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100일도 안 남았다. 20대 후반이면, 최소한의 정치적 의식이 생기고 난 뒤 경험하는 세 번째 대선일 것이다. 이제 또 한 번의 대선을 맞이하기 전에 지난 두 번의 대선을 되돌아보고, 그 때와 지금 상황은 어떤점이 달라졌는지, 또 대중들의 의식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나아가 청년문제를 몸으로 체감하는 20대가 이번에는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지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래서 4명의 고학번과, 1명의 고함 기자 (고학번)가 만나서 정치 대담을 나눴다. 5명 모두는 2002년도의 노풍을 몸으로 느꼈고, 20007년도의 이명박 대세론과, 무력한 야권의 모습을 지켜보며 투표를 했다. 혹자는 현재 20대 후반의 투표율 저조를 비난하면서, 최근 20대의 정치참여가 늘어난 것도, 08년도 광우병 촛불시위에 교복입고 참여한 10대들이 20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은 미선이·효순이 추모 시위에 나갔던 원조 촛불세대였다. 여기 있던 5명의 대담자 역시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 크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2002년도 촛불시위에 나갔다는 공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후, 이들은 기성세대들의 기대처럼 큰 시위를 경험했다고 해서 정치에 대해 무조건적인 열정을 보이거나, 야권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정치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고, 각자의 정치적 주관을 구축하고 있었다.

20대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과, 아직은 무관심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교차했다. 그러나 10년 전, 5년 전에 비해 운동권 투쟁 같은 기존의 방식을 통해 정치적 의사가 표현되는 것은 줄어들었으나,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는 말에는 참석자들이 전부 동의했다. 또한 이번 대선이 분명 지난 두 번의 대선보다 20대들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20대가 정치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참석자들에게서 엿보이기도 했다.

대담 참석자 소개

01학번 최계연, 31살, 학원강사. 2001년부터 민주노동당에 가입해서, 지금까지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있다. 여전히 통합진보당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과거에는 한대련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독서토론 동아리 북앤락 회장을 맡고 있다. 2002년에는 노무현, 2007년 권영길에게 투표.
 

06학번 이승정, 26살, 현재 취업준비생. 흔치 않은 20대 보수.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에 참여했으나 오히려 시위에 들어있는 과한 이념색에 대한 반발로 보수가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자칭 보수’ 또는 ‘회색분자’. 2007년에는 이명박을 찍었다.
 

08학번 정민석, 26살, 전 서강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 2002년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때 참여한 원조촛불 세력. 탄핵반대 시위에도 나가는 등 노무현을 우상시 했으나, 훗날 실망이 커서 등을 돌렸다.그래도 가끔은 술 먹고 집에 들어가면 노무현 영상 보면서 울 정도로 아주 약간의 애정이 남아있다고 한다. 2007년에 문국현을 찍었다.
 

09학번 구승현, 28살, 진보신당 청년학생위원회 공동위원장. 고2때는 노사모에서 활동하면서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하는 학생이었다. 대전에 노무현 후보로 왔을 때 꽃다발을 주고, 학교에 노사모에서 입는 노란옷을 입고 갔다가 선생님에게 혼날 정도로 엄청난 노빠였다. 서서히 정치성향이 진보적으로 바뀌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한총련계 NL진영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학교를 옮긴 이후에는 진보신당 (PD계열)에서 활동 중이다. 2007년 문국현을 찍었다.
 

06학번 박정훈, 26살. 고함20 기자. 역시 원조 촛불세력으로서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때 광화문에나간 것을 기점으로 정치적 관심을 늘려나갔다. 중3때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했지만, 지금은 범좌파진영을 정치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2007년에는 권영길을 찍었다.



왼쪽부터 이승정, 정민석, 최계연, 구승현씨 뒷모습만 보이는 사람은 고함20 박정훈 기자


10년 전, 노무현 당선을 회상하며


박정훈
: 10년전 이맘때로 돌아가보죠. 2002년을 기억해보면 어떠세요? 지금 자기 소개 들어보니까 5명 다 촛불시위에는 참가했던 것 같은데요.


