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이 어떻게 국가인권위의 수장으로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16일 국회에서 열렸던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얘기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이후 사망한 22명의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만든 “쌍용차분향소에 방문한 적이 있냐”는 심상정 의원(통합진보당)의 질문에 “점심 먹으러 가면서 지나가 본 적 있다”고 대답한 것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그의 인권감수성을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용사참사처럼 국가가 개입한 인권침해사례에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고 인권위원회에 ‘식물’이라는 오명을 안겨다 주기도 했다. 수차례에 이른 논문표절시비 또한 그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부적격한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여러 의혹에도 불구하고 현 위원장의 국가인권위원장 연임에는 큰 장애가 없다. 국회동의절차가 있어 인사청문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무총리 선임과 달리 국가인권위원장의 자리는 대통령의 지목만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청문회나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무시와 버티기로 일관하면 그만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이 대통령의 입맛대로 결정된다는 얘기다. 청문회를 통한 압박으로 현 위원장이 사퇴한다 해도 새로운 얼굴이 더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문제도 여기에서 나온다. 현 제도 아래에선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대통령이 보편적 인권에 무지한 측근을 국가인권위원장을 선임하고, 인권위원장은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인권침해에 눈을 감는 일이 계속 발생할 확률이 높다. 식물인권위로의 퇴화에 인권위원장 선임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10년 11월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및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등 회원들이 행사장 입구에서 인권위 독립성 훼손과 장애인권 후퇴 등에 시위하며 진입하려 하고 있다. ⓒ 뉴시스


인권위의 수장이 대통령의 손에 정해져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오히려 인권위원장은 대통령의 손이 인권을 침해할 때 이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각 부처 장관은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대통령의 손발이 돼 움직이지만 인권위원장은 거기에 족쇄를 채워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헌 위원장을 퇴진시키는 것만큼 인권위원장 선임 과정의 제도적 개선이 중요한 이유다. 태국, 인도네시아, 남아공, 인도처럼 인권위원(장) 인선위원회를 먼저 구성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추천한 후, 이 중에서 임명하는 방법이 여러 인권단체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 있다.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식물청문회’에 허울뿐인 검증을 맡기는 비민주적 방식 대신에 추천-인선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자는 뜻이다.

허점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원장 선임 절차가 공론화 되지 않았던 이유는 제법 훌륭한 이들도 있었던 덕분이다. 인물의 중요성은 법적 강제력도 없는 권고가 70% 넘게 관철됐던 신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하지만 현병철 위원장의 선임 후 3년의 식물인권위와 재선임 뒤에 이어질 ‘공기’인권위의 가능성에서 선임 과정의 제도적 문제가 드러났다. 이를 부각시켜준 현 위원장과 그를 지목한 이 대통령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인권위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헌 위원장의 퇴진 요구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 위원장이 퇴진한다 해도 향후 3년을 책임질 인권위원장을 지목하는 것은 이 대통령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인권위가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헌 술은 헌 부대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