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여자와 남자. 지구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이 존재하지만 이 둘은 가깝고도 먼 관계다. 가까운 예로 우리네 부모님을 보라. 아버지는 허구인 드라마를 보며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스포츠 경기를 보며 본인이 더 흥분하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온 부부도 이럴진대,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남녀가 서로를 100%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보자. 모든 싸움과 갈등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남녀사이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별을 바꾸지 않는 이상 상대방의 입장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성범죄에 대한 불안’과 ‘병역’의 문제도 충분한 대화만 있다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이에 고함20은 해석남녀 – (1) 성범죄에 대한 여자들의 수다와 (2) 군대에 대한 남자들의 수다를 통해 서로의 시각차를 좁히고자 한다. 부디 이것이 또 다른 오해의 씨앗을 낳지 않길 바라며.

출처: http://cafe.naver.com/potoil/2139


여자들의 수다 “언제 어떻게 성범죄의 희생양이 될지 모르니 너무 불안해요”


성범죄에 대해 남녀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의아해할 수도 있다. 보통의 남자들도 성범죄에 대한 분노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들이 얼마나 자주 성범죄에 노출되는지, 왜 모든 남자들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지는 잘 모른다. 심지어 일부 남성들은 “짧은 치마 입고 밤늦게 돌아다닌 여자가 잘못”이라며 성범죄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겪는 불안을 수지(21), 지은(23), 효린(24)(모두 가명)이 말한다.

– 처음 성 범죄(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모두 포함)를 겪어본 게 언제인가?

효린
: 여중, 여고를 나와서 그런지 학교 다닐 때부터 변태들을 많이 봤다. 소위 말하는 바바리맨은 기본이고 길 묻던 아저씨가 갑자기 바지 지퍼를 내려서 도망간 적도 있다. 좀 센 아이들은 욕하고 지나가기도 하고(웃음)

지은
: 나도 여고 출신인데 선생님들 중에도 변태가 많았다. 특히 사립이어서 나이가 좀 있는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명찰 제대로 안 달았다고 은근슬쩍 가슴을 만지기도 하고 장난치는 척 하면서 팔 같은 데를 만지기도 했다. 

수지
: 나는 초등학교 때도 변태 많이 봤는데…. 길 묻는 변태는 어딜 가나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봉고차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길을 묻길래 쳐다보니까 바지를 안 입고 있었다. 그 때는 어려서 뭔지도 모르고 그냥 길 가르쳐주고 집에 왔는데 엄마한테 말하니까 (엄마가) 경악했던 적이 있다.

– 지금은 어떤가?

지은
: 성추행이야 워낙 빈번하게 일어나니까. 그리고 요새 세상이 너무 험하니까 성폭행 안 당한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하나 싶기도 하다.

-성추행이 빈번하게 일어나나?

지은
: 엄청. 솔직히 여자들 중에 엉덩이 만지거나 몰카(몰래카메라) 찍히거나 그런 사람 엄청 많을 걸? 특히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주 일어난다. 얼마 전에도 지하철에서 배나온 아저씨가 조그만 기계로 서 있는 여자 치마 밑을 계속 비추고 있었다. 

수지
: 맞다. 나도 버스에서 어떤 남학생이 내 뒤에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처음엔 손잡이 잡으려고 하나 싶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알고 보니 버스 앞 쪽에서부터 뒤 쪽까지 계속 여자들 뒤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더라. 

효린
: 나도 사람 별로 없는 길에서 어떤 학생이 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간 적이 있다. 아, 너무 순식간이라 만졌다기보다 쳤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왜 그 때 당시에 제어하거나, 말하지 못했나?

효린
: 당해보면 안다. 당황스러움과 치욕스러움 때문에 순간 몸이 굳고 어버버 하게 된다. 

수지
: (효린의 말에) 동감한다. 그리고 제일 큰 건 긴가민가함 때문이다. 솔직히 내 뒤에서 그 사람이 뭔 짓을 하던 내 느낌일 뿐이고 증거가 없으니까, 그 사람이 난 안 그랬다고 계속 발뺌하면 나만 이상한 사람 되는 거 아닌가? 

그 때도 내가 당할 때는 아리송해서 가만히 있다가 내 옆에 서 있는 여자가 갑자기 표정이 굳고 부들부들 떠는 걸 보고 ‘아, 성추행이구나’ 싶어서 따지긴 했다. 나 혼자 따지니까 끝까지 자기는 안 그랬다고, 생사람 잡는다고 큰 소리 치다가 내 옆에 여자가 울면서 ‘네가 그랬잖아!’ 그러니까 바로 정류장에서 내리더라. 나 혼자였으면 꼼짝없이 나만 미친 여자 됐을 상황이지.  

지은
: 맞다. 나도 그 상황에서 아저씨보고 그 기계 뭐냐고, 몰래카메라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란 생각이 드니까 망설이게 되더라. 핑계일수도 있는데, 그냥 피하는 게 상책이다.

– 그럼 성폭행 같은 큰 위험에 처한 적은 없나?

