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게릴라라고 불리는 극 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 씨. 지난 8일 경성대학교에서 이윤택 씨는 신문방송학과 학생들과 뜻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부스스한 머리, 차려입지 않은 편안한 복장을 한 이윤택 씨는 자신만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등장했다. 투박한 말투와 목소리로 작가 이윤택 씨는 과거 오랜 시간동안 신문기자로 활동한 경험을 전하고,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자세에 대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윤택 씨는 극 작가가 되기 전 66개월 간의 기자생활을 했다. 하지만 기자생활을 청산하고 현재 문화게릴라라고 불리는 유명한 극 작가가 됐다. 그해 7월 극단 연희단거리패를 만들었고 가마골소극장을 세웠다. 그리고 3년 후인 1989년 소시민적 지식인인 한 기자의 이야기를 통해 1980년 언론통폐합을 비판한 연극 시민 K’를 서울 무대에 올렸다. 서울에 입성하자 기성 연극판이 움찔했고, 요즘 말로 하면 듣보잡이 판을 흔들어댄 셈이다.


권력을 생래적으로 거부하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치고 들어가 크게 휘저어 놓은 뒤, 어리둥절해 있는 틈을 타 살짝 빠지는 게릴라. 문화게릴라 이윤택 씨는 자신을 제도권 밖의, 성 밖의 방외인이라 칭한다. 이런 그가 이날 학생들에게 스펙, 취업에 목메어 살지 말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때 떳떳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그의 인생관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Q.
신문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본질을 잃으니 모든 게 재미가 없어졌다.” 

66개월의 신문기자 생활을 그만뒀을 때, 주변 사람들은 만류했다. 신문 기자라는 직업은 좋은 직업이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무모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신문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본질을 잃고 현실에 안주했다. 순간 모든 게 재미가 없어지더라. 그래서 나는 신문 기자 생활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기자 생활을 하기 전 연극을 했는데, 하는 연극마다 망했다. 그 당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10년 뒤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때의 다짐대로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내 인생의 본질인 연극을 찾았다


자신의 삶에서 본질적인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은 모두 부패한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나를 말렸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나는 아직도 현역이다. 나는 연극이라는 나의 본질적인 것이 있기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지금처럼 살 수 있는 것이다.


Q. 얘기를 들어보면 어렸을 적부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남달랐던 거 같다. 작가의 학창시절을 보니 글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확신도 타고난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삶의 힘은 콤플렉스다. 나에 대한 긴장감이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나는 타고난 글재주는 없다. 나는 그 당시 얼토당토않은 글을 쓰곤 했다. ‘아프리카에 가서 원숭이를 잡자이런 글을 글이라고 썼으니 얼마나 웃긴가. 내가 고등학교 때 받은 상도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 대회에 제출한 글 역시 형편없었다. 하지만 내가 수상을 하고 나서 그 글을 보니 선생님이 내 글을 많이 고쳐주셨더라. 그렇게 해서 상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는 내 자신이 글쓰기에 타고난 재주가 없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삶의 힘은 콤플렉스다. 그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자신에 대한 긴장감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콤플렉스와 나에 대한 긴장감 때문이다.



Q.
요즘은 취업이 곧 꿈이다. 하지만 취업난으로 많은 학생들이 불안해하는데, 학생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당당한 백수가 돼라. 노예와 같은 삶을 살지 마라


나는 학창시절에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를 못했다.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다. 연애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토론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너무 많은데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공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자신감은 충만했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했고,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도 공부하지 않는 불성실한 나를 봐줬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 하나는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제도권 안에서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다. 여러분 중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열심히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 거 보다는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거나 지금 당장에 별다른 대책이 없다 싶으면 당당한 백수가 돼라. 그리고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본질적인 것을 찾아 나서라. 여러분이 진짜 떳떳하게 살고자 한다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 방법이다. 본질적인 것 하나만 있으면 나머지는 자신한테 하찮은 것들이 될 것이다.
 

중, 고등학교를 공부에 얽매어 노예처럼 살고, 대학에 와 4년을 취업을 위해 노예처럼 살다가 직장에 들어가면 다시 노예처럼 살게 된다.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성공이라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끝까지 일하다 죽으려고 한다. 내 삶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기준을 세상에 맞추지 말고, 자신에게 맞춰라.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명심해라.



Q.
사실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것을 찾기란 어렵다. 그런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조언을 한다면?


나를 귀중한 인간으로서 대접해주는 곳으로 가라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며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고 뭔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다면 이런 기준을 잡아라. 나의 존재가 유용하게 받아들여지는 곳, 그곳이 내가 몸담을 곳이라는 것이다

나도 영화 쪽에 몸담은 적이 있다
. 하지만 그곳은 나를 천박하게 만들었다. 내가 몸을 담기엔 내가 유용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나의 본질적인 것, 바로 연극을 택했다.
 

나를 천박하고 치졸하게 만드는 곳이라면 그 곳은 절대 우리가 몸담을 곳이 아니다. 그 집단이 필요로 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곳이다. 내가 주인공이 되겠다는 욕심은 버려라. 주인공으로 설 수 없는 자리더라도 자신이 귀중한 존재로 대접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라. 그것이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문 기자에서 연극까지, 그는 마치 자신의 삶이 쉽게 흘러온 듯 가볍게 얘기했지만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한 그의 말들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왔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자주 가던 다방에서 수면제 30알을 먹고 자살시도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의 삶이지만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쫒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으며 당차고 씩씩하게 그 길을 걸어왔다.


치열한 경쟁 사회, 팍팍한 이 사회 속에서 지금의 20대가 살아가기엔 너무도 벅차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강조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 ‘내가 난데라고. 어떤 순간이라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때, 결국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졸 출신 시인으로 등단한 뒤 기자, 극작가, 연출가로 발을 넓혀 부산에 근거지를 둔 연희단거리패를 창단, 1980년대 후반 한국 연극계에 충격을 안겼던 문화게릴라 이윤택 씨. 그는 시민K’ ‘오구‘ ‘햄릿등으로 지금까지도 그만의 강고한 성을 쌓고 있지만 그의 문화적 은신처는 여전히 변방이다.


현재 그는 10년 만에 연극 궁리로 관객들을 찾았다. 역사에서 사라진 이름 장영실그리고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 이 두인물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이 연극은 지난 3일까지 전석 매진이라는 흥행을 기록하고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