이승정
: 솔직히 전 전교조 선생한테 낚여서 간 거라서… 그 당시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어요. 노무현이라는 이름도 아버지에게 처음 들었고… 오히려 촛불시위가 저를 정치적으로 보수화시키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최계연
: 저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었는데 그 당시 운동권은 지금과 같이 의회정치에 신경쓰지 않았어요. 주로 거리 투쟁을 중심으로 움직였고요. 효순이 미선이 추모위원 모으고 서명받고, 광화문 촛불집회를 가고 그랬고… 딱히 대선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노무현 후보에 애정이 딱히 있진 않았고, 반 이회창 반 한나라당이 가장 중요했죠. 노무현 후보가 여러모로 이회창을 이길 강한 후보라고 봤기 때문에 노무현을 찍었던 것 같아요.


박정훈
: 그 때 권영길 후보도 있었잖아요.


최계연
: 의회정치를 통해 우리의 권리를 실현하자는 움직임이 지금만큼 활발할 때가 아니었어요. 당시에 정책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제일 앞서있다고 보긴 했으나, 그것을 고려하기 보다는 대선판에서 한나라당이 되면 안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도 권영길을 찍자는 움직임은 활발하지 않았어요.


구승현
: 저는 노사모로 열심히 활동하던 때였어요. 노사모 활동하기가 쉽지 않은데 저는 대전지법 앞에서 대학생들이 시위하면서 부른 민중가요에 끌린 걸 계기로, 자꾸 정치쪽으로 빠지다 보니까 어떻게… 그 때 마침 미선이·효순이추모 촛불시위가 터져서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투쟁하다보니 자연히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당시에 넷츠고 게임 게시판을 보고 있었는데 이회창이냐 노무현이냐 이런 걸로 싸워서 노무현 편을 들면서 글도 열심히 썼던 것 같네요.


박정훈
: 노무현 당선때와 지금 상황과 비슷하고도 다른 것 같은데요. 여권은 강한 후보를 냈고, 야권은 단일화로 대응할 것 같아요..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요?


정민석
: 기본적으로 크게 다른 건 없어요. 선거제도나 당구조도 안 바뀌었고, 야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불리해 보이고… 지역 기반이 호남이 아무래도 영남에 비해 협소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정치공학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다르죠. 당시는 노무현 캐릭터가 강해서 호불호가 확 갈리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있었으니 그 힘을 바탕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고 봐요. 하지만 지금 야권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잖아요.


최계연
: 정치적 구도는 비슷한 것 같은데, 사람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선거나 정치에 대해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요?. 운동권도 예전에는 평소에는 대중 투쟁만 하는 거고, 선거는 좀 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직접 나서서 메니페스토 운동, 정책 협약 등을 하기도 하잖아요. 적어도 선거를 자기 문제로 바라보는 흐름이 생긴 것 같아요. 정치공학적으로는 대선판이 반복될지 몰라도, 2007년 이후에는 대학생들이 정치의 주체로 올라갈 여러 가지 계기들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정민석
: 저 역시 장기적으로 결국 정치구도가 바뀐다고 보고 있긴 합니다만… 2011년에 일들이 많았잖아요. 안철수가 뜨고 나꼼수가 뜨고, sns가 크게 발전했죠. 희망버스 같은 경우엔 희망시민운동이 노동운동하고 결합한 아주 굉장한 사건이었어요. 어쨌든 이러한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2002년하고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어 보이네요.
 
 
 

정민석씨

노무현에 대한 실망
 

박정훈: 저도 그렇지만 왕년에 노무현 키드였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마저 노무현에게 등을 돌린 이유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승정
: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은 신행정수도 추진한 거예요. 국무총리는 아래 있고 청와대는 위에 있으니까, 회의를 화상통화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말도 나오던데 실제 그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 될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오히려 그게 나는 지방분권의 목적보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봤거든요. 정치적인 시도는 새롭다고 하더라도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 같아요.


