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인문학은 취업과 관련이 없는 학문이 되었다. 캠퍼스에는 경영학이나 국제통상학 같은 실용학문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철과 같은 인문학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줄어들었다. 경영학과가 아닌 학생들 중 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경영학과를 복수전공하고, 경영학과 수강신청은 경쟁률이 치열하다. 대학생들은 인문학이 이렇게 천대받는 이유를 취업이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맞는 말일까. 대학생들의 말과는 달리 몇 년 전부터 대기업CEO들은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통섭(統攝Consilience)형 인재를 찾고 있다. 기업인들의 말에 따르면 인문학을 배워야 통섭형 인재가 될 수 있다는데, 먼저 통섭형 인재가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보자.

통섭(統攝)

통섭은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책 ‘Consilience’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통섭(統攝)’으로 번역하면서 쓰인 말통섭은 물리화학적 결합을 넘어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생물학적 합침을 뜻한다학문적 벽을 허물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통섭형 인재로 꼽힌다그는 이공계 출신이면서 인문학과 예술 감각에 능했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애플이 존재한다고 했다.

           

통섭은 학문 간의 융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대표적인 통섭형 인재는 애플의 스티븐 잡스인데, 그는 애플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인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대표적인 혁신기업이 되면서 국내에서도 통섭형 인재를 찾기 시작 했다. 한국에서 통섭형 인재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곳이 포스코(posco). 포스코는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일에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인재를 원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 2003년부터 구조적 선발기법을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해왔다. 구조적 선발기법의 채용과정은 다음과 같다.

서류전형1차면접(직무역량평가)2차면접(가치적합성평가)인턴실습(3)

포스코는 이 과정을 통해 통섭형 인재인지를 판단한다. 1차 면접 때 12일간 합숙면접으로 직무역량과 종합적인 품성을 평가하고, 전문 평가 교육을 이수한 사내 전문가들이 21조로 면접자 1명을 평가한다. 토론주제도 단순 시사 문제가 아닌 포스코경영연구소에서 직접 개발해 만든 문제들로 토론 과정을 중시한다. 이 토론은 무려 50분 동안 진행된다. 채용 실무 담당자인 김병규 대리는 시사 문제로 찬반 토론하는 방식으로는 구조화면접을 할 수 없다고 보고 토론 자료와 역할을 부여하고 합의점을 어떻게 도출하는지를 관심 있게 살펴본다고 말했다. 김 대리는 취업기간 중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통과하긴 힘들고 평소 토론과 사고를 많이 한 사람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은 인문학과 관련이 깊다. 이런 방식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기업은 포스코뿐만이 아니다. 또 통섭형 인재를 구별할 수 있는 구조적 선발기법을 선호하는 기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선발과정에서 인문학은 당락을 결정짓는 상당히 중요한 지식이 되고 있다. 면접만으로 구성되는 이러한 방식의 선발 방식은 시간과 비용을 상당히 소모하는데 대기업이 그런 것을 감수하고서도 통섭형 인재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기업이 인문학을 다시 들여다보는 까닭

인문학 명문인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의 애덤 포크 총장은 지난해 방한 강연을 통해 인문학은 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와 정치의 불확실성이 만연한 시대에 정의도덕자유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인문학은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주고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과 도덕적 규율을 갖게 하며, 자신과 이웃 나아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품성을 길러준다고 했다.

 

▲ 기업은 창조적인 경영을 위해 인문학을 다시 찾고 있다.

                 

성과와 결과물에 집착하던 시대를 벗어나 주변과의 배려가 중시되는 시대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의 근본 가치인 인문학이 매우 중요하고, 오히려 더 위력을 떨칠 것이라는 것이다. 기업이 성과 위주의 경영에서 벗어나 주변과 교감하고 나눔경영을 하려면 철학적 배경이 필요한데, 수익경영에 유효했던 기존 경제학이나 경영학전자공학 등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나 기업인이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배경으로 한 인문학적 소양으로 무장할 때 진화형 나눔경영을 완성시킬 수 있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그룹의 인사 담당자는 주변과의 나눔은 미래경영 중 가장 세련된 전략이 요구되는 분야라며 인간에 대한 본질적 탐구 능력과 인간애()를 갖춘 이들만이 나눔경영을 자연스럽게 꽃 피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적 재능의 인재가 중요시되는 시대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나눔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었지만 이제 이익만 추구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어지고 있다. ‘나눔 경영’이 기업의 운명 또는 수익과 깊은 관계를 맺고있기 때문에 인문학이 중요해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통찰력이 풍부한 인문학 접목을 통한 새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창조경영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3년에 천재경영론을 말했다. ‘1명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것인데, 이 발언은 이후에도 2006년의 창조경영론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는 학문 간의 융합 없이 경영학 등의 실용학문만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는 대기업CEO들과도 방향이 같다. 이것이 기업이 인문학을 찾는 이유다.

 

인문학을 사랑한 CEO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CEO들은 누가 있을까. 해외에서는 위에서 말했듯이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애플이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말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새로운 삼성을 인문학에 걸었다. 그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조적 개발자를 찾으라고 주문한 것은 발상을 깨는 창조적 리더만이 미래경영을 이끈다는 신념과 무관치 않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에 15%가 넘는 인문학 전공자가 있어 커뮤니케이션 매개 역할뿐 아니라 다양한 지식을 융합, 창의적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이러한 배경은 인문학적 철학을 담고 있다는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3의 상품전략과도 무관하지 않다.

구본걸 LG패션 회장은 패션 브랜드에 인문학적 감성을 담을 것을 강조한다. “패션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그 안에 이야기가 있어야 하며,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고 스토리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과 자연학이 조화된 통섭형 인재를 중시하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나 올바른 역사관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창하고 있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역시 인문학 예찬론자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삼성가의 전통에 따라 대학에서 인문학을 먼저 배운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서울대에서 경영과는 무관한 서양사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친 뒤 미 브라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는 세계를 이해하는 폭넓은 가치관을 학습한 뒤 기업 경영에 필요한 경제, 경영학적 안목을 갖추는 과정을 밟았다고 말했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은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한 배경으로 대학에서 인문학을,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배워 접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영화와 음악, 문학 등에 대한 넓은 관심사가 금융에 감성적 요소를 가미하는 동력이 된다고 역설한다.

시장논리에 지배된 대학은 생존을 위해 인기 없는 인문학 강의는 폐강하고 실용학문을 늘린다. 캠퍼스에 토익강의가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취업을 위해 인문학을 멀리하는 대학생과 인문학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대기업의 관계가 아이러니하다. 시장논리를 지배한 주체가 객체에게 인문학을 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기업 취업을 원한다면 선택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토익·자격증·봉사활동·해외연수’등의 스펙을 쌓는 20대에게 기업은 인문학적 소양이라는 스펙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