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동상이몽!

다양한 전공을 가진 20대들이 모인 고함20. 같은 주제를 보고도 전공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하나의 키워드를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두명의 필진이 풀어내는, ‘동상이몽’입니다.






외부로 돌출된 페니스, 남성들의 불안감을 키운다 –  생물학

 

가끔 왜 생명체는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화 되어야 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남녀가 결합해야 종족 번식이 가능하다는 점. 이것은 이성 존재에 대한 후전제일 뿐이다. 좀 거북하긴 하지만, 인간도 지렁이처럼 자웅동체의 몸으로 자가 생식을 할 수 있다면, 골치 아픈 짝짓기 경쟁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체는 우수한 종족을 번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양할수록 교배를 통해 우수한 형질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생물학적 진리로 접근해 보자. 다양한 게 좋다면야 이성이 아니라 삼성, 사성일수록 좋을 터다. 그런데 삼성, 사성이라니. 한 번에 서너 명이 관계를 가지고 성교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 모습이 상상도 안 될뿐더러 결혼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는 남성와 여성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떤 명징한 대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일단 남과 여, 두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하는 짐작만 해 볼 밖에. 어쨌든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역할분담은 확실하다. 그 중 여자는 아기를 잉태하는 막중한 사명을 지니고 있다. 소중한 자손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생식기는 몸 안으로 함몰되었다. 음양의 원칙은 암수 결합에서 반드시 통하는 것. 원활한 성교(性交)를 위해서 여자의 생식기가 체내로 들어가면 갈수록 남자의 생식기는 돌출될 수밖에 없다.
 









음경이 종종 남자의 자존심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여성이 가슴으로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하려는 것처럼 남자에게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잴 수단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열을 가리는 게 동물의 본성이다. 그리고 그 눈에 보이는 것이란 성별 대비가 확실하고 시각적으로 부각되면서, 같은 성에 한해서는 모두가 지니고 있는 것. 기준으로 삼기에 편리하지 않은가. 



남성의 거세공포가 여자보다 심한 것도 ‘생식기 돌출’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남성은 언제든 자신의 생식기를 볼 수 있다. 그것의 상태를 눈을 통해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것을 상실할 때의 상상과 이어지는 공포감도 쉽게 겪을 수 있다. 반면 여성의 거세공포는 ‘폐경’이다. 그러나 폐경은 예상되는 어느 시점에 모든 이가 예외 없이 겪는, 통과의례나 마찬가지다. 생산 능력을 잃어버리면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과시욕구도 사라진다. 여성은 폐경을 통한 여성성 상실이 비록 우울한 일이긴 하지만, 순리로 알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남자는 죽을 때까지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지금은 외모가 그 사람의 매력을 좌우하지만 태초에 우수한 생명체란 성적 역할, 즉 생식 기능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의 여부로 결정되었다. 한 마디로 생산 능력이란 성 정체성에서 매우 중대한 요소인 것이다. 여자의 생식 능력은 유한하나, 남자의 생식 능력은 영원불멸한 것으로 간주된다. 죽을 때까지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소중한 기관이 눈에 잘 띌 뿐만 아니라, 보호 장치도 없이 혈혈단신 외부 환경에 노출되었다면 보전에 대한 압박과 상실에 대한 두려움도 커질 수 밖에 없음이 당연하다.
















페니스 크기가 남성들 사이에서의 서열을 결정한다? – 사회학

  






‘남자의 페니스 크기’는 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떠돌던 흥미로운 얘깃거리들 중 하나였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페니스 크기를 그 사람의 다른 신체 부위로 알 수 있다는 얘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코가 크면 페니스도 크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했다. 목소리가 굵은 만큼 페니스도 굵다는 얘기도 있었다. “손가락 길이가 중요하다”, “아니다 발가락 길이를 봐야한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게 큰지 작은지가, 실제로 보기도 전에 다른 신체 부위로 유추해야 할만큼 중요한건가? 어찌 됐든 끝나지 않는 토론의 대전제는 ‘남자의 페니스가 크면 좋다’는 것이었다.





보브 코넬은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넬은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를 중심으로 그 방식들에 대해 서열을 매겼다. ‘남성다움’ 또는 ‘여성다움’ 하면 떠오르는 이념형을 가지고 만든 서열 도식 그 맨 위에는 ‘패권적 남성다움’이 있다. 코넬은 이성애와 결혼하는 것이 패권적 남성다움을 만드는 가장 최우선 요소라고 말하지만, 그 외에도 패권적 남성다움과 연계되는 ‘육체적 거칢’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성다움의 이념형이 돼버린 ‘패권적 남성다움’은 단순히 여성다움의 모든 형태를 복종시킬 뿐 아니라 ‘공모적 남성다움’, ‘복종적 남성다움’ 등 다른 모든 ‘남성다움’들을 누르고 특권을 차지해왔다. 육체적으로 매력적인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심지어 모든 섹슈얼리티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보브 코넬은 이 ‘젠더 위계’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계가 미디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화됐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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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여성들이 성형외과를 찾아가 가슴을 키우고 엉덩이에 보형물을 넣는 것만큼 남자들이 페니스 크기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코넬이 말했던 것처럼 육체적으로 매력적이면, 즉 페니스 크기가 크면 특권을 차지할 수 있지만, 굳이 페니스 크기를 키우지 않아도 남자의 권력을 지지해주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넬은 ‘위기’를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제도-이를테면 가부장제-들이 점진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과, 동성애 등 다른 섹슈얼리티들이 득세하게 됐다는 것이 그 요인이다.

코넬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위기’와 ‘패권적 남성다움’의 추락을 이야기했음에도 현대의 여성들은 ‘남성다움’의 상징인 페니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상우같은 몸 좋은 연예인들에 열광하는 시대는 물론 갔다. 여성들은 몸 좋은 ‘몸짱’ 남자 연예인들에 열광하기보다는 곱상한 외모나 젠틀한 행동같은 ‘훈남’적 요소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한 여초 커뮤니티의 게시물에서 아직도 여성들이 페니스에 열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뽀얀 얼굴에 바른 언행으로 사랑받는 남자 연예인이 의외로 페니스가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에 ‘다시 보인다’는 호감의 댓글들이 달린 것이다. 매력적인 남성의 얼굴이나 태도, 행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기준이 바뀌었지만 ‘큰 페니스’에 ‘남성다움’이 인정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남성다움’을 인정하는 주체는 변했다. 패권적 남성다움이 존경받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페니스가 크면 좋다’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남성들끼리 서로의 권력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여성들은 페니스에 매력을 느끼고 열광하기까지 하는데, 왜 그건 교실에 그저 떠돌아야 하며 여자들끼리의 커뮤니티 안에서만 머물러야 할까. 아마도 그것은 ‘패권적 남성다움’이 다른 남성다움들보다 우위에 있던 시절은 지났지만, ‘여성다움’이 본질을 벗어나 서열에서 올라올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올라올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