최계연
: 운동권 안에서도 노무현 평가가 많이 나왔어요. ‘노무현이 중요한 게 아니다. 노무현은 허수아비 아닌가.’ ‘노무현이 인간적인 대한 매력은 있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이다.’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사실은 허수아비 아닌가.’ 이런 이야기들. 긍정적인 평가는 아니었어요.


이승정
: 그런데 그 때 보수언론이 왜곡을 많이 하긴 했어요. 노무현이 한마디 뱉으면 확대해석하는 건 아주 밥 먹듯이 했고.


박정훈
: 그때 노무현이 왜 찍혔어요?


최계연
: 본인이 공격을 많이 했잖아요.


정민석
: 우리나라 사람들은 갈등을 싫어하잖아요. 아직까지 사람들이 국민 통합 같은걸 좋아해요. ‘정치
인들이 싸우고 말이야 나라를 살릴 생각을 해야지.’ 이런 생각을 해요. 노무현은 미국식 정당 정치, 합리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에 갈등을 긍정적으로 보고, 토론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니 그게 반감을 샀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최계연
: 그리고 4대개혁 입법 중에 언론개혁법이 있었잖아요. 상업광고를 줄이려고 했고, 한 신문사가
전체신문지분의 몇% 점유하면 안 된다. 이런 법 추진하니까 조중동이 적대시 할 수 밖에 없고…


이승정
: 그걸 김대중때부터 이야기 추진한 거 아닌가요?


최계연
: 네. 그런데 언론개혁법 말고도 4대개혁입법이 다 실패해서…


구승현
: 노무현이 실패한 이유는, 자기 자신이 진보적인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당선이 됐는데, 과반수 이상 의석을 줬는데도 4대 개혁법도 처리를 못했잖아요. 더불어 진보는 무능하다는 느낌을 줬고요. 그리고 집권 내내 신자유주의 정책을 많이 펼치고, 삼성 경제 연구소에 의존했고, 정작 노동계와는 반목했죠. 김주열 열사 죽었을 때 ‘죽음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까. 노무현을 믿고 찍어준 사람을 믿고 찍은 사람들을 배반하고, 전통적인 지지기반을 자기 스스로 무너뜨린 거죠. 


정민석
: 솔직히 기반이 정말 없었던 것 같아요. 당선되고 나서도 네트워크나 틀이 없으니까 대연정을 시도하질 않나, 부산,경남에 있는 도지사나 군수를 자꾸 끌어 쓰면서 구애하는 듯한 모습 보이고, FTA 추진하는 등등. FTA 추진한다고 했을 때, 보수언론에게 칭찬을 듣고 한겨레 경향에게 욕을 먹는 별난 상황을 만들었잖아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벌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안됐죠.


박정훈
: 아무래도 제대로 된 조직이 없던 게 문제라는 말씀인가요?


정민석
: 국가 운영하는 노하우나 그런 게 없던 것 같아요. 김대중 대통령은 워낙 거인인데,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변두리였잖아요. 변방을 돌다가 효과적으로 치고 돌아와서 잘 된 건데 막상 되니까 ‘어떻게 하지’ 싶은 거죠. 본인도 임기 단축하겠다. 중간선거 하겠다. 이런 거 시도 했던 게 집권 초에 자신이 없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요.


구승현
: 권력을 장악하는 틀이 없으니까 한나라당하고 대연정 제안이나 하고.


정민석
: 4대 입법 실패하고 대연정 제안한 2005년, 이 양반 왜 이러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 때 오연호씨랑 대통령 임기 마치고 인터뷰 한 기사에서 봤는데 “수류탄 던졌는데 우리 진영에서 터져버렸다.”고 말하는 걸 보니 본인 뜻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더라고요.


최계연
: 그때 멘붕했던 것 같아요. 개혁적인 한 개인의 한계점을 보여줬달까?

최계연씨


2007년 대선, ‘찍을 사람이 없다’
 

박정훈: 노무현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결국 이명박 정권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네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2007년 대선에서는 다 투표했잖아요. 당시 상황이 어땠던 것 같아요? 전 군대에 있었는데, 그냥 어차피 이명박이 될 거니까 진보정당에 표 줘야지 하면서 권영길 후보 찍었어요.


