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동상이몽!
다양한 전공을 가진 20대들이 모인 고함20. 같은 주제를 보고도 전공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하나의 키워드를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두명의 필진이 풀어내는, ‘동상이몽’입니다. 이번주 주제는 ‘종말론’입니다.

세계종말, 정말 2013년은 오지 않을까? – 신학

2012년에 세계가 멸망한다? 그 날짜는 12월 21일이 될 것이다? 아무리 구체적인 종말 이야기가 나와도 코웃음을 쳤었는데, 미친 듯이 더운 기록적인 날씨에 ‘이러다 진짜 내년 안 오는 거 아니냐’는 농을 하게 된다. 왠지 너도 나도 장난삼아 종말을 이야기하다 보니 일부 사이비의 주장이라고만 생각했던 종말론에도 ‘솔깃’해서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종말론의 반대 근거를 찾아낼 필요가 있게 된 것이다.

종말 이야기는 일부 기독교 세력이 설파하고 있다. 이는 예수가 지상으로 돌아올 때 현재의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것이라는 기독교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문제는 종말론을 퍼뜨리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종말’, 즉 세계의 파멸과 동일시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의 용어들은 상징 언어로 기능하는 것일 뿐 세계가 정말 종말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종말의 시기와 장소를 특정지으려는 성향이 있는데, 성경에는 ‘종말이 언제, 어디서 올지 예수인 나도 모르겠으니 궁금해하지 말라’는 예수의 뜻이 적혀 있다.

‘하나님 나라’가 세계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성경의 대표적 예언서 이사야 중 BC 8C 예루살렘 시기에 작성된 제1이사야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그 시기의 백성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도덕적 타락, 종교 혼합주의, 경제적 불의, 정경유착, 권력층의 부패, 사회적 약자 소외 심화 등 갖가지 사회 문제를 앓고 있었는데, 종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바로 이에 대한 경고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다. 신의 뜻을 받들어 회개하지 않으면 신은 아시리아를 도구로 삼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언(신의 뜻)이다.

신의 최종목표는 심판 그 자체가 아니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계를 세우는 것이다. 성경의 예언 구절은 전쟁이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견뎌내면 좋은 세상, 즉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세상이 시작될 것이며, 그런 세상이 오기까지 잘 견뎌내고 싸워나가자는 의지와 다짐, 신의 뜻을 받들어 올바르게 살아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미다. 진짜 종말론의 내용은 세계가 파멸하고 인간들이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게 되며, 이 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가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 세력에서 종말론의 의미가 세계 파멸의 텍스트로 사용되는 것은 항상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신도를 늘리려고 하거나, 혹은 막대한 돈을 수취하려고 하는 ‘사이비’적인 시도이거나. 이미 종말론은 역사적으로 수없이 많이 반복되어 왔다. 종말의 시기가 정해지고 두려움이 조성되자,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믿고 집문서와 돈다발을 들고 산으로 들어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나 항상 예상은 빗나갔고 우리는 지금도 이 세상 속에서 잘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도 2012년 12월 22일에도 만나 반갑게 인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이제 ‘그만’ 해도 된다.

* 글의 내용 전반은 이용주 교수님의 ‘기독교와현대사회’ 수업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2012, 바야흐로 종말의 해 – 현대문학

과거 종말론은 우리나라에서는 썩 통하지 않는 장르였다. 언제나 전쟁의 위협을 받아서 공포에 무감각해 진 탓인지 장르소설이 사멸한 시장 탓인지, 국산 종말문학은커녕 변변찮은 번역서도 찾기 힘들었다. 하지만 해외의 다양한 종말장르, 이를테면 미드 <워킹데드>나 폴아웃 시리즈 등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국내의 종말문학도 점점 살아나는 추세다. 김이환의 <절망의 구>, 유명 작가들의 단편을 엮은 <종말문학 걸작선>, 코맥 매카시의 <로드>등 종말문학도 과거와는 비교할수도 없게 풍성해졌다.

종말 문학은 생각보다 유구한 역사가 있는 장르다. 이를테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경은 요한계시록부터 시작해 종말에 대한 갖가지 은유적인 서술로 종말론 신봉자들을 양성해 왔고 천문학자 노스트라다무스가 16세기에 남긴 쿼티렌이라는 예언서는 1999년에 종말론적 인기를 끌며 깜짝 유행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름 태평성세로 평가받는 20세기 말에는 과거의 비참했던 전쟁을 거름으로 삼아 더욱 현실성 있는 종말문학이 등장한다. 과거의 종말론은 일종의 구원자적, 고통의 해방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지금의 종말론은 오히려 유희적인 성격이 강하다.

종말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뒤편에는 우리의 욕구가 숨겨져있다. 공포영화를 보면서 비명을 지르지만 또 다시 보게 공포영화를 찾게 되지 않던가? 종말이 가져다주는 원초적인 공포의 짜릿함과 종말이라는 극단적인 배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자극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매력을 갖고 있다. 귀신이 아무리 무서워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처럼 인류를 위협하는 공포의 실체를 사람들은 끝까지 확인하려한다.

대중뿐만 아니라 제작자 입장에서도 종말론은 입맛을 돋우는 주제다. 위험을 피하는 액션, 고난 속에서 나오는 휴먼 스토리, 예측불허의 위험은 폭넓은 주제와 문학적 기제를 사용가능하게 한다. 인류가 핵에 의해 멸망하는 핵전쟁 배경하나만으로도 절망에 대한 담담한 다큐적인 묘사(<핵전쟁 뒤 최후의 아이들>)부터 인류를 구하는 모험(<메트로 2033>)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게다가 인류멸망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은 블록버스터를 신봉하는 헐리우드 입맛에도 딱 들어맞는다.

종말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게는 엔터테이먼트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예언의 실패로 종말이 종교에서 상업으로 옮겨온 지금, 언제 올지 모르는 종말에 겁내기 보다는 종말을 향유할 수 있는 오늘 날에 감사하는 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