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
 

새로움은 언젠가부터 대선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듯, 국민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뽑았다. 첫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은 말할 것도 없다. 엘리트 계파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는 노무현. 그리고 기업가 이명박을 뽑았다. 그리고 MB와는 다른 벤처 기업인 안철수 신드롬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네 사람을 같은 카테고리에 넣기에는 너무나 다르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같다. 이 사람들이 대통령이 되면 새로운 세상이 올까 싶어서다.


 
 

국민들은 한 번도 만족하지 못했다. 삶이 너무나 절망적이어서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이 변화할 수 있도록 바란지 20년이라는 뜻이다.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바라는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삶의 기본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자신의 갑갑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의 원인을 구체화 시키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인물’로 소망을 대신해 왔다. 체제의 유지보다는 변화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인물’이 꼭 좋은 변화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새로움’이냐가 더 중요하지만, 고달픈 생활인들에게 그런 생각을 위한 여유는 없다. 새로움 자체에 눈길을 빼앗기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의 승자는 누가 되던지 변화를 이끌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지속되는 금융위기 속에서, ‘복지’ ‘경제민주화’는 어떤 후보도 무시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다음 대통령은 복지와 경제민주화의 기초를 닦는 소임을 맡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새로움인지가 더욱 중요하다. 나는 다음 대통령이 새로운 대한민국 시스템의 전체적 설계도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듯 전환의 시기다. 어설픈 기초를 다져서는 후에 끊임없는 문제가 생길게 분명하다. 내가 다음 대통령에게 원하는 설계도는, 빌려온 설계도가 아니라, 맞춤 설계도다. 
복지를 위해서는 세금 제도, 정보 네트워크를 시작으로 모든 제도가 유기적인 전체 틀을 갖춰야 한다. 지금의 구조에서 복지 제도를 만들어 봐야 삶의 질에 변화를 주지 못하는 생색내기식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북유럽 복지를 그대로 빌려올 수도 없다. 그 나라의 시스템은 기초부터 사민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대기업을 중심으로 설계된 국가 시스템에 복지라는 새로운 장치를 빌려와 장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경제 민주화없이 복지도 없다. 산업구조의 체질 개선에 매진하거나,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방식의 복지를 고심해야 할 것이다. 유럽만 봐도, 영국, 북유럽, 프랑스, 독일이 제각각 다른 모델의 복지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의 사회 시스템은 정책경쟁용 누더기가 아니라 재원 조달 방식부터 분배 기준까지 유기적이고 촘촘하기에, 남유럽처럼 경제위기에 큰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회의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시스템을 위한 설계도는 아직 누구도 그려두지 않은 것 같다. 후보들은 명심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50년 이후의 대한민국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개개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구체적인 희망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뒤에서 묵묵히 뒷받침해 주는 국민들은 이제 희망없이 지쳤고 이제 동력이 필요하다. 정책 몇 가지로 해갈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정책 경쟁이 아니라 시스템 경쟁이 필요한 대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