이승정
: 그때 대선전략 구도가 정동영은 bbk 공격을 위주로 네거티브 공격만 일삼았어요. 그에비해 이명박은 ‘국민 성공 시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웠거든요. 저는 그 캐치프레이즈가 통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명박은 나름 정책적으로 승부를 거는 부분이 있었고, 그게 전 정동영에 비해 훨씬 나은 선거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구승현
: 이명박은 싫고, 정동영은 네거티브 선거만 하고 있었어요. 당시 정동영은 좀 황당했어요. 아주 비현실적인 공약 내놓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때 문국현이 사람중심 경제를 이야기 하는 걸 보고 괜찮다 싶었죠. 경제를 살리는 것도 이명박은 기존의 불도저식으로 할 것 같았지만, 문국현은 4조 2교대와 같은 시스템을 통해서 정리 해고 없이 기업을 살린 전례가 있잖아요. 아무래도 경제 문제를 좋은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문국현을 찍었죠.


최계연
: 저는 당시 권영길을 찍었는데, 2002년 선거 때만 해도 이회창 안되는 게 제일 큰 목표였어요. 그런데 이제 목표가 달라진 거죠. 어차피 야권단일화가 원만하게 안됐고, 진보정당이 성장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노무현의 한계를 봤고, 민주노동당이라는 계급정당의 성장을 봤잖아요. 전화 돌리면서 지금 당장 사표가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치를 썩지 않게 하는 3% 소금.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말하고 다녔어요.


정민석
: 문국현을 좋아서 찍은 건 아니에요. 사실 아버지가 건축을 하시기 때문에 대운하를 하면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버지조차 부산지역에서 대대로 야당을 찍어오시던 분이어서 이명박을 안 찍으셨죠. 정작 아버지는 이회창을 찍으셨더라고요. 아버지한테 왜 찍었냐고 물어보니까 ‘아들이 삼수하는데 저 사람도 세 번 나온 게 안타까워서’라고 답하시더라고요. (웃음) 정동영 같은 경우 지방선거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합친 당에서 어떻게 경선에서 뽑힌 지도 모르는 사람을 찍을 순 없었고… 권영길은 코리아 연방제 내세우는데 별로였고, 문국현만 말 같은 말 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냥 찍었어요. 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고요.


구승현
: 조중동도 그 당시 문국현은 좋게 본 것 같아요 ‘선비상이다’ 이러면서 띄워주기도 했고…


이승정
: 그 당시 이명박 대세론은 서울시장 때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어요. 버스 환승제도 만들고, 중앙차로 만들 때 그 추진력을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노무현에 비해서 이명박은 더 강하고 잘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쪽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쏠린 것 같아요. 또 청계천 멋있게 만들어 놓은 걸 시민들에게 보여줄 때 이미지 상승 제대로 했어요,


정민석
: 그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명박이 서울시장할 때도 개혁적이고 참신한 사람으로 봤지, 지금과 같은 불도저MB로 안 봤어요.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반노정서가 있는 사람은 전부 이명박 찍었어요.


이승정
: 맞아요. 사실 이명박을 이회창과 같은 ‘보수’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신보수’ ‘실용주의적’ 이렇게만 생각했죠.


박정훈
: 그때만 해도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돈 쓸 줄은 몰랐죠.


이승정
: 이명박 5년을 보고 느낀 게 정치에는 ‘실용주의’라는 게 완벽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거예요.


박정훈:
그렇다면 여기에서 유일하게 이명박 찍은 사람으로서,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 평가하면 어때요. 노빠들은 노무현에게 다 실망했다고 하잖아요.


이승정
: 저는 솔직히 아직까지 아주 큰 문제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4대강이나 대운하 문제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에요.
 

박정훈: 저는 그 때 제가 군대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선거가 정말 재미없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이명박이 될 선거였기 때문에 크게 할 말이 없어요.


정민석
: 한나라당 경선이 사실상의 대선이었죠.

