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사회-재벌 대타협론’ 이후 불거진 재벌 개혁론 대 재벌 활용론 논의를 살펴보면 사실 머리가 혼미해진다. 재벌 활용론을 주장하는 장하준 측은 재벌 개혁론자들이 재벌의 긍정적 기능까지 비판하며 재벌을 해체하자고 한다며 비판하지만 정작 재벌 개혁론자들은 “기업집단을 해체시키자고 한 적은 없다”고 못 박는다. 반대로 재벌 활용론자들이 재벌을 옹호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들은 혐의를 부인하며 ‘재벌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재벌의 경영권을 인정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식의 타협은 지금 당장이 아닌, 재벌의 횡포를 막는 다양한 법안을 통해 5년 내지는 20년까지 재벌을 압박한 이후의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양측이 한 발씩 뒤로 물러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큰 차이가 없는 논의였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논쟁의 강도에 비해, 왜 그렇게 서로를 비판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근본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양측 모두 ‘재벌 개혁’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쨌든 재벌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경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동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 재벌이라는 시스템이 만들고 있는 병폐는 치유해야 한다는 것에도 의견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재벌이라는 생산 시스템의 근본을 건드릴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것인가의 문제로 축소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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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활용론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급속한 경제 성장기에 재벌이 한국 경제를 주도했고 그들에게 큰 공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던 당시에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정부가 카리스마적으로 진행했던 자원 배분의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지금도 재벌 체제가 재벌을 찢어놓았을 때보다 효율성이나 창의성 면에서 우수할 수도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있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의 유지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 재벌은 필연이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지나간 일이다. 새로운 시대에 재벌은 필연이 아닌 선택의 대상이라는 얘기다. 비슷한 효율을 낼 수 있거나 효율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다른 가치를 진작시키는 대안들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특수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영어사전에 ‘chaebol’이라는 고유명사로 등록되었을 정도로 한국의 재벌은 다른 국가들의 대기업과는 구분되는 측면이 있다. 재벌은 가족에 의한 지배와 경영, 중앙집권적 기획조정, 긴밀한 기업-정부 관계(정경 유착)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대기업 형태의 하나다. 한국 바깥에도 대기업은 있지만, 재벌은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의 과실을 모조리 싹쓸이해간 데다가, 소상권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정치권․관료조직․법조계․금융․언론방송․대학 등 권력의 중심을 헤집어놓는 것까지 모두 가능한 ‘초법적 조직’은 여기 한국에만 나타난다.


지금껏 세계 경제에서 재벌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대기업은 일본의 ‘자이바쯔’인데, 2차대전 이후 ‘지주회사 청산위원회’가 설립되면서 해체되고 이후에 일본 경제는 실질적 대주주가 없는 특징을 가진 ‘게이레츠’ 체제로 재편되었다. 과거 외국의 역사를 가지고 속단하기에는 어설픈 감도 있지만, 어쨌든 가족 경영, 정경 유착과 같은 재벌의 특수성을 없앨 수 있는 방도가 있고 재벌이 사라진다고 해서 대기업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경제가 망하는 것도 아니라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앞선 주장을 반복하건대, ‘잘 나간다’는 이유만으로 재벌을 인정해주는 것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