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일본문화를 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일식집부터 하루키의 책들까지. 하물며 우리가 어렸을 때, TV앞에서 떠날 수 없게 만들었던 그 애니메이션들도 대부분이 ‘Made in Japan‘이였다는 것도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 한국이 아무리 감정적으로 일본을 미워한다고 하더라도 현해탄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나라의 문화가 우리들과 너무 가까이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일본 문화와 조금이라도 접촉 할 수 밖에 없었고 자연히 일본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의문도 함께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본 문화에 가질 수 있는 여러 호기심에 대해 유쾌하게 답변을 내려준 책이 있다. 바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쓴 ‘일본열광’이다. 교수 안식년을 일본에서 보낸 김정운교수도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일본문화에 대해 여러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왜 일본 만화에 나오는 여자는 항상 하얀 빤스를 살짝 보여주는가?’, ‘왜 일본의 불륜 영화에서는 꼭 기차가 나오는가?’, ‘왜 일본의 책은 아직도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되어 있을까?’ 이런 얼굴 붉혀지는 호기심부터 흔한 호기심까지. 그래서 그는 고민에 빠졌다. 어느 책이나 자료를 봐도 저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 김정운은 이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자신이 가진 심리학적 지식들을 총동원해 답을 내리고자 결심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의 의문들에 길을 걷는 순간까지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남의 집 담벼락에 기대 수첩에 휘갈기면서 하나 둘씩 그의 의문들은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지적 호기심으로부터 스며 나오는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일본열광’인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언급된 “왜 일본 만화에 나오는 여자는 항상 하얀 빤스를 살짝 보여주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한 단어로 답을 내릴 수 있다. 바로 ‘마조히즘’. 근대적 주체 형성이 왜곡된 일본 속에서 다양한 마조히즘의 문제가 나타났다고 보면 된다. (물론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지만 심리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저자의 ‘답’이다.) 하얀 빤스를 입고 있는 대부분의 만화주인공들은 교복을 입고 있거나 제복을 입고 있는데 여기서 군대와 학교는 근대 일본인들이 경험했던 일방적인 통제의 공간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하얀색 빤스를 입은 여자주인공이 한 때 자신들을 억압했던 학교 또는 군대의 교복과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체적 행위가 부정되는 억압 속에서 욕구가 좌절되는 폭력적 트라우마가 제복 속의 숨겨진 하얀빤스라는 상징적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한국 남자들이 술만 먹으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선임한테 맞은 얘기부터 훈련 때 고생한 얘기까지. 모두 마조히즘의 지루한 변형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렇듯 ‘일본열광’에서 저자는 자신이 가졌던 의문들에 대한 답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때로는 전문지식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가 설득과 설명보다는 ‘나는 이렇게 본다.’라는 자신의 단순한 관점과 생각만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이것이 정답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일 뿐인 것이다. 그 또한 스스로 책 속에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가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어 학술적인 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저자 김정운의 눈을 통해 가볍게 일본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일본열광’은 가벼워서 좋다. 마치 저자 김정운의 일기를 보는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솔직하고 가볍다. 그래서 더욱 끌리고 보는 내내 많이 웃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래서 우리는?’ 이다. 그가 말하길 그의 하얀빤스 이야기는 이렇게 발전되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근대적 주체 형성이 왜곡되어서 다양한 마조히즘의 문제들이 나타났다. 그럼 우리의 근대적 주체는 어떤가?” “우리 모더니티의 구체적 내용은 어떤 것인가?” 일본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 우리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과연 우리는 그들과 무엇이 다른가? 하루가 멀다하고 논두렁위에 세워지는 러브호텔 세미오틱스(기호학)는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 일상에서 반복되는 이 분노와 적개심은 무엇인지 저자는 묻는다. ‘일본열광’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