이승정씨


문국현과 안철수
 

박정훈: 여기 문국현 찍은 두 분이 계신데, 두 분이 볼 때 문국현과 안철수의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구승현: 문국현과 안철수 두 명 다 정당정치의 위기가 왔을 때 나타난 구원투수 아닌가요? 다만 문국현이 출마할 때보다 지금 더 신자유주의 체제가 공고해지고, 비정규직이 점점 늘어나서 정당정치의 위기가 심화됐죠. 그 사람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표출할 정당이 없이 과소대표되고 있잖아요, 진보정당이 있어봤자 통진당 13석인데 그 사람들이 비정규직 800만을 어떻게 대변해주겠어요. 당연히 기존 정당으로는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인거죠.

문국현은 정치적인 행보를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들이 없었잖아요. 안철수는 법륜스님, 시골의사, 윤여준 등 도와주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잖아요. 정치콘서트를 작년부터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걸 보면, 문국현보다 훨씬 프로패셔널 한 것 같아요. 당연히 가능성도 더 있죠.
 

정민석: 문국현은 여론 조사할 때 지지율 겨우 두자리 수 찍었는데. 안철수는 과반수잖아요. 문국현은 주변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게 당 하나 겨우 만들어서 나온 거고, 안철수는 작년 서울시장 때부터 준비한 거니까 언론이 주목하고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요. 하지만 제3후보의 한계는 명확하죠, 누구와 함께 통치할 것인가. 이게 문제에요.

시골의사를 국무총리 시킬 순 없잖아요. 같이 할 사람이 부족하다는, 한계점은 똑같이 가지고 있어요. 박찬종 정주영, 제3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해야겠죠.

구승현씨

20대의 정치참여, 정치적 위상


박정훈
: 이야기의 방향을 살짝 돌려보겠습니다. 10년 전, 5년 전에 비해 20대의 정치 참여가 늘어난 것 같나요?
 

최계연: 박원순 시장의 당선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다 보니까 나름대로 대학생들이 정치를 통해서 권익실현을 해야겠다는 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새누리당이 싫어서 투쟁한다.’ 이런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정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든가, 정치를 자신이 해야 되는 걸로 생각한 20대들은 늘어난 것 같아요. 하지만 여전히 그런 의식을 모아줄 공간이 별로 없어요. 운동권은 낡았고 무섭고 폐쇄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고요. 정치적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만한 분위기가 조성이 안되나봐요.
 

구승현: 관심은 늘어난 것 같은데 깊이가 없어요. 예전에는 비운동권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깊이있는 이야기가 가능했거든요. 요새는 SNS, 인터넷이 가장 정치적인 공간이 되다보니, 이미지로만 정치를 보는 것 같아요, 최근에 페이스북에 어떤 후배가 올린 글 보니까 ‘나경원 국쌍 재수없어.’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나경원에 대해 비판할 점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고, 단순히 이미지를 욕하는 거죠.
 

최계연: 저는 모두가 정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들도 정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아예 무관심한 사람도 있긴 있어요. 그래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 당연하지 못하게 만든, 이명박 정부가 준 자각 때문에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 갖게 된 사람들이 많아요. 또 그분들이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예전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유연해요. 저는 예전에 이회창 또는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게 상상이 안됐거든요.

정민석: 저는 그 점에 대해서 동의하기가 힘들어요. 정외과라고 해도 무관심한 사람도 많거든요. 정치도 관심 없고, 아예 타인과의 관계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전 청년들의 정치 참여가 늘었다는 데 약간 유보적인 입장이에요.
 

최계연: 저도 대화를 했을 때 그런 식으로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답변을 많이 받는 것이지. 실제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요즘 학생들은 학회도 없고, 학생회도 없고, 얘기 시키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까요.
 

박정훈: 요즘에는 SNS를 통해서 정치적 의사 표시하는 건 확실히 늘어난 것 같아요. 4.11 총선을 보면 SNS의 효과를 과장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페이스북이 총선 끝나고 나서  엄청난 ‘멘붕의 장’이 되는 걸 봤거든요. 그렇게 멘붕한다는 것도 정치적 의사 표시겠죠.
 

