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미술관은 4월 26일부터 ‘핀 율’탄생 100주년 전 <북유럽 가구이야기>를 선보이고 있다. 핀 율은 덴마크 가구가 세계에서 각광받기 시작할 무렵부터 활동한 디자이너다. 그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과 세계가구 디자인역사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스웨덴의 유명한 가구브랜드 IKEA의 모던한 가구에 모티프를 제공했다. 위 전시에서는 핀 율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다수의 의자 외에도 책상, 캐비닛을 포함한 가구 및 그릇, 조명 등 다양한 작품을 전시한다. 그 중 특히 ‘근대 의자의 어머니’, ‘가장 아름다운 팔걸이를 가진 의자’라고 불리는 ‘NO.45’, 덴마크 국왕이 앉았던 ‘치프테인’은 눈여겨 볼만하다. 
NO.45
NO.45
대림미술관은 ‘In Every day Life’, ‘일상이 예술이 되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으로 ‘핀 율’전을 통해 우리 생활환경에서 가장 친숙한 물건인 가구를 조명하고자 했다. 대림미술관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일상 속 사물의 가치를 발견하고 매력을 더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일상 속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도록 ‘가구’를, ‘일상’을 미술관으로 들였다. 대림미술관은 ‘핀 율’전 이외에도 일반인들도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대중적이고 참신한 전시를 유치해왔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음악이 있는 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재즈 공연을 열고, 밸런타인 파티를 여는 등 일상 속에 예술을 불어넣고 있다.
일상이 예술이 되는 혹은 예술이 일상이 되는 

 미술관에서 미술작품이 아닌 ‘일상’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최근에 와서야 가능해진 일이다.
뒤샹 - 부러진 팔 앞에서

르네상스 이후 인상주의와 추상주의를 거쳐 1900년대 모더니즘에서 화가들은 비로소 ‘모방’패러다임에서 벗어났다. 큰 전쟁이후 삶은 완전히 파괴됐고 따라서 어떤 미술이든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에서 모든 것을 ‘빼기’시작한다. 그들은 작품에서 대상을 온전하게 ‘모방’하는 것을 거부했고, 미술에서 ‘美’를 거부했다. 뒤샹의 다음 일화를 보면 그 사실이 잘 들어난다. 
뒤샹은 1947년 옷걸이를 <덫>이란 제목으로 그리고 모자걸이를 <모자걸이>란 제목으로 작품들을 선정했다. 이 레디 메이드 작품 두 점이 그해 4월 부르주아 화랑에서 열린 그룹전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스테파느 부르주아는 현대미술품을 소개하는 화랑을 막 개업하고 그룹전을 개최했다. 카탈로그에서 뒤샹의 레디 메이드는 조강으로 분류되었다. 부르주아의 말로는 뒤샹이 작품들을 화랑 입구에 놓았는데 사람들이 그 위에 모자를 걸면서 작품인 줄 알지 못하더라고 했다. 뒤샹이 원하던 대로 사람들은 그것들에서 미학적 감성을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  <<예술의 종말 이후>> 中
뒤샹은 위의 ‘퍼포먼스’를 통해 무엇을 추구했던 걸까? 보드리야르의 말을 잠깐 빌려보자. 보드리야르는 오늘날 “다른 가치들처럼 미적 가치도 곤경에 처하게”되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현상을 ‘초미학’이라 지칭했는데 뒤샹을 이 ‘초미학’의 선구로 높이 평가했다. 보드리야르는 뒤샹의 행위를 “극히 적지만 그로부터 세계의 모든 평범함은 미학이 되고 거꾸로 모든 미학은 평범한 것”이 된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보드리야르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미학은 실제로 끝장내는 전환이 이루어지고”있다고 생각했다.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통해 예술에 종언을 고했다. 
기존 예술의 종언 이후 ‘美’가 빠진 예술은 새로운 정의를 갖게 된다. 첫 번째,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기 위해서는 그것은 하나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두 번째, 의미는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 구현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물이 작품으로 변형되는 것은 해석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좀 더 자유로워진 예술은 이제 그 어떤 것으로도 가능해진다. 깡통, 자전거바퀴는 물론 만화도 예술이 될 수 있고, 길거리의 벽화 또한 예술이 될 수 있다. 또한 키스 해링의 작품이 핸드폰 케이스에 들어온 것처럼 예술은 일상생활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사람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예술에 종언을 고한 뒤샹의 <샘>이 약 360만 달러라는 사실과 ‘일상이 예술이 된’ 핀 율의 의자가 보통의자의 가격에서 0을 몇 개는 붙여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일상의 것과 다름없는 예술작품의 지나치게 높은 가격은 예술을 관람하는 이들로 하여금 예술을 더 어려운 것이라 여기게 한다. 아직 예술과 일상이 온전한 합의일체를 이루지 못해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예술은 여전히 일상을 꿈꾼다. 그 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