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대학교에 다니는 씨는 직전학기 학점에서 4.5(4.5만점)를 받아 수석장학금(등록금 70% 감면)을 확신하고 있었다. 장학공시 첫 날에도 수석장학 대상자로 떠서 역시나했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영어수업 장학금 가산점 적용을 미처 하지 못해 수석에서 차석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전화에 씨는 황당했다. 씨는 자신은 만점을 받았고 초과 학점인 20학점을 이수했기 때문에(최대 기본 이수학점 18학점) 영어강의 하나로 인해 차석으로 밀려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초과학점은 가산점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며 영어강의에 가산점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공지했기 때문에 이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씨는 결국 0.02점 차이로 인해 수석장학금을 받지 못했고, 이로 인해 100여만 원을 더 내야 했다


모든 수업에 대해 영어강의를 실시하고 있는 카이스트. 출처: 파이낸셜뉴스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의 영어강의 수강 촉진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영어강의 장학금 가산점 제도로 인한 해당 학교 학생들의 불만이 거세다. 특히 더 높은 학점을 받았음에도, 이수한 영어강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더 낮은 수준의 장학금을 받거나 아예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대부분의 대학교들은 일정 수 이상, 혹은 일정한 과정의 영어강의를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변경했다.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이화여대, 중앙대 등은 일정 수 이상의 영어과목을 이수해야 하며, 동국대의 경우 입학 전에 보는 영어시험 등급(A, B C, 세 등급)에 따라 주어지는 일정한 트랙을 이수해야 한다. 한편 카이스트, 포스텍처럼 100% 영어강의를 실시하는 학교도 있다. 이처럼 대학교는 영어강의를 의무화했으며, 점차 영어강의 비율을 늘리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학교는 영어강의를 들으면 장학금 산정점수에 가산점을 줌으로써 영어강의 수강을 독려하고 있다. 영어강의를 많이 들을수록 가산점을 더 많이 부여해 차후 장학금을 받는 데 이득을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강의 장학금 가산점 제도를 실시하는 대학교 중 하나인 A대학교의 경우, 영어강의 하나를 들으면 학점에 1.025, 두 개를 들으면 1.05를 곱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네 개를 들으면 1.1을 곱한다. 소수점 차이로 장학금 여부가 갈린다는 걸 생각하면 이 가산점은 결코 작은 점수가 아니다. 이러한 가산점 제도를 도입한 데 대해 A대학교 측은 국제화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영어가 점차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미리 대학교에서 영어에 익숙해지고 영어 능력을 함양하도록 하려는 조치다라고 말했다.


2007년 한 언론사에서 조사한 영어강의 관련 자료. 5년이 지났지만 이 때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출처: 헤럴드뉴스



문제는 영어강의와 장학금 사이의 이러한 연계에 대해 학생들의 반응이 불만 일색이라는 것이다. 씨는 영어강의가 어려운 면이 있으니 가산점을 주려는 건 좋다. 그러나 강의의 난도, 그리고 심화전공이냐 기초교양이냐 하는 면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영어강의니까 가산점을 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하며 영어강의 장학금 가산점 제도의 융통성 부족을 지적했다. 충청도 소재 B대에 다니는 씨 역시 아무래도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영어강의에 집중하다 보면, 영어와 별로 상관없는 학과 학생들이 전공에 소홀해질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해당 학교 커뮤니티에서도 장학금 발표 기간이면 항상 영어강의 가산점에 대한 불만의 글이 쏟아진다. 주로 학점을 더 높게 받았음에도 영어강의를 더 많이 들은 다른 학생에게 밀려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는 식이다.


대학교 측에서 어느 정도 규제안을 마련하긴 했다. A대학의 경우 최대 영어강의 4개까지만 가산점이 주어지며 그 이상 영어강의를 들어도 영어강의 4개 이수에 해당하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전공과목의 영어강의 개설율이 전체의 50% 미만인 학과는 그 마지노선이 2개로 줄어든다. 또한 A학점의 비중이 최대 30%인 다른 수업과 달리, 영어강의에서 A학점의 비중을 50%로 규정해 두어 학생들이 보다 쉽게 학점을 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영어강의를 듣는 편이 매우 유리하다. 이는 영어강의 2개 이수까지만 효과가 있는 학과들도 마찬가지다. 영어강의 하나 차이로 인해 결과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듣고 싶은 강의 대신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어강의를 고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학교 영어강의의 질 또한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학금을 통해 영어강의 이수를 사실상 강제하는 게 과연 교육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될지 심히 의문이다. 실제 영어강의 장학금 가산점 제도가 이루어지는 학교들의 영어강의 수준이 특별히 높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교수의 영어 구사력 부재, 학생들의 수업내용 이해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불만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교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의 질이 의심되는 영어강의로 사실상 학생들을 몰아가는 처사가, 과연 대학교가 존재하는 이유인 지성인 함양에 도움이 될까.


물론 영어강의 확충은 대학교 발전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 실제 최근 가장 대학의 평가 지표로 떠오르고 있는 언론사 대학평가 순위의 경우, 순위를 매기는 기준 중 하나가 국제화지수인데, 이 지수를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영어강의 개설 수다. 각 대학교가 영어강의를 의무화하고 영어강의에 장학금 가산점까지 부여하는 것이 명목상으로는 세계화 시대를 대비하고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제화지수를 끌어올려 대학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실상 대학의 영어강의 앓이는 대학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얻기 위해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장학금의 근본적인 의미마저 왜곡해야 할까. 어디까지나 성적우수장학금은 성적이 좋은, 즉 학점이 높은 학생에게 주어져야 하는 장학금이다. 물론 외국어 강의가 한국어 강의에 비해 어려운 건 사실이며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어강의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영어강의 이수에 의한 이득이 남발되는 것은, 결국 학생들이 더 넓은 것을 볼 기회를 놓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듣고 싶은 강의, 이해가 잘 되는 강의 대신 장학금을 위해 영어강의를 고르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 상황일까? 학생들이 영어강의 장학금 가산점 제도에 부당함을 느끼는 게 괜한 것이 아니다.


영어강의 장학금 가산 제도는 학생들이 영어강의들 듣도록 유인하고 단기간 대학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속이 뻔히 보이는 당근이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학교들은 장기적인 차원에서 학교의 순위를 끌어올리는 건강한 방법을 고민하고, 아울러 장학금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졌다면 영어강의 못 들었다고 만점자가 수석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