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를 앞두고 벼락치기를 위해 열람실에서 밤을 새던 어느 날의 새벽.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캔커피를 사러 편의점으로 향한다. 한 모금 마시고 목을 풀다 우연히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생각보다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 드문드문 박혀있다. 비록 어떤 별인지 어떤 별자리가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막연히 상상에 빠진다. 저 별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다면 기말고사를 보고 있을까. 그 녀석도 나처럼 밤새 벼락치기를 하다 지쳐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진 않을까. 
우주라는 공간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스타워즈부터 아바타까지 많은 흥행작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2001스페이스 판타지아’ 또한 우주로 진출한 인류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독특한 상상력과 장대한 스케일로 자신만의 SF 세계관을 구축한 호시노 유키노부가 1984년부터 86년까지 잡지에 연재한 단편 20여편을 3권의 단행본으로 묶어냈다. 

 

우연찮게 올려다본 밤하늘은 별이 점선처럼 빛나고 있는 낭만적인 공간이지만 우주는 사실 매우 쓸쓸한 공간이다. 바로 옆에 붙어있어 보이는 별들도 사실은 수 광년, 수십 광년 떨어져 있는 경우가 흔하다. 99.9%의 빈 공간에 간이역마냥 드문드문 별과 행성이 있을 뿐이다. 지구에서 바라본 우주가 아닌, 우주에서 바라본 우주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2001스페이스 판타지아는 이러한 우주공간의 이미지를 미지의 행성에서 조우하는 외계생명체, 폐쇄된 우주선 내에서 벌어지는 암투 따위로 살려낸다. 이미 <에일리언 시리즈>와 같은 작품으로 검증된 흥행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흔한 블록버스터의 확대재생산으로 쉽게 여길 수 없는 이유는 우주라는 배경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풍부하게 담아냈기 때문이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불안감을 불러온다. 2001스페이스 판타지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호기심과 불안감을 교차시키면서 흥미롭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다른 한 편으로 어둠에 싸인 우주는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다. 그곳엔 우리가 언제나 되뇌지만 불확실한 답 밖에 얻을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문제가 있는 곳엔 답이 있는 법. 작가는 우주라는 공간을 활용해 작품 곳곳에 그 답들을 감추어 놓았다. 비밀스런 상자를 여는 열쇠는 과학적 상상력이다. 2001스페이스 판타지아에서 과학은 단순히 우주선의 거대함을 상징하지 않는다. 다만 과학은 인간이 무엇인지, 만물의 시작과 끝은 무엇인지 알려주는 안내자의 역할이다. 작가는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질문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하나하나 찾아나간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의 과학적지식을뛰어넘는 자연의 변화 설명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고대인들이 신화에 의지해야 했던 물음들의 답을 알고있으나, 아직 찾지 못한 답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그렇다면 2001스페이스 판타지아는 20세기에 과학의 언어로 쓰여진 현대인들의 신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