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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미중간 신냉전 되나
 



올해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벌어진 반중국 시위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6월 25일, 필리핀 수빅항에 미 핵잠수함이 기항했다. 날로 첨예해 가는 중-필리핀간 황옌다오-스카보러섬 영유권 분쟁 때문이다. 필리핀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미 정찰기 파견을 또한 요청했다. 이웃한 군사대국 중국의 팽창에, 이 지역 국가들은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재건하기 바쁘다.

필리핀의 수빅 해군기지, 클라크 공군기지는 92년 마지막 미군을 떠나 보냈지만 최근 재개장을 서두르고 있다. 76년 미군이 철수한 태국 우타파오 공군기지도 마찬가지다. 한때 적국이었던 베트남의 깜라인만 해군, 공군기지도 베트남산 살상무기 수출금지해제를 조건으로 미군에게 사용권을 대여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 중국과 베트남은 난사-시사 군도 영유권 분쟁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복귀전략의 일환으로 기지의 일시적 사용권 허가를 논의 중인 국가는 이 밖에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호주, 싱가포르에 이른다. 미국과 기지 사용 관련 협정을 체결했거나 그럴 예정에 있는 이들 국가들을 보면 중국의 제1 도련선(해양방위경계선)을 바깥으로부터 봉쇄하는 형태다.

중국은 자체적으로 이미 인도-대만-오키나와-일본 본토를 잇는 제1 도련선을 확정하고 도련선의 내해(이 경우 남중국해와 한반도 근해)에서 “반접근, 거부 전략(Anti-Access, Area Denial Strategy)”에 입각해 중국 영해의 독립성과 중국 이익에 대한 어떠한 침해도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을 바라보는 제2 도련선은 인도네시아-괌-사이판을 연결하며, 이 경우 인도양과 태평양 두 개 바다가 중국의 반접근, 거부 전략의 대상이 된다.
 


이렇듯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인근 소국들이 거의 유일한 대안인 미국을 지렛대 삼으면서, 이곳 아태 지역에서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중국의 해양전략이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형국이다. 한때 G2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을 정도로 무역, 금융을 비롯한 경제 분야에서 마치 한 몸처럼 긴밀하게 엮여있는 미중 양국이지만 아태 지역의 지정학 차원에서는 가두려는 미국과 뻗어 나가려는 중국 사이 아무런 완충장치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되살아나는 냉전의 추억과 한국의 정체성
 

지난 6월 25일, 26일 양일간 필리핀 마닐라에서는 제 13회 ‘세계한민족포럼’이 열렸다(시사인 7월 9일자). 남북한, 한반도 주변 4강,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논의하는 이 포럼에서 이번 유독 불거진 문제는 다름아닌 ‘아태 지역에서의 한국의 정체성’이었다. 중국과의 라이벌 구도에서 역시 미국을 지렛대로 삼고 있는 인도측 참석자는 인도-한국-일본 간 싱크탱크 협력체인 트랙Ⅱ 회의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측 참석자는 아태 지역에서의 한국이 미국의 하위 전략 파트너 위치를 자임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드러냈다. 포럼은 한국의 입장을 뚜렷이 정의하지 못한 채 끝났다. 이와 관련해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은 최근 7월 12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일 ‘군사협력’과 미국의 아태 전략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해외에서 냉전 시기와 같은 대규모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미국으로서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의 유기적 협력을 통해 병력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게” 동북아에서의 최대의 관심거리다. 이를 위해서라도 과거사로 인해 데면데면해온 한일간 군사협력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제 13회 세계한민족포럼(The AsiaN 6월 27일자)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논란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결국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구성한다. 미국은 과거 냉전 스타일 봉쇄전략을 이번에는 중국을 대상으로 부활시키려는 생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남중국해의 국지적 분쟁은 어느 하나 돌연 군사적으로 치달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다.
 
미국이 아태에 집중하려면, 또한 유사시 아태에 개입하려면 일단 등 뒤의 동북아를 안정시키는 게 필수이며 한국과 일본이 ‘전향적으로’ 과거사를 털고 손잡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한국의 국익을 위하는 길일까. 그럼에도 역대 정부는 큰 정책 기조의 변화 없이, 더군다나 현 정부 들어서는 더욱 선명하게,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일부로서의 한미동맹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나아가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하위 파트너 역할까지 수행할 때 한국이 기대할 수 있는 대가는 미국의 안보우산과, 북한 봉쇄일 것이다.
 
한국이 바랄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현상유지라면 이보다 나은 전략은 없을지 모른다.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지금 같은 빈사상태로 최대한 오래 버텨주는 것이 국내 정치 운용에도 가장 유리하다. 그러나 가장 성공적인 봉쇄전략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최대치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표면적인 안정 뿐이다. 여기엔 북핵 문제의 해법과 장래의 통일 문제에 대한 아무런 전망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미중간 지정학적 대립이 심화되면 한국은 그 위치상 불가피하게 중국 봉쇄선의 최전방 역할을 맡게 된다. 중국, 러시아라는 대륙세력의 존재 자체를 상정하지 않는 남북 통일이나 안보 프레임의 구성이 불가능함을 감안할 때 이는 우리 스스로 미래의 선택지를 대폭 삭제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 군사협력 문제를 비공개로 졸속 처리하려 했던 정부나, 협정 논란을 대선용 정쟁거리로 삼아 취한 작은 승리에 만족한 야당의 모습 모두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군사 동맹이 마치 지뢰처럼 즐비하게 깔려있는 곳에서 외치는 평화에 대한 언술은 모두 기만일 수 밖에 없다. 정치의 해인 2012년, 이 해프닝이 더욱 가슴에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