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는 고대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눈부신 동지이다. 또한 스파르타쿠스야말로 위대한 장군이고 고귀한 인물이고 고대 프롤레타리아의 진정한 대표자이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진정한 조력자이며 동지인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한 구문 이다. 자본주의 대한 통렬한 비판과 통찰을 보여준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인 마르크스가 왜 고대 노예에 불과하던 스파르타쿠스라는 사람에게 주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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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서양 역사의 중심이자 거대 제국인 로마의 중심에서 겨우 노예이며 검투사에 불과한 자가 커다란 시스템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린 이 노예들의 영웅적 서사는 현재 보통 삶을 살고 있는 대다수 민중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다. 억압받고 비천한 존재로서 노예인 그들에게 스파르타쿠스는 어떠한 존재였겠는가? 그들을 해방하고 함께 로마와 싸운 그들의 열정적인 투쟁은 노예들에겐 나도 인간이라는 존재로써 자각하는 하나의 계기였을 것이다. 이런 열정적인 투쟁은 현재 자본의 노예로써 내 자신을 팔지 못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자본주의 인격체로써 억압받고 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해 저항하는 인간으로 써 스파르타쿠스를 본 마르크스는 그에게 주목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스파르타쿠스 이야기를 보자. 스파르타쿠스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들은 바로 노예다.  노예는 로마에서 ‘말하는 짐승’ 이었다. 인간이라는 인격체가 아닌 짐승이었기에 그들은 존재로서 취급받지 못한 존재였다. 드라마에서 귀족들이 노예들 앞에서 격정적으로 정사를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노예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귀족들은 노예들 앞에서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그에 더해 노예들은 철저하게 귀족들의 도구로써 사용된다. 앞서 말한 인격적인 존재의 무시는 애교일 뿐이다. 귀족들이 속편하게 놀 수 있도록 노예들은 모든 일들을 떠맡는다. 도구로써 집안일부터 건물을 짓고 최악인 경우 그들의 노리개로써 이용당하는 것이다. 성적인 노예부터 로마사 에서 빠지고 않고 나오는 검투사들까지 말이다.    

 


고귀한 생명을 자신의 유희와 쾌락을 위해서 사용한 로마 귀족들을 드라마 내내 보다보면 참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귀족들뿐만 아니라 그에 동조한 시민들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강하게 느끼기도 한다. 검투장 에서 자신의 생명을 놓고 벌이는 노예의 치열한 삶의 존재 증명이 로마의 시민들과 귀족들을 위한 유희에 불과한 모습들 말이다. 바로 이런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바람 앞에 등불인 삶을 산 노예가 스파르타쿠스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원래는 노예는 아니었다. 플루타르크로 알려진 메스트리우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중 크라수스의 전기8장에서 스파르타쿠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스파르타쿠스는 유목 부족 출신의 트라키아인 이었다.”


스파르타쿠스의 출생은 실제로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드라마에서는 트라키아인 이라는 전통적인 설정에 따른다. 트라키아는 오늘날 불가리아와 거의 일치하는 지역을 일컫는 로마식 이름이다. 트라키아에서 살던 스파르타쿠스가 로마에 의해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것이 드라마의 시작이다. 자유로운 들판을 거닐던 전사인 스파르타쿠스가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노예로 전락해 검투사 양성소로 끌려오게 된 스파르타쿠스가 그 속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모습을 드라마는 치열하게 묘사한다. 다만 검투장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배경이다 보니 피가 낭자하고, 선정적인 장면이 많은지라 스파르타쿠스를  단순한 오락물로 여길수도 있다.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것은 하나의 과잉이며 사람들 에게 단순한 쾌락 거리일 뿐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선정적이라면 굳이 스파르타쿠스를 소재로 사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노예이기에 노예에 대한 억압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며 그에 저항하는 노예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엔 단순히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반란을 꾀했으나 곳곳에서 억압받는 노예들을 보며 자신의 동료로 생각한 스파르타쿠스의 심정 변화는 그들과 함께 로마와 싸우는 진정한 동지로서 자각하게 된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란 인생에서 삶의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 그 자체에 내재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과 세계, 의식과 현실의 긴장속 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반항적인 인간의 길 즉 삶의 출발을 제시했다. 그래서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은 기존의 질서와 전통을 철저히 부정하는 인간이다. 

노예 스파르타쿠스 그가 시작한 현실세계인 로마와의 긴장은 로마를 뒤흔들었다. 그는 억압적인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거부했으며 기존의 전통적 세계인 로마와 싸웠다. 부조리한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스파르타쿠스는 특별한 어떤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