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캡쳐

자고 일어나니 졸지에 자신의 얼굴이 아동성범죄자의 얼굴로 둔갑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9월 1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병든 사회가 아이를 범했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피의자 고종석이라는 사진이 게재되었다. 사진엔 ‘범인 고종석의 얼굴.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고종석(왼쪽) 지인과 어울리는 모습’등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1일 저녁 인터넷 공간과 SNS를 중심으로 자신의 친구 사진이 피의자 고종석의 사진으로 도용되어 조선일보에 실렸다는 내용의 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글쓴이는 “제 친구사진이 나주 성폭행범 (고종석) 사진으로 도용됬습니다. 신문 1면으로 퍼졌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의 친구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린 사진이 성폭행범의 사진으로 둔갑해 돌아다니고 있다며 네티즌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글쓴이는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언론사와의 통화내용을 요약한 뒤 “왜 기사는 마음대로 내셨으면서 정정기사는 바로 낼 수 없는지…참..”이라며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했다.

조선일보 캡쳐


조선일보는 다음날 2일 1면의 사진이 범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진이라는 정정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취재팀은 범인 고종석에게 직접 확인을 시도했으나,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일반인은 물론 취재진의 접촉이 차단돼 본인 확인을 못했습니다.”라며 본인확인 절차 없이 사진을 게재했음을 스스로 고백했다. 

특종에 눈이 먼 신문사들의 위험한 보도 행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31일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사건이 언론사에 첫 보도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31일 오전 나주역에서 경찰에 검문에 불응하고 도망친 한 “30대 중국인 A씨”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해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나주 초등생 성폭행’…수상한 중국인 붙잡혀”라는 제목을 사용했고 SBS는 “중국인 1명, 경찰 보자…나주 초등생 성폭행 범인?”, 한국일보는 “나주 초등생 성폭행, 중국인 1명 조사”등의 제목을 통해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31일 당일 이 중국인을 포함해 총 16명의 용의자가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었으며 결국 중국인 A씨는 체류기간이 만료된 불법체류자였음이 밝혀졌다. 16명의 용의자들 중 중국인 A씨가 다른 용의자에 비해 특별히 더 의심받을만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은 제목을 통해 마치 중국인 A씨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늬앙스를 내비쳤다. 다분히 지난 수원 강간살인사건의 피의자 우원춘을 의식한 보도 행태였다. 대중의 반중국감정에 호응한 이러한 보도들은 실제 피의자가 면식범인 ‘옆집 아저씨’인 것으로 밝혀지자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었다.

 

반중국감정에 편승한 위험한 보도행태


강력범죄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라는 대중의 압박은 오랜 논란거리였다. 이에 최근 조선일보는 대중의 여론에 호응하는 포퓰리즘적인 보도행태를 보여줬다. 조선일보는 지난 7월 22일 통영 초등학생 살해사건 당시 방송에 노출된 범죄자의 영상을 기사를 통해 공개하며 “조선닷컴은 지난 2009년 검거된 경기 남서부 연쇄 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국민 알 권리와 공익을 위해 반인륜범죄에 대해서는 범인이 확실하면 수사 단계부터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이라는 거창한 말 속엔 특종에 목메는 싸구려 언론이라는 실체가 있었음이 이번 오보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범인이 확실하면’이라는 단서에는 정작 본인확인이라는 최소한의 절차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과연 최소한의 절차를 무시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조선일보가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 공개를 통해 지키고자 하는 공익이 무엇인지는 정작 확실치 않다. 범죄예방을 위해 얼굴과 이름을 기억한다 한들 적어도 10년도 더 지난 이후 출소 할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사람은 거의 없다. 실명과 얼굴 공개로 대중이 얻을 이익은 오로지 그들의 관음적인 궁금증에 대한 해소이며 언론은 그 대가로 높은 클릭수와 판매량이라는 이익을 얻을 뿐이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강력범죄를 다룸에 있어서 언론은 사실위주의 차분한 보도와 함께 범죄를 불러온 사회적 원인을 낱낱이 분석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대중의 어긋난 궁금증에 호응하는 기사보단 차분하고 분석적인 기사야 말로 언론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