정민석: 트위터 같은 경우에 하는 사람만 계속 하니까 문제가 많아요, 여론을 잘 대변해주는것도 아니고… 트위터만 보면 민주당이 의석 2/3 차지 하고 개헌할 수 있을 것 같잖아요.
 

박정훈: 저도 트위터만 봤더니 당연히 민주당이 이기고, 진보신당도 3% 넘을 줄 알았어요. (웃음)
 

정민석: 그런데 까보니까 과반도 안됐잖아요. 아무래도 반작용이 생기는 것 같아요. 트위터하고 나꼼수 청취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우려되는 게 일본에서 양당제 고착되니까 극우정당이 뜨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진보 민주진영에 실망을 느끼게 되면 더더욱 골수 우파들이 늘어날 것 같아요. 지금 한대포 같은데 보세요.

구승현: 아는 사람들 중에 한 대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일베라는 커뮤니티를 자주 들리더라고요. ‘운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을 비하하는 말) 같은 말이나 자주 쓰는데를 쯧.
 

정민석: 나쁜 xx들 사람 자체한테는 뭐라고 할 수 있어도, 죽음을 웃음거리 삼고…
 

박정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늘었는지에 대한 부분에서 이견이 좀 보이네요. 그렇다면 20대의 정치적 위상이 올라간 것 같긴 한가요? 정치권에서 20대 이야기는 엄청 많이 하잖아요.
 

정민석: 저는 아니라고 봐요. 정치인들이 주목을 했긴 했지만 청년 비례 대표도 쇼였잖아요. 그 똑똑한 사람들이 청년정책을 못 만들고…그냥 표가 되니까 이용만 하는거 아닐까 싶어요. 동원의 대상이 되는거죠 ‘의식있는 대학생은 민주당에 표를 줘야지’.이런 식으로요. 저는 이용의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최계연: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20대에게 주목하게 된 계기가 분명히 있잖아요. 위상은 이제부터 만들어가야죠. 대학생들이 너무 개별화가 많이 되어있고 뿔뿔이 흩어져있잖아요. 그래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일 여러 가지 조건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시작은 됐으니 앞으로 위상을 높여갈 방법은 20대의 몫이겠죠.
 

구승현: 학생들이 연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칠레 고등학생들 뛰쳐나와서 시위하는 것을 보면 놀랍지 않나요? 학생들이 솔직히 10만명만 모여도 현실이 바뀔 거 같은데, 그렇게 안 되는게 안타까워요.

 

왼쪽부터 최계연씨, 구승현씨, 고함20 박정훈씨


대선 구도 예상
 

박정훈: 이제 올해 대선이 어떻게 될 지 예상해봅시다.
 

이승정: 안철수는 문국현의 길을 걷지 않는데 초점을 맞춰야 해요. 안철수는 기반이 없기 때문에 안철수로 야권 단일화가 되더라도 민주당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박근혜 필승은 불 보듯 뻔하고…
 

정민석: 박근혜가 될 것 같아요. 역사관 문제가 있고, 2030과 수도권에서 인기가 없는 약점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약점을 공략해서 승리를 가져올만큼 야권이 성숙해있지 못한 것 같아요. 민주당은 지금 2부리그에 불과해 보이거든요. 안철수는 인기가 많은것이지 아직 정치인으로서 검증된 게 아니고요. 이대로만 보면 사실 민주당은 사분오열, 안철수는 어영부영, 박근혜가 될 수 밖에 없어요.
 

최계연: 박근혜가 지금 100%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국민대통합 펼치면서 정치인으로서 최고의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이런 건 중도층에도 먹히거든요. 그래서 야권이 어떻게 새바람을 일으킬까 고민을 해야돼요. 야권 단일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하는데, 진보세력이 이 과정에서 구도와 방향성을 잡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모아가는 역할을 해야할 것 같아요. 누가 대통령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지지하는 후보는 없고, 그나마 지금 현재로서는 안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구승현: 지금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이런 후보군 자체가 상당히 우경화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그런와중에 진보진영쪽에서는 87년 이후에 처음으로 후보를 못 낼지도 모르고요. 그나마 진보신당에서 얼마전에 노동자, 노동계급, 진보좌파 진영을 대변하는 후보를 공동으로 추대해서 대선을 치루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거기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리고 저는 안철수 문재인 단일화 했을 때 문재인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노무현 정몽준때도 그렇고, 정당 기반 있는 사람이 유리한 것 같아요.

