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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장애인 운동선수, 그들도 같은 운동선수이다 – ① 애국심의 불편한 진실


  ① 같은 대한민국 선수, 너무나도 다른 시선: 애국심의 불편한 진실




출처: 데일리안





 



대한민국이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5위)을 거두었다. 올림픽 초반 박태환, 신아람, 조준호 등이 당한 오심 피해를 딛고 거둔 성적이라 더욱 화제가 되었다. 양학선, 송대남, 기보배 등 금메달리스트들에게는 ‘자랑스런’이라는 수식어가 언제나 붙어 다녔고,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도 ‘잘 싸웠다!’ 라는 격려의 말이 따라다녔다. 



올림픽 직전부터 방송사는 메달 유력 후보들에 대한 프로그램을 연이어 방영하며 감동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올림픽 기간에는 방송이 연일 감탄사로 뒤덮였다.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쳤고, 뉴스에서도 금메달 소식을 맨 처음에 전하면서 자랑스럽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네티즌들도 인터넷 댓글란, 커뮤니티 등에서 기쁨에 겨워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쳤다. 우리 선수가 금메달이라도 하나 땄다 싶으면 한동안 방송은 그 선수에 대한 찬사로 뒤덮였다. 국민들도 거기에 호응하면서 ‘자랑스런 대한민국!’ 등의 구호를 받아들이고 외쳤다. 비단 이번 올림픽 때만 그런 게 아니라, 매 올림픽마다 그랬다. 그야말로 애국심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시기였다. 실제 올림픽으로 인한 국민들의 애국심 증가 효과는 꽤 크다. 올림픽은 국가 단위로 구성된 팀 간의 승부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고, 이를 통해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끌어올린다. 성적이 좋을수록 그 효과는 더욱 강하다.   






출처: 조이뉴스









그렇게 전국을 열광과 환호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올림픽이 지난 13일(한국시각)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올 8월 29일부터 9월 9일까지 패럴림픽, 다시 말해 장애인올림픽이 개최된다. 올림픽 폐막 후 2주 뒤다. 전세계에서 운동을 가장 잘 하는 장애인들이 모여 열띤 경기를 펼치는 패럴림픽은, 장애인들도 스포츠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건전한 경쟁을 펼치는 스포츠의 정신을 실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뜻깊은 국제 대회다. 21개의 종목이 진행되며, 174개국에서 7000여명에 달하는 선수들이 출전한다. 한국은 13개 종목에서 85명의 선수들이 출전한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매스컴에서는 ‘이제 패럴림픽!’ 류의 기사를 통해 패럴림픽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리고 장애인 선수들을 취재한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패럴림픽에는 올롬픽 때와 같은 요란한 방송이 없다. 대회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경기 생중계로 방송 편성표 전반을 도배하던 방송사는, 패럴림픽 중계는 낮 시간대 혹은 밤 시간대에 하이라이트로 대체하거나 스포츠뉴스에서 주요 소식을 전달하는 데 그친다. 중계는 케이블 TV에서 극히 일부 경기만 해 주며, 그나마도 생중계는 아예 없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하지만 TV에 비해선 훨씬 효과가 미미하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경기를 몇 번이고 보여주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스포츠는 생중계가 생명인데, TV 생중계가 전무하다 보니 패럴림픽 열기는 올림픽에 훨씬 뒤처진다. 드높았던 감탄의 목소리도 급격히 작아진다. 가끔 훈훈한 시선으로 장애인 선수들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거기에 대고 애국심을 논하거나 ‘자랑스러움’을 외치는 경우는 드물다. 올림픽의 그 뜨거운 분위기가 무색할 정도다.





이 대조적인 현상을 보고 있노라면, 올림픽에서 그토록 크게 외치던 ‘애국심’의 기준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애국심이 고취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스포츠다. 자기 나라가 대결에서 이기면 거기에 속한 국민들은 환호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은연중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그것은 우월감에 기반을 둔 우쭐함이다. 민족주의 의식이 강한 대한민국이 유난히 더 올림픽에 열광하는 이유이며, 사람들은 마치 내 일처럼 선수들을 지켜본다. 게다가 올림픽에는 ‘메달’이라는, 승리를 상징하는 뚜렷한 표상이 있다. 메달리스트는 그 즉시 우상화되며 애국의 마스코트로 떠오른다. 메달이 있는 건 패럴림픽도 마찬가지다. 패럴림픽의 메달 역시 같은 대한민국 선수들이 획득하는 메달이다.

