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20대와 존댓말 기획’은 20대가 일상적으로 당면하는 ‘존댓말’과 ‘호칭’의 문제를 살펴보고,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우리말의 존비어와 호칭이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함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1편 20대, 매일매일 존댓말/반말로 고생한다. 2편 존댓말 내부에 숨겨져 있는 나이의 신분관계, 3편 존댓말/반말이 가로막는 사회 소통과 해결책 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20대와 존댓말 기획 1편 ‘20대, 매일매일 존댓말/반말로 고생한다.’는 이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대와 존댓말 기획 2편, ‘존댓말 내부에 숨겨져 있는 나이의 신분관계’는 이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너희한테 한 가지 고백할게 있는데… 사실 난 너희들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


10년 지기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위 ‘대박 사건’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이’는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는 위와 같은 상황이 나온다. 사만다가 폐경 이야기를 하던 중 다른 친구들에게 나이를 속여 온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극 중 사만다의 친구들은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만약 한국에서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나이를 속일 수 있어?”하며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어느날 당신의 친구가 이런 고백을 해왔다면?




친구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


1개월 차이로도 호칭과 어투가 바뀌어 버리는 한국어 때문일까, 우리나라에서 ‘친구’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먼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반말과 존댓말의 구분이 없는 다른 나라들과는 ‘친구’의 정의조차 다른 듯하다. 프랑스인 마크 쿄이(25)씨는 “친구라는 말은 ‘나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대답하며, “친구들이 30살 차이가 나는 다른 친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나이주의는 ‘친구’라는 개념을 더욱 좁게 만든다. 나이가 같아야만 ‘친구’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으며 손위 사람이나 손아래 사람과는 아무리 친해도 ‘친한 형/언니(동생)’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다. 마음속의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친구의 조건이 ‘같은 나이’가 되다보니 취미나 의견처럼 정작 중요한 부분이 잘 맞는 친구사이는 많지 않다. 어쩌다 친해져 시간을 보낸 ‘또래 집단’이 남을 뿐이다. 영화 <언터쳐블: 1%의 우정>의 나이 많은 백만장자와 젊은 백수의 우정은 우리나라에선 상위 0.001%도 누릴 수 없는 호사다.



29살은 취업이 되는데, 30살은 안된다고요?


우리 사회에서 ‘존댓말/반말’의 가장 큰 피해자는 20대이다. 20대들은 취업조차도도 나이에 의해 결정된다. 나이가 어릴수록 회사에서 선호하기 때문이다. 더 풍부한 지혜와 경험을 가진 나이 많은 구직자는 외면당한다. ‘능력’때문이 아니다. 상사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 직원이 입사하면 관계가 껄끄러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꼬박 ‘반말’을 써야 했을 나이 어린 상사가 자신에게 ‘명령’과 ‘평가’를 하는 것이 달가울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많지 않다.



취업뉴스 인크루트의 조사에 따르면 연하상사나 연상부하와 함께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66.2%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특히 연하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비율(71.5%)이 연상 부하가 대하기 불편하다고 응답한 비율(28.5%)보다 월등히 높아 한국인의 나이 권력 인지 정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직의 서열체계가 제대로 기능하게 하기 위해 나이를 제한하는 것은, 해 보고 싶은 것 많은 20대에게 올가미로 다가온다. “1,2 월에 태어난 ’빠른 89년생’ 친구들이 부러워요.” 4학년을 앞두고 휴학 중인 대학생 최준영(가명)씨가 말했다. 현재 25살인 준영씨의 가장 큰 고민은 ‘취직’이다. “졸업을 하면 27인데, 나이 때문에 취직에 불리해질 까봐 걱정이에요.” 아프리카로 떠난 봉사활동 7개월, 어학연수 1년.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즐기자는 가치관대로 행동한 준영씨는 다른 어린 지원자들 앞에서 한없이 위축된다. 



20대는 힘이 없다.
이는 사회에서도 20대들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20대 국회의원은 여전히 없다. 이번 총선에 등장한 20대 비례대표는 ‘보여주기 식’ 쇼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20대와 관련된 사회적 이슈 또한 기성세대들을 거쳐가야 사회의 주류로 레벨 업 할 수 있다. 반값 등록금 이슈도 등록금을 내는 주체가 기성세대였기에 사회 내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애초에 ‘88만원 세대’, ‘아픈 청춘’도 20대가 아닌 기성세대가 주도한 담론이다. 20대 이야기를 파는 기성세대는 득세하지만 20대가 이야기 하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주목을 받기는 어렵다.



20대의 의견이 위축되는 것도 엄청난 사회 손실이지만,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토론이 어려운 것도 큰 문제다. 좋은 아이디어도 젊은 사람이 꺼내면 사장되기 쉽고, 젊은 사람들은 나이 많은 이들에게 ‘대등한 충고’를 받지 못한다. 세대 간의 소통은 덜 이루어지고 세대 안의 소통만 활발하다. 서로 배울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말 속의 권력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기업들은 ‘김과장, 박팀장’과 같은 기존의 한국 기업 식 호칭을 간소화 하거나 없애고 있다. 한국 조직문화의 호칭에 따른 폐해를 인지했기 때문이다. CJ그룹과 아모레 퍼시픽 은 나이나 직책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님’이라고 부르고, SK텔레콤의 경우 모든 직원의 직함을 ‘매니저’로 통일 하고 있다. ‘어색하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다’ 등의 반대 의견도 있지만, ‘회사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해 업무효율이 증가한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커뮤니케이션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조직인 회사. 이러한 회사 내에서 호칭과 나이에 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교적 변화가 쉬운 회사 내 이야기다. 여전히 사회에서는 존비어 체계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언어는 무의식중에 우리의 삶을 구성한다. 언어에 숨겨진 사회 법칙은 인지하기도 어렵고 바꾸기도 어렵다. 우리는 ‘존댓말’로 말하는 상대에겐 위압감을 느끼고, 편하게 말하다 보면 상대를 무시하게 되는 언어의 마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존비어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사회적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다. 현재로선 개개인이 주의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 언어의 마술은 공과 사를 아우르며 한국인들에게, 특히 20대들에게 제동을 걸고, 나아가 세대 간, 사람 간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 막는다. 사회적으로 ‘소통’이 중요해진 이때, ‘존댓말 쓰기 운동’과 같은 사회적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시행 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래’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끼리는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하나의 말투로 통일하는 운동부터 집단 전체의 언어체계를 바꾸는 생각까지. 우리의 언어를 되돌아 보고 차근차근 개선해나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