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생동성 실험 아르바이트는 일명 ‘마루타 알바’라고도 불리며, 제약회사들이 흔히 ‘제네릭(Generic)’이라 부르는 복제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기 전에 실시하는 일종의 생체 내 실험을 뜻한다. 즉 이미 시판 중인 오리지널 약(대조약)과 동일한 약효성분으로 만든 제네릭(시험약)을 피험자에게 투약한 뒤 그 임상 결과를 비교분석해 두 제제가 인체 내에서 흡수되는 속도, 양(생체이용률)이 동등한지 등을 확인하는 것 이다. 



-주간동아 올해 5월 21일 자 “식약청 ‘마루타 알바’ 난 몰라”에서 일부 발췌.




이제 독립생활은 끝났다. 수차례 화면을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몇 번이나 내 눈을 의심했다. 계절학기 학점이 어떻게 D+가 나올 수 있지… 출석은 완벽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스치는 한 줄기의 기억. 그렇다. 나는 계절학기 시험 전날 정우 형과 술을 마시며 형에게 F학점이 뜬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실은 더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 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건 너무 창피해서 들려줄 수도 없는 이야기이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



학점은 당연히 더 내려갔고 난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사실 지금 내 머릿속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부모님께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독립생활 까지 포기한다면 내 자신이 더 한심해 질 것 같다. 자존감이 추락할 것만 같다. 신이시여! 어떻게 하죠.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알바로 모아놓은 돈이 있긴 하지만 등록금엔 턱없이 부족하다. 절망 속에서 멍하니 인터넷만 들여다본다. 가십거리 기사들을 몇 개 보다가 불현듯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도 찾아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친다. ‘고수익 단기 아르바이트’ 를 검색창에 입력한다. 그리고 나타난 내 눈을 ‘휘둥그레’하게 한 단어 하나, 



생.동.성.알.바.



<상세 모집요강>




*위치: 서울시 건강구 안전동 종합병원 


*인근대학: 한국대학교


*인근 지하철: 2호선 강남, 2호선 신림, 5호선 화곡




*안녕하세요 M알바입니다.


의학검진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모집합니다. 


아래까지 충분히 읽어 보신 후 지원해 주세요!




*시험수고비 : 테스트약품(시험일자)에 따라 시험수고비가 변경됩니다. 


(2박 3일은 기본 50만원, 3박 4일은 기본 80만원)





*생동성 실험이란?
   ….


이 실험은 약품의 부작용을 테스트 하는 실험이 절대 아닙니다!


   …. 





 *근무일자 및 소요 시간


신체검사 1일 소요


2박 3일 또는 3박 4일의 생동성 실험 




*지원 방법 


M알바 온라인 지원, 전화 지원 


(M알바에서 채용정보 보고 연락드립니다! 라고 말해보세요. 문의가 쉬워집니다!)




 

일주일 후, 서울시 건강구 안전동 대학 병원



신체검사를 가볍게 통과 했다. 부모님이 주신 튼튼한 몸뚱아리에 고마워하며, 난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3박 4일이라…. 별거 아니네. 오늘 같은 밤이 두 번 더 지나가고 그 다음날 아침에 집에 갈 수 있어.’ 
 

내 자신을 위로 하려 해보지만 사실 일 년 같은 4일이 될 것 만 같다. 어두침침하고 소독약 냄새가 나는 병원 안에 갇혀있자니,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 본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의 40대 중반의 중년 남자를 떠올린다.



“저기.. 요.. ” 


“네?” 


“젊은 분이 돈이 많이 급하셨나 봐요… 사실 전 .. 전.. 정말 .. 제가 왜 도박에 빠졌을까 싶어요. 뭐 이거 한다고 다 갚을 수나 있겠어요. 제가 날린 돈이 얼만데… 왜 저라고 자식들한테 미안하고 부인한테 미안하지 않겠어요. 근데 지금도 이거 알바비 입금되면 또 도박하러 갈까 무서워요. 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해도 안하면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



아저씨의 말을 끊어 버린 젊은 의사의 목소리 


“설명은 이번 한 번이 끝이니깐 조용히 좀 해주시구요,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있으신 분?”



나는 생동성 실험 아르바이트에 참여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나와 한 배를 탄 사람들을 죽 훑어본다. ‘얼마나 사정이 어려웠으면…’ 하는 연민의 마음과 ‘어떤 어려운 사정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섞인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예상 외로 20대 남자들이 많은 것 같다. 저들도 혹시 등록금 때문일까? 생각을 하는 찰나, 한 남자가 손을 드는 것이 보인다.



“정말 안전한 거죠?”


그리고 이어지는 간호사의 대답, 



“서류에 써져있는 그대로에요. 국내에서 시판중이거나 시판중인 성분과 동일한 성분으로 제조된 약물을 대상으로 하고 있구요. 제약회사의 의뢰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이에요.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시험계획을 승인받고 그 결과도 보고하여야 하죠. 그러니까.. 안전한 시험입니다. 걱정 안하셔도 되요.”



나눠준 약을 먹는 순간의 불안감, 채혈을 하려고 순서를 기다릴 때의 묘한 긴장감이 떠오른다. 지금은 안전하고 안전하지 않고를 떠나서 우울함이 가득 스며있는 이 병원을 탈출하고 싶다. 잘못은 무엇인가? 계절 학기에서 또 삽질을 해버린 나? 학자금 대출에 최소 학점 기준을 두고 있는 한국 장학 재단?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 부모님이 아시면 정말 속상해 하실 무모한 일을 혼자 꾸며버린 나? 아니면 한 학기에 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스스로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워서 결국은 이런 무모한 일을 하게 만든 사회?
 

잘못은 나에게 있는가, 사회에 있는가. 나인가 사회인가. 우울함에 잠은 오지 않고 계속 ‘나’라는 단어와 ‘사회’라는 단어를 반복해 떠올리는 사이. 어느새 스르르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