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되는 것들은 항상 나란히 서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부자 동네하면 떠오르는 강남 타워 팰리스와 마주하고 있는 판자촌 구룡마을, 외교관과 재벌들이 사는 고급주택과 맞닿아 있는 성북동 빈민촌. 그리고 서울역 앞에 빼곡하게 들어선 빌딩들 사이에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곳, 서울의 대표적 쪽방촌인 동자동이 있다. 사회적 취약계층 약 888가구가 쪽방 생활을 하고 있는 동자동의 주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중앙대학교 실내환경디자인과 4학년 학생들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한 졸업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동문ㅇ답’이라는 큰 글씨와 함께 ‘동자동이 묻고 우리 그리고 당신이 답하다’라는 작은 글씨가 써져 있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갤러리에 들어서자 입구에서부터 동자동에 대한 설명과 함께 허름한 쪽방촌의 풍경을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이 쪽방촌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 외치는 고함을 듣기 위해 실내환경디자인과 4학년 이지민 씨(26)를 만나보았다.

갤러리 안에 게시되어 있는 전시회에 대한 설명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좀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중앙대학교 안성 캠퍼스 실내환경디자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지민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런 데를 처음 와보는데 디자인과의 졸업 작품 전시회라고 해서 단순히 실내 환경을 어떻게 구성하겠다는 의도의 결과물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전시회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이번 졸업 작품 전시회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은 전시회에요. 부제에 나온 동자동은 서울시 용산구에 소재하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쪽방촌인데 1평 남짓한 공간에서 화재의 위험과 불결한 위생, 사계절의 극심한 온도 차이에 노출된 채 주민들이 살고 계세요. 이번 졸업 작품 전시회는 바로 이 동자동의 환경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저희 나름대로의 고민과 해결책을 담은 결과물이에요. 부제인 ‘동자동이 묻고 우리 그리고 당신이 답하다’는 저희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오신 관람객 여러분들도 관람을 하시고 동자동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해보시라는 의미에요.

갤러리 안에는 이지민 씨의 작품 ‘새싹이 움트는 대지’를 비롯해 실내환경디자인과 학생 10명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 작품은 동자동의 주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학생들 나름의 해결책과 이를 현실화한 도안이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이지민 씨의 작품 '새싹이 움트는 대지'

                                             

-작품 ‘새싹이 움트는 대지’ 의 컨셉을 어떻게 잡게 되셨나요?

제 작품 ‘새싹이 움트는 대지’는 제목 그대로 동자동 주민들이 자립하는 과정을 싹이 움트는 과정에 비유한 거에요. 저는 주민 분들이 말 그대로 자립, 스스로 설 수 있으려면 무작정 지원만 해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립할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주민 분들에게 기술 교육을 시킨 다음 그 교육을 바탕으로 일자리를 얻어서 경제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을 바탕으로 자립을 하게 되는 거죠. 싹이 움트는 과정을 보면 먼저 씨앗을 심고 싹이 움트고 점점 자라서 꽃을 피우게 되잖아요. 여기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작업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1월 말부터 전체적인 짜임과 주제를 잡고 방학 동안은 계속 전체 작업을 했어요. 학기가 시작하고 나서는 개인 작업과 전체 작업을 병행했고요. 6월 말에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어요. 결국 올해 상반기를 여기에 다 쏟아 부은 셈이죠.(웃음)

-작업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은 어떤 점인가요?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말하는 게 창의성을 드러내는 것이 어려웠다고들 하더라고요. 기존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내면서도 남들이 봤을 때 관심을 가질 만한 흥미로운 컨셉을 생각하고 또 형태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어려운 과정인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놀랐어요. 디자인이란 것은 그저 보기 좋고 예쁘고 실용적인 것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의외네요. 주제를 동자동으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사실 기존의 졸업 작품 전시회나 공모전에서는 개인의 창의력을 검증하기 위해 현실 불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지만 우리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고 싶었어요. 단순히 보기 좋고 화려한 겉모습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그 사람들을 위해 디자이너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우리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보자는 의도로 주제를 잡았어요. 그리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찾던 중 연합뉴스 차지연 기자의 기사를 보고 동자동을 주제로 선택하게 됐고요.
 

-실제로 동자동을 처음 가봤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무서웠죠. 사람들이 경계의 시선으로 우릴 쳐다보고 입구에서부터 대낮에 술을 마시고 있었어요. 사진 찍는 것도 싫어하고 그냥 무조건 나가라고 하고 어디서 왔냐면서 경계심을 잔뜩 드러내서 무서웠어요. 사실 처음부터 편견을 가지고 다가갔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워 보였던 것 같네요.
 

-처음에 그렇게 낯선 이를 경계하던 주민들이 어떻게 경계심을 풀고 프로젝트를 할 수 있도록 협조했나요?

동자동 사랑방이라고 주민들을 위해 사회적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모임이 있어요. 여기에서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랑방마을 공제협동조합이에요. 가난한 분들이 서로의 힘을 모아 설립한 단체인데 어려운 이웃들에게 대출도 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이 분들이라면 주민 분들과 친하니까 우리에 대한 경계심을 푸는 데 도움을 주실 것 같았어요. 그 대표님을 찾아가 졸업 작품 전시회에 대해 말씀드렸고 대표님과 함께 다니면서 주민들에게 협조를 구할 수 있었죠.

-전시회를 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나요?

전공인 디자인에 대한 것보단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동자동 주민들은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굉장히 싫어해요. 그들 나름대로의 삶과 그들만의 즐거움이 있는데 사람들은 무조건 그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고 여기니까요. 편견을 갖고 보지 말고 그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그 동안 디자인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면만 부각되는 것에 심한 이질감을 느꼈어요. 이번에 졸업 작품 전시회의 주제를 동자동으로 정해서 작업을 할 때 그 동안 느껴왔던 이질감이 해소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디자인은 화려하고 예쁜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소박한 것, 사회적으로도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이 진짜 필요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죠.

인터뷰가 끝나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졸업반인데 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 그녀가 기자의 눈에는 고개를 내밀고 움트고 있는 싹처럼 무언가를 이루어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의 어원은 ‘지시하다⋅표현하다⋅성취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 이다. 그녀의 졸업 작품 ‘새싹이 움트는 대지’처럼 앞으로도 그녀의 디자인이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표현하고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