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10화

“승원 오빠, 미안해요. 오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



흐를 것만 같은 눈물을 참느라 정신이 없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아 ..다행이도 꿈이구나! 꿈은 반대라는데… 진짜일까? 난 매우 짧은 순간 동안 ‘꿈은 현실의 반대’ 라는 확실하지 않는 이론을 적용해서 채영이에게 고백하고 오케이 사인을 받는 상상을 해본다. ‘하, 이승원 이런 꿈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설레는 거야?’ 생각해보지만 나의 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런 꿈이 처음이 아니란 것을 생각해보면 채영이에 대한 마음이 점점 깊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긴 하지만 우리의 관계가 내 욕심만큼 가깝지는 않다는 사실 또한 분명 하다. ‘이승원 정신 차려, 빨리 학교 갈 준비나 해. 지각하지 말고.’   



아침의 꿈 때문일까? 하루하루 힘든 알바와 생각처럼 잘 모이지 않는 돈과, 바쁜 학교생활 속에서 나에게 큰 활력소가 되어주는 채영이를 떠올린다. 특히 웃는 모습이 예쁜 채영이. 어제 피자 가게에 하늘색 핀으로 반 묶음 머리를 하고 나타난 채영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채영아 머리핀이 참 예쁘네 .. 너도 참 예쁘고..’ 정말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는데.. 쑥쓰러움에 말은 입안에서 맴돌기만 한다. 머리핀이 예쁘다는 말 정도는 할 수도 있었는데… 얼굴이 뜨겁다. 볼이 빨게 질까봐 신경이 쓰인다.

 

과제 때문에 잠을 못자서 그런지 몸이 천근만근이다. 학교 가는 길이 이리도 멀었나? 요즘은 참 길가에 커피집이 많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1,500원에 아메리카노를 판매한다는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커피집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하지만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다시 학교로 향한다. 편의점에 가면 1,000원 짜리 커피를 살 수 있고 주로 이용하는 자판기 커피가 나에겐 딱 이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는 싸구려 커피.. 에이, 커피가 다 똑같지.. 비싼 커피라고 속이 든든한가? 나를 위로해보지만 왜 나라고 별다방이나 콩다방에서 비싼 커피를 먹고 싶지 않겠는가, 아니, 별다방과 콩다방의 커피를 꿈꾸는 것도 아니다. 1,500짜리 커피가게 앞에서도 고민해야 하는 내 모습이 초라하다.



난 정말 순진하게도 이십대는 별처럼 반짝여야 한다고, 반짝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렸다. 이십대라고 해서 누구나 마냥 반짝이는 날들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친구들에게는 별다방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영화를 보고 쇼핑을 하고,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일이 당연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친구들은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직접 벌어야만 하고, 항상 비싼 학비 걱정을 해야 하고 월세를 낼 걱정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당연한 일이 라는 것을 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고민과 생각을 하며 학교 정문을 지나서 인문사회관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시간은 8시 50분. 일교시 수업 시작이 십분 남았다.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학교 정문에서 상대적으로 먼 공과대학이나 자연과학대학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급하게 뛰는 모습도 보인다. 걸음을 좀 더 빨리 하며 인문 사회관 안으로 들어갔는데 1층 커피가게 안에 채영이와 비슷한 아이가 있다. 아니 채영이가 맞다. 인문사회관 1층 커피가게는 학교에서 가장 가격이 비싼 곳이다. 채영이가 아침부터 여기 왠일이지.. 이런데 올 애가 아닌데… 일교시 시작이 얼마 안 남았지만 인사를 할까 하는 마음으로 커피가게에 다가가는 찰나, 어떤 남자가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를 들고서는 채영이 앞에 앉는다. 그리고 들려오는 채영이의 목소리 



“선배 고마워요, 커피 잘 마실께요! 샌드위치도 잘 먹을께요!”

“뭘, 저번에 너가 과제 도와준 것 고마워서 쏘는 건데 뭐, 앞으로도 학기 마칠 동안 잘 부탁한다. 그 대신 언제든 연락하라고. 선배로서 밥은 많이 사줄 수 있으니까.”   



심장 박동수는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선배, 고마워요 커피 잘 마실께요!” 귓가에 맴도는 채영이의 목소리와 머릿 속에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나에게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는 채영이와의 커피 사건과 채영이의 마지막 말. “오빠, 고마워요 커피 잘 마실께요!” 창피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그 마지막 말은 그 날 하루를 얼마나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채영이의 뒷모습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이승원 이 바보 같은 놈아.. 채영이가 니 여친이냐, 여친이라도 다른 남자랑 커피마시면 안 돼? 다른 남자한테 고맙다고 하면 안 돼? 왜 이런거에 소심해 지고 그래… ’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정리하면서 강의실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간다. 물론 채영이가 다른 남자와 단 둘이 커피를 마시는 것도, 고맙다는 말이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 것도 속상하지만 내 상황은 채영이에게 언제든 커피를 사줄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위축이 된다. 힘들지만 그래도 성실히 임하고 있는 피자 가게 알바, 좋은 알바 동료들 그리고 요즘 들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채영이와 나. 현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시급 5,000원’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기분 좋게 받아드리려 해도 나를 서럽게 한다.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 감히 학교에서 가장 비싼 가게에 들어가 사먹어 볼 수 도 없었지만,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분명히 만 오천 원에서 이만 원에 이르는 가격일 것 이다. 



이만 원이라… 내가 무려 ‘4시간’ 동안 피자 가게에서 일한 대가로 받는 돈. 이렇게 마음이 힘들고 위축될 때면 독립을 선언한 날을 떠올리게 된다. 독립을 생각하며 부모님의 품에서 응석받이로 살기 보다는 이를 깨고 나가 배고픈 성인으로 살고자 하던 나의 결심, 그리고 그때의 막연한 설렘을 함께 상기해본다. 피식 웃음이 난다. “난 진정한 성인이 될 꺼야. 부모님의 도움이 아니라 혼자의 힘으로 자립하는 개념 대학생이 되는 거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땐 참 뿌듯했었는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었지…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애송이 같다. 현실의 처절함이 뭔지도, 돈 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 지도 모른 채 뭐가 그렇게 설렜던 건지…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정말 나의 결정이 애송이 같은 것일까, 내가 왜 바보가 되어야 하나, 라는 의구심에 속이 상한다. 난 이제 나도 어린이가 아닌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고 부모님께 손을 빌리지 않고 살고 싶었다. 어쩌면 나의 가치관은 정말 당연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나는 피자가게에서 정말 성실히 일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단지 열심히 일한다고 돈이 모이는 것이 아니란 것을 난 이제야 절실히 깨닫는다. 그렇다 문제는 ‘시급 5,000’원 인 것이다. 내가 바보 같은 것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독립하지 못하고 학비와 생활비를 얻어서 쓰고 있는 다수의 대학생들이 바보 같은 것 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도 한 시간당 5,000원을 주기에 등록금은 고사하고 생활비를 대기도 힘들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늘은 수업을 들을 의욕도 잘 나지 않을 것 만 같고, 학교를 파한 후 알바를 하러 가는 발걸음도 무거울 것 만 같다. 조금씩 가까워질 듯하면서도 아리송하기만한 채영이와의 관계도 ‘독립’이라는 것도 평소보다 훨씬 더 어렵게만 느껴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