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다. 주변 모두가 목에 걸고 다니는 MP3를 위시리스트에 추가할 때 CDP를 구매했었고 핸드폰으로 시계 기능을 대신할 때 유독 빨간 손목시계를 팔에 채웠었다. 이외에도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워크맨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었고 1970년대 혹은 1980년대의 노래들을 찾아 하루 온 종일 재생했다. 이렇듯 나는 언제나 시대와 조금 간격을 두고 걸었다. 다소간의 시간을 들여 찬찬히, 경험해보지 못했던 과거를 동경하며 말이다.

시간여행의 서사를 지닌 우디 앨런의 새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매력을 느낀 이유도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중 과거를 동경하는 길에게는 더욱 더. 이야기는 길(오웬 윌슨)과 약혼녀 이네즈(레이철 맥아덤스)의 파리 여행으로 문을 연다. 집필을 위해 파리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길 원하는 길과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해나갈 제안을 하는 이네즈의 관계는 영화 초반부터 삐걱거린다. 삶을 낭만으로 채우고 싶은 길과 달리 이네즈는 보이는 것을 중요시 하는 현실주의자이다. 서로의 입장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둘은, 언제나 N극과 S극으로 남아 있다. 영화 도입부, 길과 이네즈가 처음 등장하는 미디엄숏 장면에서 “당신은 환상과 사랑에 빠졌어.”라는 이네즈의 대사는 이런 관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파리 여행이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밤, 길은 파리의 거리를 걷게 된다. 골목길을 헤매던 그는 자정 무렵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클래식 푸코에 올라탄다. 그렇게 1920대 파리로의 시간여행은 시작된다. 현실에서는 아무런 만족감을 얻을 수 없던 그가 ‘황금시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와 같은 문호들은 물론이고 콜 포터, 피카소등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등의 새로운 예술 기조가 꿈틀거리던 시대를 마다할 이가 어디 있으랴. 이러한 시간 여행은 매일 밤마다 계속되고 그는 예술과 문학의 산실인 1920년대 파리 속으로 점점 더 깊숙이 잠식된다. 그러던 중 그는 그 곳에서 아름다운 여인,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낭만과 사랑이 공존하는 1920년대 파리는 길에게는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그의 낭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약혼녀와는 달리 자신을 인정해주는 아드리아나나 현실에선 아무런 영향력도 가지지 못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황금시대’의 사람들은 그가 원하던 인물들이다. 이렇듯 행복한 파리의 밤을 맞이하고 있던 그는 또 다시 시간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아드리아나와 함께, 1920년대 파리에서 1800년대의 파리로 말이다. 이 일로 1920년대 파리는 너무도 지루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아드리아나는 첫눈에 1800년대 파리와 반하게 되고, 길에게 제안한다. “우리 20년대로 돌아가지 말아요. 여기, 지금이 파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에요.” 그 순간 길은 현재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1800년대 파리에 빠진 아드리아나의 모습을 관망하며 자신에겐 완벽한 황금시대가 당시 사람들에게는 불만족스런 현재였음을 깨닫게 된다. 결핍되고 불안정한 현재이기에 역설적으로 더 많은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1920년대의 파리로 향하지 않는다.

2012년 지금, 자극적인 뉴스의 헤드라인들은 점점 우리들의 마음을 깡마르게 만든다. 상상도 못할 끔찍한 살인 수법은 날이 갈수록 진화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대표자는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말 그대로 ‘그로기’ 상태다.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팍팍해지는 세상을 체감할 때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가 좋았더라고. 옛날이 그립다고 말이다. 조금은 더 불편했고 모자랐지만 그 시절이 그립다고 되뇐다. 만일 당신도 이러하다면 1800년대 파리에 머무를 아드리아나에게 던지는 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이 여기에 머물고 이곳이 당신의 현재가 된다면 얼마 있다 다른 시대를 꿈꿀 거예요. 정말 당신의 ‘황금시대’ 말이에요. 근데 현재는 좀 불만스럽죠. 인생이 좀 불만스러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