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생활통지표와 함께 <탐구생활>이라는 책을 하나씩 받으면 그 때부터 신나는 여름방학 시작이었다. 물론 일기쓰기와 갖가지 방학숙제가 발목을 잡긴 했으나 원 없이 자유롭던 시간들로 기억된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이 되면 여름방학은 입시학원과 학교에서의 보충수업에 반납해야 했다. 하지만 곧 다가올 캠퍼스에서의 낭만을 꿈꾸며 우리는 스스로를 어르고 위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생 신분으로 맞게 되는 매 번의 여름방학. 교수님이 내 주시는 방학숙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야하는 것도 아니지만 지난날들의 여름방학과 비교해보면 왠지 몸과 마음이 더 무거운 기간이다. 최근 취업포털 인쿠르트가 대학생 2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생 여름방학 계획 1위(79%)로 ‘취업 준비 활동’이 꼽혔다고 한다. 빠듯한 일정의 학기를 보내고 맞은 여름방학이지만 마음 놓고 늦잠 한 번 자는 것도, 나를 위한 잠깐의 여유를 허락하는 것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보이기 위한 ‘나’가 아닌 진정으로 ‘나’를 위한 방학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번 여름, 그들의 뜨겁고도 특별한 계획을 들여다보자.

아름답게 연기하고 싶어 발레를 배우기로 했어요! 

머지않은 미래에 무대에서 연기하는 자신을 꿈꾸고 있는 서정한(충남대 경영학과 09, 25세)씨. 여름방학을 맞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 기말고사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서 체력이 고갈됐었거든요. 그래서 여름방학 하고나서 며칠은 푹 잤어요.”라며 웃는다. 그가 세운 특별한 여름방학 계획은 바로 발레! 으레 발레라고 하면 가녀린 여자의 몸동작만 떠올라 ‘남자의 발레’는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가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한 내막이 궁금해져 그 계기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원래 연기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어서 연극영화학과에 지원했었는데 떨어지고 많이 좌절했어요. 그렇게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입학했죠.”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고 입학식을 하기도 전, 학교 지리를 잘 모르던 그가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바로 학교 연극동아리. 그는 “연극동아리에 찾아갔더니 선배들이 뚝딱뚝딱 소리를 내며 나무로 연극 소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제가 제일 먼저 찾아가 1번으로 원서를 쓰고 왔죠.”라고 말하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연기의 매력에 흠뻑 젖은 그가 이번 여름에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한 것은 <배우수련>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연출가 안민수라는 분이 쓴 책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발레를 통해서 몸동작의 기본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배우로 무대에 서게 될 경우 움직임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하고 싶고, 내 몸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연기를 위한 몸동작을 다듬기 위해 발레를 배우기로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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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움직이고 싶은 바람으로 인해 발레를 선택했다고 말하던 그가 갑자기 핸드폰으로 한 동영상을 보여준다. 한 발레리노의 발레 공연이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라는 사람이에요. 진짜 멋있죠? 발레를 하려면 키가 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이 분은 저와 키가 비슷하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멋진 동작을 소화해내는 것을 보고 저도 하면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웃음)”

그는 “배우는 몸이 악기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매일 훈련하고 다스려야 해요.”라며 이번 여름에 발레를 배우면서 몸동작을 잘 다듬고 싶다고 말했다. “예전에 수능 끝나고 친구랑 같이 재즈댄스 배우러 다닌 적이 있었어요. 친구가 안 와서 저 혼자 배우는 날이면 민망했어요. 재즈댄스는 동작이 많이 요염했거든요. 하지만 발레는 점프나 발동작같이 기본적인 자세를 배우는 거라 그렇게 많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국토대장정 기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바로 여기에 장장 23박 24일간의 외박을 계획하고 있는 당찬 여자가 있다. 올해 여름방학, 국토대장정을 통해 자신과의 진지한 만남을 기대하고 있는 김준희(충남대 불어불문학과 09, 23세)씨를 만나봤다.

그녀는 “빨리 방학을 맞아 탈출하고 싶었는데 막상 방학이 되니 매일 보던 사람들을 못 봐서 섭섭해요. 복수전공을 하며 친해졌던 사람들을 막 알아가려던 찰나에 방학이라는 훼방꾼이 끼어든 느낌이에요.(웃음) 그래도 수면부족 상태였는데 방학 하고나서 3일은 누구보다 꿀맛 같은 잠을 잔 것 같아서 좋아요.”라며 여름방학을 맞는 기분을 유쾌하게 쏟아낸다.

올 여름 나 자신을 찾는 여행이나 나를 위한 도전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녀는 이번 여름방학의 절반을 국토대장정으로 보낼 계획이다. “사실 올 여름엔 한 달 정도 어딘가로 꼭 떠나고 싶었어요. 가장 먼저 고려한 게 인도여행이었는데 사실 인도의 여름은 다들 진저리를 치는 날씨예요. 그래서 결국 겨울로 미루게 됐죠. 그리고 다른 것들을 알아보다가 국토대장정이 눈에 띄었어요. 우리나라 국토를 종단하면서 저의 체력과 정신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웃도어 활동과 도전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국토대장정 도전 결정이 더 빨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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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국토대장정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애?(웃음) 농담이에요. 기대하고 있는 것은 굉장히 많아요. 다이어트워에 참가한다는 기분으로 살도 꼭 빼고 싶고, 같이 고생하며 만난 좋은 사람들과 더 끈끈한 사이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모르고 있던 제 안의 저를 끄집어내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믿고 있던 내 체력은 사실 어느 정도가 한계인지, 극한의 피로감 속에서 내 정신력은 어떤 방법으로 나를 다독여줄 것인지 궁금해요. 제 능력을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랄까요.”

이렇게 당찬 그녀에게도 걱정되는 것이 있다. 뙤약볕 속에서 변하게 될 피부색도 걱정이고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조원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걱정들이 무색하게 다시 그녀의 활기찬 대답이 들려온다.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어요. 저는 저를 믿거든요. 아마 준비금이 아까워서라도 그 일정을 전부 다 소화할 거예요!”라며 웃는다.

국토대장정 안에 숨겨둔 그녀의 또 다른 야무진 계획이 있다.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막연히 걷기는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저는 23박 24일 동안 자기브랜딩을 완성해 나갈 거예요. 나는 누구이고,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나를 어떻게 브랜드화 할 수 있을지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고민해 보려고요. 국토대장정이 끝나고 나면, 아마도 저는 이전보다 저를 더 많이 이해하고 훨씬 성숙해 있겠죠?”


‘내가 지금 네 나이라면 기뻐서 발가벗고 광화문을 뛰어다녔을 거야!’ 어느 책에서 읽고 난 후 정신이 번쩍 들어 항상 기억하고 다니는 구절이다. 가혹한 현실은 그토록 꿈꾸던 젊음의 자유와 낭만을 또 다시 유예하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 누려야 할 젊음의 기쁨을 그리고 지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찾아야 할 자신의 참 모습을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무쪼록 이번 여름방학을 진정으로 나를 위한 시간으로 설계해 나가길 바란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그들과 우리의 뜨거울 여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