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독립기념일!

성인이 된 20대가 왜 독립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독립기념일’은 가상의 화자 ‘나’가 부모님의 품을 떠나 독립하면서 겪는 일들을 다루는 연재 소설입니다. ‘나’의 독립 스토리를 통해 20대의 독립에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하고, 20대의 독립에 대한 고민을 유도하고자 합니다.

“저기… 상민씨는 이 부분 좀 맡아주세요.”
“네!? 뭐라구요?”
“여기 보이시죠? 이 부분 상민씨가 좀 맡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아… 네… 근데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에 조모임하면 끝까지 남아있을게요.”
“근데 오늘 민정씨도 안와서 상민씨 가시면 저희 둘이 회의해야 하는데…”
“제가 진짜 급한 일이라서요. 죄송해요. 다음에 뵐게요.”
“네… 그럼 어쩔 수 없고… 왕멍씨가 여기에 표시된 부분 조사를 해주셨음 좋겠는데…”
“에!? 에!? 저 한국말 잘 못해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어쩌다 이렇게 조가 짜였는지… 정말 최악이다. 알바하느라 시간도 없는데 얼떨결에 커플 한 쌍에 중국인이랑 같은 조가 되었다. 멘붕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걸까. 커플들은 시종일관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참여도 안하고 중국인은 한국말도 제대로 못한다. 애초에 시간이 안 맞아 혼자 국문학과 수업을 듣게 됐을 때부터 징조가 안 좋는데… 계획에도 없던 조별 과제와 망삘(?) 나는 사람들과 한 조라니… 이건 재앙이다.

게다가 오늘은 알바시간까지 빼고 조모임에 왔다. 근데 민정씨는 회의 몇 분 전에 못 온다고 카톡으로 통보하고, 상민씨는 아무 말 없다가 급한 일 있다며 중간에 나갔다. 아오, 내 아까운 시간! 아무 것도 못 하고 회의가 끝나버렸다. 두 사람이 조모임을 빠지고 따로 만나려는 건 아닌지 의심까지 간다.

어쩐지 국문학 수업에서! 국문학 학생인! 남녀 둘이! 내게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부터가 이상했다. 그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온다. 찾아보면 분명 나 같은 학생 몇 명쯤은 찾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내가 모든 과제를 다 해야 할 판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사귀게 된다면, 그게 설령 CC일지라도, 나는 절대 주변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리라.

“오늘은 좀 늦었네요. 승원 오빠! 맨날 저보다 먼저 와 있더니.”
“조별 과제가 있어서 좀 늦었어!”

평소보다 늦게 피자집에 도착하니 카운터에 채영이가 서 있다. 오늘따라 더 예뻐보인다.손님들을 대하는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 채영이가 나를 알아보고 먼저 인사까지 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낮에 민폐 커플과 중국인 사이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듯 하다. 일하는 중간중간에도 채영이에게 시선이 가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결국, 별 것 아니지만 처음으로 채영이에게 집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채영이는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오빠, 저 이번 정류장에서 내려야 돼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응, 그럼 집에 조심히 들어가구. 잘 가.

밝은 모습으로 채영이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런데,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시간은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이 시간에 여자애 혼자 집에 가는 게 안전할 리 없었다. 버스정류장 쪽은 밝아도 곧 주택가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깜깜할텐데… 내 머릿 속도 점점 깜깜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전 뉴스에서 본 여대생 성폭행 사건까지 떠오르면서 내 불안감은 계속 커져만 갔다.

‘그래! 나도 여기서 내리자!’

내가 집앞까지 데려다주는 건 채영이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고, 가는 뒷모습이라도 잠깐 봐주기 위해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기 때문이다. 채영이가 나쁜 일을 당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 버스정류장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주변은 차차 어두워져갔다. 채영이도 어두워진 걸 느꼈는지 주위를 살피며 조심히 걷는 것 같았다.

“저기요.”

갑자기 채영이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네!?”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잠깐이면 되는데…”
“아… 아뇨… 저 빨리 집에 가봐야 해서요.”

그 남자가 갑자기 채영이의 허리를 잡았다.

“왜이래요? 이거 놓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는 최대한 빨리 채영이를 저 XX에게서 구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에 112를 누를 시간도, 경찰을 부를 시간도 없었다. 무조건 내가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야!”

순간, 그 XX는 채영이에게서 손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전속력으로 그 놈 앞으로 뛰어갔다.

“에이씨…”

그 XX는 나를 보자 당황하더니 바로 반대쪽으로 도망쳤다. 잡으려고 뒤따라 갔지만 이미 그 XX는 달아날 대로 달아난 상태였다. 솔직히 놈이 주먹을 잘 쓴다든가, 칼을 들고 있다든가, 영화에서처럼 무서운 상황이 벌어질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놈을 제압할 수 있었다. 어쨋든 나는 채영이가 걱정되어 그 XX를 따라가던 걸 멈추고 다시 채영이에게로 갔다.

“채영아! 괜찮아?”
“오… 빠…”

채영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서 나에게 안겼다. 1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채영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나 또한 마음이 아팠다. 채영이는 곧 울음을 그치고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결국, 이대로 채영이를 보낼 수 없어 나는 채영이네 집 앞까지 채영이를 부축했다.

“오빠, 정말 고마워요…”
“그래… 너무 무서웠지… 아까 일은 빨리 잊고 집에가서 푹 쉬어. 내일되면 괜찮아질거야. 밤에 항상 조심하면서 다니고…”
“네, 그럼 들어갈게요. 잘 들어가세요.”
“응. 푹 쉬어.”

천만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오늘 내가 채영이와 같이 버스를 타지 않았다면, 채영이를 뒤따라 내리지 않았다면, 골목길까지 채영이를 봐주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하기 싫다. 곧바로 나는 채영이가 잘 들어갔나 싶어 채영이에게 카톡을 했다. 채영이는 바로 고맙다고, 괜찮다며 내게 답장을 했고 그제서야 안심한 나는 고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왠지 내일부터는 늦게 가는 채영이가 항상 걱정될텐데, 그 때마다 채영이를 직접 집으로 데려다주고 싶다. 채영이도 그런 나를 이해해줬으면 좋을텐데…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