그러나 우리는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선수들이 딴 메달을 내 일처럼 좋아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기독교방송 CBS의 조사 결과, 2008 베이징 패럴림픽을 생중계로 시청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700명 중 7.6%밖에 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다시보기로 시청한 비율 역시 17.6%에 불과했다. 이러다 보니 누가 메달을 땄는지는 물론 메달을 얼마나 땄는지조차 잘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장애인 선수들도 분명히 국위선양을 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지만, 우리는 그들에게서 올림픽 때의 강렬함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차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같은 한국인임에도 관심의 정도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차별을 두지 말자는 얘기는 매스컴에서도 많이 나온다. 이럴 때 매스컴은 매우 계몽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작 패럴림픽 중계를 통해 장애인의 국위선양과 긍정적인 모습을 실제적으로 보여줘야 할 매스컴은 수익성 부족 등을 이유로 중계를 꺼린다. 




지난 베이징올림픽 때부터 장애인 메달리스트가 받는 연금 및 포상금은 비장애인 메달리스트의 그것과 같아졌다.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은메달, 동메달리스트의 연금 및 포상금이 상승했을 때도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이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 내에서 이들 간 메달의 가치에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 올림픽 때면 애국을 그렇게 외치던 방송사의 무관심, 그리고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국민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패럴림픽의 메달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차등을 두는 애국심을 진정한 애국심이라 할 순 없다. 방송사가 올림픽 기간에 외치는 애국심 안에는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열광적인 분위기를 고조시켜 더욱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며, 이것은 시청률 상승 및 이미지 제고, 광고 수주 등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우리는 방송사가 기가 막히게 연출하는 분위기에 취해 이러한 애국심의 이면을 보지 못한다. 



애국심 코드를 이용하는 건 방송사뿐만이 아니다. 경기를 보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을 통해 사람들에게 발현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오롯이 대한민국 선수들이 자랑스럽기 때문에 발현되는 것일까? 사실은 내집단 안에 속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가시적인 성과를 통해 나타나는 쾌감, 그리고 집단에 기대어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욕망이 그 원천으로 보인다. 방송사가 애국심 코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시청자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촉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장애인 선수들로는 이런 욕망을 실현하기가 어렵다. 일반 엘리트 스포츠선수들과 달리 우리는 대개 장애인을 ‘불행한, 도움이 필요한 집단’ 정도로 여긴다. 그건 장애인 스포츠 선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이들이 메달을 따면 그것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우월감의 형태로 오는 게 아니라, 단지 역경을 극복한 하나의 사례로서 비교적 덤덤하게 다가온다. 올림픽에서 흔히 보이는 ‘아군과 적군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장애인’이라는 또 다른 집단 하에 있기 때문에 보다 대결적 구도가 덜한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들이 노력하고 성과를 이루는 모습을 분명히 좋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타자화, 즉 자기 자신과 떨어뜨려 생각하는 면이 있다. 자신은 ‘장애인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들에게 향하는 애국심은 희석된다. 그리고 방송사는 올림픽과 패럴림픽 간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서 ‘애국심 코드’의 양면성을 부추긴다.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감동을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다. 다만 올림픽 때마다 타오르다가 올림픽이 끝나는 순간 사그라지는, 마치 거품과도 같은 애국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 애국심이 정말로 순수하다면, 그 열광의 물결이 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우리 장애인 선수들에게도 향해야 하는 것 아닐까. 장애인 선수들도 엄연한 한국인이며, 한국인이라는 집단 안에 있다. 방송사의 패럴림픽 중계가 계속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패럴림픽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자기들 스스로 그 애국심의 진정성을 부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한편 일반 시청자들도 다시 한 번 이에 대해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애국심을 빙자하여, 사실은 그것을 지극히 개인적인 쾌감과 만족을 위해 이용한 것은 아닐까? 이중적인 태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고함20
고함20

20대의 소란한 공존 [고함20]의 대표 계정입니다.

3 Comments
  1. 뚜벅이

    2012년 8월 31일 11:55

    패럴림픽 자체가 솔직히 올림픽을 따라하기 위한,, 어쩌면 장애인들의 도전이라는 것 보다 올림픽의 의미를 뒷받침하기 위함이 강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2. 챠크렐

    2012년 9월 2일 15:26

    글쓴이입니다. 물론 올림픽의 정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테지만, 저는 패럴림픽을 단지 올림픽의 `하위 항목` 으로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올림픽을 따라하는 게 패럴림픽이라는 사고는, 정상인 아래에 장애인이 있다, 라는 사고를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게다가 패럴림픽이라는 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자존감을 드높이는 장애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하나의 목표이니까요.

  3. suli

    2012년 9월 11일 12:24

    동감되는 부분이 많아 이 글을 제 블로그에 태그했는데 혹시 문제가 된다면 답해주세요. 비공식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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