선에 이은 ‘종북’ 논란 때문에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건이 하나 둘 묻히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비리뿐만 아니라, 문대성·김형태 의원과 같은 도덕적 문제가 있는 의원들의 이름도 어느새 잊혀져가고 있다. 나아가 주가폭락, KTX 민영화 논란, 언론 파업등의 굵직굵직한 이슈들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문제, 삼성전자에서 산재로 의심되는 노동자의 ‘56번째 죽음’과 같은 노동문제 등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중요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서 정부를 비판해야 할 진보세력은 아예 힘을 못 쓰고 있는 판국이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이야기만 꺼내도 ‘비도덕적인 당권파’, ‘종북’으로 치환시키는 외부 환경 때문에, 혁신 의지가 있는 비당권파 당원들 역시 좌절감에 빠져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에 포섭되지 않았던 독자적 진보세력들도, 진보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면서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상황이다.

부정경선 때문에 뜻하지 않게 피해를 본 세력들도 있다. 그동안 청소년 위원회까지 운영해왔던 통합진보당에서, 이번 혁신안에서는 정당법에 의거한 ‘19세 미만의 당원가입’을 금지시키도록 한 것이다. 졸지에 기존에 있던 100명 정도의 청소년 당원들도 전부 출당될 판이다. 부정경선이 청소년의 정치세력화 역시 막아버린 것이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의 여파가 나비효과처럼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번에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다보니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색깔론이 상식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모든 이슈가 ‘종북 논란’에 맞춰지고, 진보 세력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보수언론과, 정부에 장악당한 공영방송의 탓으로 몰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통합진보당의 문제가 너무 크다. 더 이상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통합진보당에서는 하루빨리 당을 전부 갈아엎는 수준의 쇄신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진보’가 죽어가는 꼴을 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