20대, 어떤 후보를 지지해야 할까?
 

박정훈: 20대는 어떤 후보를 지지해야 할까요? 특정 후보가 아니라, 이를테면 대학생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는 후보, 또는 일자리를 늘리는 후보라든지…
 

정민석 :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후보의 낮은 인지도에 비해 상당히 호소력이 있잖아요. 지금 당장 들어갈 돈을 깎아주고 밥을 먹여주는 문제를 넘어서서, 삶의 형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후보, 물론 당장 5년 안에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정초를 닦아나가고 그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후보가 청년층이 지지할 후보라고 생각해요.
 

최계연: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상황들을 해결할 옳은 방법, 방향성을 가짐과 동시에 미래 한국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재구조화할 것인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조건을 이해하고 여기에 기반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을 지지해야죠. 나아가 노동자서민을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노동자나 서민의 이해를 실현하는 정치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문제가 심각해졌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아요.
 

구승현: 청년층은 기본적으로는 청년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보를 지지해야하겠죠. 하지만 최근 청년고용불안의 원인이 고용 없는 성장, 신자유주의 정책의 심화인 것을 감안하면궁극적으로는 경제민주화와 경제 불평등 해소를 위해 노력할 의지가 있는 후보를 선택해야 하지 않을가요? 물론 그 후보와 후보가 속해있는 정당이 과거에 어떠한 정책을 펼쳐왔고 펼쳐나갈 의지가 있는 집단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죠. 
 

이승정: 유권자 입장에서 특정 세대와 지역의 단기적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공약들은 내세우는 후보들을 가장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당장에 취업과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장담하는 후보가 아니라 판을 넓게 보는 후보를 지지해야죠.

20대, 대선을 통해 ‘정치적 세대’로 발돋움 할 수 있나 
 

박정훈: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를 종합해서, 2012년 대선에서 20대들이 정치적 주체로 부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각자의 전망을 이야기해주세요.

구승현: 대의제 민주주의에 기대기보다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서서 정치권을 압박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쌍용차 분향소, 재능교육 농성장을 찾아가는 등 앞으로 노동자로 사회에 나갈 자신들의 처지가 결코 이들과 동떨어진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고 연대했으면 해요. 직접적인 행동을 수반하여 대중운동을 폭발시킬 때 청년이 정치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설 수 있지 않을까요?
 

이승정: 보수 20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반값등록금 문제는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대학생들의 정치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는데, 한대련이 주축이 되다보니까 아무래도 이념적인 성향이 너무 강했어요. 이념 투쟁 중심의 정치 운동은 아마 영원히 그들만의 리그로 남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20대가 할 수 있는 젊고 새로운 시도들을 정치 참여에 접목시키고, 정치 참여가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비로소 청년층이 진정한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봐요.
 

정민석: 20대가 과거 몇 차례의 대선보다 더 성숙해진 것 같아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SNS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고, 작년부터 반값등록금 이슈로 청년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고, 20대의 큰 지지를 받는 안철수라는 변수도 있으니. 거기다가 박원순 시장의 업무수행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투표를 하니까 달라지긴 하더라’하는 경험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은 청년층이 정치권에게 이용을 당하거나 동원의 대상 이상이 되지 못하는 점을 우려하기도 하는데, 어차피 투표가 기반인 대중정치가 우리나라의 정치인 바에야,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죠.

최계연: SNS로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20대가정치적 주체가 된다고 했을 때는 더욱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소통, 공감대 형성이 필요해요. 결국 오프라인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모임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치의 주인이 되지 못한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이제라도 자신의 정치적 권리에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일상적 활동들을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정훈: 고함20에서도 20대가 정치적 주체로 설 수 있도록, 20대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언론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