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였다. 볼라벤은 올해 한국을 찾은 태풍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남부지방에서는 강풍에 의해 나무들이 픽픽 쓰러지고 아파트 베란다 창문이 통째로 깨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예상과는 달랐다. 2~3시쯤이 ‘고비’라는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서울의 하루는 생각보다는 매우 평온했다. 평소보다는 강한 바람이 불었으나, 모두가 예상한 극한의 사태는 아니었다. 28일 오후 3시 기상청 관측 자료에 잡힌 서울의 풍속은 초속 7.3미터로 태풍이 지나간 후인 29일 오후 3시 풍속인 초속 5.1미터에 비해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기상청이 발표한 28일 하루 동안의 서울 최대풍속도 초속 18미터에 그쳤다.

ⓒ 기상청

태풍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지나갔지만, 볼라벤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나 위험에 대한 지각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다. 8월말에 ‘큰 태풍이 올 것’이라는 삼성화재의 예측이 기상청의 부정과 달리 들어맞았다는 소식에서부터 관심의 크기는 증폭됐다. 이미 26일을 전후해서는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20대를 포함한 젊은 층들 사이에서는 서로에게 태풍 피해를 예방하자는 메시지가 퍼지고 있었다. 언론은 매미, 루사 등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혔던 태풍과 볼라벤을 비교하며 볼라벤의 위험성을 떠들어댔다. 특히 방송은 태풍의 이동 경로에 따라 위험지역에 기자와 카메라를 보내놓고, 24시간 실감나는 영상을 방송해 사회 혼란을 가중시켰다.
오히려 이러한 ‘설레발’식 보도나 정보들 덕분에 피해가 줄어들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번 태풍의 피해가 적었던 것은, 철저한 대비 덕분이라기보다는 기상 조건 자체 덕택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매미나 루사의 경우 한반도에 직접 상륙해 육지를 관통했던 반면에, 볼라벤은 서해 바다를 따라 이동했다. 볼라벤은 ‘강한 태풍’이었지만 크기는 대형이 아닌 중형이었다.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동안 중심기압 950헥토파스칼의 위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일각의 보도와는 달리, 태풍의 눈은 이미 27일에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으며, 한반도 상륙 이전에 이미 중심기압은 960헥토파스칼로 완화된 상태였다. 태풍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위험했지만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만 해석하기도 어렵다. 태풍 이동경로, 태풍의 눈, 중심기압 등 모든 징후들이 이미 태풍 북상 전에 예상된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SNS를 통해 과하게 퍼진 볼라벤에 대한 포비아가 불편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것들이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기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언론과 SNS가 지적했던 볼라벤의 위험성에 대한 가장 큰 근거는 최대풍속에 관련한 것이었다. 볼라벤의 최대풍속과 순간최대풍속이 매미, 루사 당시의 그것보다 더욱 빠르며, 지붕이 날아가고 열차가 탈선하며 사람이 날아다닐 정도의 풍속이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보도시점의 볼라벤은 아직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해상에 있는 상태였고, 매미, 루사의 풍속은 한반도에서 ‘관측된 자료’에 근거한 것이었다. 보통 한반도로 북상하는 태풍들이 북상하면서 중심기압, 최대풍속 등의 세력이 약화된다는 점에 비추었을 때 이러한 단순비교는 100% 오류라고 볼 수 있다. ‘헬게이트 지역, 매우위험 지역’이라고 명명된 볼라벤 위험지역 리스트의 경우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것이었다. ‘매미는 살짝 스쳤는데 볼라벤은 돌직구다’라는 SNS를 떠돌던 메시지 역시 실제와는 정반대로 된 거짓 정보였다. 볼라벤 포비아를 키웠던 주범 중 하나인 볼라벤이 지나간 오키나와 사진 역시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볼라벤 포비아가 불편한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이 방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외출하면 자살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는 둥 요단강에서 만나자는 둥 하는 ‘위험에 대한 인식’을 부추기는 SNS 상의 메시지들과, 언론이 보여주는 자극적인 화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태풍이 오는 하루 동안의 일상을 포기해버렸다. 약속도 취소하고 신문지 앞에서 계속 물을 뿌리고, 라면이나 물과 같은 비상식량을 구비하고 양초를 찾아놓는 등 ‘과도한 태풍 대비’가 이루어졌다. 서울의 경우엔 사실상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갔으니, 준비 안했다가 당하는 것보단 나으니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건조한 문체’로 보도해야 한다는 언론인의 기본 준칙을 팔아먹은 윤리 의식 없는 기자들과 사실에 대한 확인 없이 무작정 SNS를 통해 포비아를 퍼뜨린 사람들로 인해 사회와 개인들은 기회비용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짓 정보에 속는 일이 잦아지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처럼 ‘진실’이 힘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하루 쉬고, 다시 14호 태풍 ‘덴빈’이 북상한다. 언론은 볼라벤이 스쳐가자마자 덴빈의 위험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거짓 정보가 판치게 될는지 한 번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