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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좀 끕시다.”
 
대구의 한 고사장. 감독관의 시험 규칙 설명 후 조용한 수험장 한 구석의 수험자가 불쑥 손을 들고 말한다. 규정상 단 한명이라도 에어컨을 끄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원칙적으로 해당 교실은 에어컨을 꺼야한다. 감독관이 수험자에 되묻고 명확한 발언인지 확인을 마친 후 에어컨이 꺼진다. 모두가 침묵하지만 분위기는 전에 없이 살벌하다. 문제는 제239회 토익이 치뤄진 7.29(일) 이날, 대구기상대에 따르면 경북 경산시 37.4도, 대구가 36.8도로 기온이 치솟아 대구경북내륙지역 일대에 폭염경보가 내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풍경은 비단 이번 여름에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한국토익위원회는 토익의 LC파트가 진행되는 동안 에어컨을 끄는 것이 원칙으로 하여 단 한사람이라도 에어컨을 끄기를 원하면 해당 교실의 에어컨을 끄는 규정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수원의 한 고사장은 아예 일괄적으로 에어컨의 전원을 내리기도 했다. 그때문에 여름철 시험 규정에 에어컨을 끄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은 접수 이전에 에어컨을 켜 두는 학교를 알음알음 찾아 시험등록을 하기도 한다. 물론 그 정보는 정확하지 않다.

에어컨 : 틀어야 한다. vs 꺼야 한다.

여름 토익에 에어컨을 틀어야 한다는 의견의 취업 준비생 김씨(25)는 “소리 때문에 예민해지는 것 보다 더위가 더 거슬린다. 30명이 가득 찬 시험장의 실내온도는 실제로 30도 이상에 육박한다. 결국 LC는 집중력 문제가 아닌가.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에어컨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집중력 더 문제다.”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규정상 에어컨을 끄는 것이 우선임을 역설한 대학생 고씨(24) “당연히 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소음에 노출된 공간에서 듣기를 테스트 하는 것이 아이러니 아닌가. 실제 경험으로도 에어컨을 끄자 훨씬 잘 들렸다.”고 말했다. 감독관이 시험 규정을 설명하는 순간부터 고사장 내에는 치열한 눈치 보기가 시작되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결정에 반대하는 수험자는 시험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한다. 그만큼 ‘에어컨’하나에 눈치싸움도 치열해지고, 소위말해 사람이 ‘치사’해 진다. 시험장 내에서, 또 시험이 끝나고 온라인 상에서의 논쟁이 격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이다.

29일 시험을 치고 나온 대학생 장씨(26)는 치열한 설전과 다툼, 에어컨을 끄고 켜는 데에 보이지 않는 눈총들을 보며 개인의 의견 이전에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지적했다. 그는 “상대방을 향한 무조건 적인 비난이 문제다. 한 사람으로 인해 만장일치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만장일치는 다수를 배제한 단 한사람의 의견으로 결정이 뒤집어지는 소수의 지배의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다수결로 에어컨을 켜는 것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 또한 소수를 묵살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다수결이 아닌 다른 대책을 찾아야지 않겠는가.” 라고 말했다.

더위냐 소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장씨의 지적과 같이 토익시험이 끝난 후, 비단 토익 시험장 뿐만이 아니라 토익과 관련된 모든 사이트의 게시판은 에어컨 논쟁은 도배된다. 논쟁이 인신공격으로 비화되는 것도 다반사다. 에어컨을 끄자고 주장하는 쪽은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에어컨을 켜자고 주장하는 쪽은 소수를 존중하지 않고 ‘쪽수’로 밀어붙인다는 비아냥에 직면한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고사장의 30명 중 단 한사람의 반대자의 의견으로 결정되는 소수의 지배방식은 이러한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향해 현실에서 열변을 토하거나, 인터넷 공간에서 비난을 주고 받거나 하는 것이 여름철 고사장 에어컨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논쟁의 주체 각각은 개인의 생각을 상대방에 강요할 수 없다. 양쪽 다 본인이 중요시하는 상반된 쾌적한 환경에서, 실력을 검증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의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는 것은 시험장의 룰을 변경할 수 있는 한국토익위원회 뿐이다. 그러나 논쟁이 지속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한국토익위원회는 위 문제에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사계절 동일한 시험료를 부과하면서 봄·가을과 같은 시험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폭염경보까지 오른 날씨의 책임이 아니라 분명 그들의 책임임에도 말이다. 결국 더위와 소음 중 어떤 장애물을 선택할지는 고스란히 그 날의 운에 맡겨지게 되고, 심판이 발을 뗀 마룻바닥 위에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선 수험자들끼리 서로의 입장차를 주장하며 으르렁 대는 꼴이 매년 반복되는 것이다.

여름철 토익대란, 정말로 개선할 방안은 없는 것인가?

이에 장씨(26)는 여름과 겨울철 고사장을 구분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에어컨을 켠 구역과 끈 구역을 나누거나, 권역별 고사장을 구분하여 에어컨 유무로 모집하는 방안이다. 개인이 각자에게 맞는 쾌적한 환경의 고사장을 선택하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이루어진 ‘소수의 지배’ 방식의 일괄적인 에어컨 정책의 강제 적용 문제점을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이 실현된다면 여름 ‘에어컨’과  겨울 히터로 반복되는 논쟁이나, 에어컨을 끄고 켠것으로 인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억울함의 성토가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어능력시험에 있어 한국에서 독점적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토익. 토익위원회는 올해 토익응시료를 전년 금액이 비해 7.7% 높은 4만 2000원으로 상향조정했다.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하는 응시료 인상을 감행했지만, 한국토익위원회가 그전보다 나은 시험환경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이며 성토의 대상이었던 ‘에어컨 문제’ 해결에 귀를 여는 것은 어떠한가. 토익위원회와 응시자들 앞에 8월 폭염 속 토익이 11일, 26일 두 차례나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