수지
: 글쎄, 당시에는 위험했지만 그게 성폭행으로 이어졌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작년에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어떤 남자가 따라와서 괜히 친구랑 통화하면서 아파트 현관 앞에서 빙빙 돌았다. 한 십 분정도 통화하다가 안 보이길래 갔나 싶어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이게 누르는 소리가 나니까 어디선가 나타나서 바로 따라 들어오더라. 기겁을 하고 엘리베이터 놔두고 계단으로 미친 듯이 뛰어서 6층 우리 집까지 올라갔다. 집 앞에서 이제 안 오겠지 하며 숨을 돌리는 순간 계단에 얼굴이 보이는데, 그대로 집에 들어가서 다리 힘이 풀린 채로 주저앉았다. 그 후로 늦게 들어갈 때마다 부모님이나 동생이 매번 데리러 왔다.

효린
: 나는 밤에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는데 어떤 남자가 뒤에서 입 막고 끌고 가려한 적이 있다. 내가 자취해서 주변이 모두 원룸인데,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반항하니까 나를 놓고 그대로 도망갔다. 그 길로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차가 한 바퀴 돌았는데 못 잡았다 그래서 한 동안 친구 집에 같이 있었다. 그 때 끌려갔으면 무슨 일을 당했을지 소름끼친다.  

– 여자들이 남자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들도 불쾌해 하는데.

효린
: 나는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누가 내 뒤에 오기만 하면 식은땀이 나고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범죄자가 나 범죄자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자보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무조건 조심하고 경계하는 게 최고의 방어니까. 일부의 범죄자들 때문에 남자 전체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지만, 남자들은 ‘감정’의 문제고 여자들은 ‘생존’의 문제니까 조금 이해해줬으면 한다. 

수지
: 대부분 남자들은 여자들이 불안해하는 건 이해하는데 대놓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거에 기분 나빠하더라. 예를 들면 계단에서 앞에 가던 치마 입은 여자가 홱 돌아서 노려볼 때 ‘내 눈이 앞에 달린 걸 어쩌라고’라며 분노하는 걸 봤다. 이런 경우는 남자들의 배려와 상관없는 부분인데 여자들이 지나치게 강요하는 것 같다. 다만 밤에 단 둘이 걷게 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단 둘이 타게 되거나 그런 경우에는 남자들이 아예 먼저 가거나 늦게 가거나 하는 게 여자 입장에서 정말 고맙다. 집 까지 걸어가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에 여자들은 온갖 상상을 하며 불안에 덜덜 떨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
: 작년에 어떤 여자가 남자들이 지하철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갔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려서 논란이 된 걸 봤다. 그 여성이 무리한 걸 요구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손을 가슴에 모으고 가는 남자들을 보고 ‘매너 있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근데 이 문제는 남녀를 떠나서 누구나 자기 몸에 손대는 건 싫으니까 다 같이 매너 손을 하면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을 것 같다.  



– 여자들이 야하게 입어서, 밤늦게 다녀서 성 범죄를 당한다는 시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효린: 난 말도 안 되는 논리라고 본다. 그럴 거면 초등학생 성범죄는 왜 일어나고, 대낮에 성범죄는 왜 일어나나. 실제로 범죄자들이 노리는 여자도 야한 옷을 입은 여자가 아니라 힘없이 걷는 여자라는 연구 결과도 봤다. 결국 자기보다 약할 거 같은 사람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다는 건데, 이걸 왜 여자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

수지: 음, 나는 성희롱이나 추행은 어느 정도 외형과 연관 있는 것 같은데, 성폭행처럼 중범죄는 상관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시각을 인정하면 오히려 남자들이 부끄러운 거 아닌가? 여자들의 옷이 야하다고, 화장이 진하다고 내가 어떻게 해도 된다는 생각 자체가 여성을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물적 대상으로 보는 거니까.

지은: 문제는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남자들보다 원인제공을 여자가 했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더 많다는 거다. ‘어떤 변태가 내 엉덩이 만졌다’고 하면 제일 먼저 옷 뭐 입었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무의식중에 내가 야한 옷을 입어서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 아닌가.

효린: 맞다. 그러니까 성추행이나 성폭행 당해도 여자들이 오히려 쉬쉬하는 거다. 사람들이 ‘그러게 네 처신을 잘했어야지, 뭐 자랑이라고 떠드나’라는 시선을 던지니까, 당하고도 입 다물고 있어야한다.

수지: 그러게. 남들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입고 싶은 것도 못 입고, 밤에 나가지도 못하고 그래야하나. 그런 일 당하면 도리어 내가 죄인이 되는 게 너무 싫다.

여자로 태어난 죄로 범죄의 위험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 이상의 불안과 긴장을 초래한다. 시시때때로 죄여오는 음흉한 시선과 손길을 피하기 위해 항상 경계하고 의심의 눈초리를 품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피해자인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의 시선들이다. 특히 가부장제 아래서 수동적이고 조신한 여성상을 추구해 온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선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점을 알기에 그녀들은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기 참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