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선거에 진보좌파후보가 반드시 나와야해, 진보의 재구성 해야”

“좌파가 20대를 조직하고 세력화시킬 필요가 있다”

박정훈박정훈을 만나다

언젠가 이 사람을 한 번 만나봐야겠다 생각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나와 그의 활동 영역이 아주 가끔은 겹쳤기에, 종종 내가 그로 오해받았던 적도 있었다. 더욱 궁금증은 증폭됐다. 마침 고함20에서 D-100부터 진행하는, 20대 100명의 인터뷰를 기회 삼아 나는 그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다. 다행히 그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고, 만나자마자 커피가 아닌, 갈비탕 한 그릇을 비우며 ‘박정훈끼리의’ 우애를 다졌다.

생전 처음 보는 동명이인의 존재에 놀라며, ‘정훈씨’라고 말할 때마다 무언가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그래도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딱딱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이상의 친밀감을 갖고 대화를 편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또 한 명의 박정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박정훈’으로 불리는 사람들 아니던가

그는 좌파들이 20대를 조직하고, 세력화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이러한 바람을 담아 대학생사람연대에서 운영하는 청년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 또한 20대들 스스로가 20대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20대 독립언론 ‘고함20’에서 기사를 쓰고 있다. 위치는 다르고, 방향도 다를랐지만 우리는 분명 20대를 중요한 ‘주체’로 생각하는 것만은 동일했다. 우리는 20대라는 최소공배수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눴다.
 

박정훈씨

일명 ‘운동권 만렙’, 운동권 학생으로서의 10년
 
 

Q. (진보좌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02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미선이 효순이 추모 촛불시위가 기점이다. 평소에도 정치에 관심이 있다가 그때부터 실천적으로 집회에 나갔다. 그 때 집회에 나가서 교복 입은 학생들 모아서 ‘청소년 인권 네트워크 작은숲’을 만들었고 NEIS 반대 시위도 벌이고…. 그리고 대학교 입학해서는 혼자 사회당 뱃지를 달고 다니면서, 정말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많이 벌였다.

 

Q. 20대 중,후반 중에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들 중에는, 당시 촛불시위는 안 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때부터 정치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노빠시절을 잠시 거쳐서 살짝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갖게 됐을 뿐이다. 하지만 정훈씨는 완전히 운동에 빠지게 되지 않았나?

대학교 1학년 때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고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지금도 혁명에 대한 생각이 마음 깊숙이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혁명을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Q. 지금도 혁명을 위해 운동을 하는가? 그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을 것 같기도 한데

내가 하는 운동이 특별한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운동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사람들은 운동을 하든 안하든 열심히 산다. 취직 준비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세계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좌절과 고뇌가 있을 것이며,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월급을 받는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고민이 없어지진 않을 거다.

Q. 대학생 사람연대(대사람) 대표를 맡은 2009년에는 아예 고향이었던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공부를 위해 올라온 것도 아니고, 오직 ‘운동’만을 위해 서울로 올라온 거 아닌가. 지인과 같이 산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불편하고 힘들지 않나? 스스로 고생을 자처한 건데

용산참사가 일어났었고 이명박 정권 2년차인 해여서, 적극적으로 투쟁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침 내가 부산에서 했던 활동들이 어느정도의 성과를 거두었고, 촛불시위 참여 대오도 이끈 일이 있었기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에서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서울와서 불편한 점을 느끼기보다는 올라오자마자 운동하느냐고 너무 정신이 없었다. 오히려 싸움을 통해서 대사람과 함께,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힘이 났다. 그때부터 운동을 하면서 고뇌를 겪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Q. 나는 용산참사 당시에 전경으로 군복무 하고 있었는데, 이명박 정권 하에서 계속 군생활하다가는 엄청 고생 할 거라는 생각에 빨리 전역하고 싶어했다. (웃음) 정훈씨는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운동을 통해 얻은 게 있다면, 그만큼 잃은 것도 있을 것 같다.

잃은 것은 엄청난 벌금과 아직도 계류중인 재판들. 그리고 머리카락이다 (웃음)

Q. 대체 몇 번이나 체포 당한건가.

집에 나오자마자 두 번 체포 당하고,(소환 불응을 했기 때문) 집회서 현장에서 연행 된 것은 다섯에서 여섯차례 정도.

 

Q. 재판도 신경쓰일테고, 벌금도 부담되겠다.

벌금은 용산참사 같은 경우에 300만원이 나왔는데, 다행히 용산 범대위에서 처리해주셨다. 또 촛불시위 당시 경찰이 바리케이트로 사용하고 있던 SM5에 올라가서 받은 벌금 125만원은 고맙게도 진보신당 동지분들과, 민중가수 윤민석씨의 도움으로 낼 수 있었다. 용산사건과 촛불시위 재판은 아직도 안끝났는데, 특히 용산참사 재판은 언제 열릴지 알 수가 없다. 그밖에 서울시청과 영등포구청에서 나온 벌금도 있다.

Q, 돈 문제도 그렇고, 이런 저런 환경이 많이 불안할 것 같다. 벌금 받고, 재판에 시달리고, 체포도 당하고 이래도, 통합진보당 사태 같은 일 터지면 열심히 운동해왔던 게 한 번에 무너지는 거 아닌가. 진보신당도 썩 낙관적인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면서 ‘해도 안 된다’는 두려움은 없나?

나는 불안감이 별로 없다. 대책 없이 긍정적인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 지금의 진보정치 상황이나, 내가 처한 현실도 그다지 큰 일이 아니다. 고문 받고 학살당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모든 정치 활동들을 동시적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봐야한다. 한국의 현대사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진보운동이 큰 위기거나, 당장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 다만 진보운동이 지연되는 시기라고 보긴 한다.

Q. 두려움 없이 혼자서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그 기초를 닦다보니, 이제 정훈씨가 하는 일이 꽤 규모가 커져있다. 대사람 회원도 전국적으로 100명이나 된다고 들었다. 운동권이 망하는 시대에, 새로운 운동단체를 일으켰고, 그래서인지 조직내의 신망도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 능력의 비결이 무엇인가.

첫 번째 비결(?)을 들자면 비참한 실패에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부산대에 나와 같이 할 단 한명의 후배도 없었다. 그래서 NL들에게 배웠다. 그들의 사람을 중시하는 기품, 이론이 아니라 어떤 사업을 하더라도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 기품을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두 번째로는 청소년 운동 경험도 있고 혼자서 개척하는 경험들이 많아서 기존 운동의 관성이나 관습에 대해서 상당히 자유롭다는 것. 무조건 노동자 운동이나 학생운동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Q. NL식의 품성론 뿐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을 것 같다. 사람 만날 때 쑥스러울때도 있고 부끄러울때도 있을 거고, 항상 마음에 드는 사람만 만날 순 없지 않은가? 고함20도 특정자본에 기대지 않는 독립언론이기 때문에 활동하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가 참 중요하다. 정훈씨한테 한 수 배우고 싶다.

사람마다 특성들이 있다. 특성에는 스토리가 있고, 당연히 뒷 이야기가 있다. 그런 맥락을 알고 사람들을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20대들은 대부분 상처들이 많다. 내면의 상처들이 많은데, 이 상처들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내지를 못해서 벽이라는게 생긴다. 나는 항상 그 벽을 깨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벽이 어떻게 만들어진지에 대해서 먼저 이해하는 게 선행되어야 하겠고… 그리고 정말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면 벽을 깨야 하겠지.

개인적으로 쿨한관계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 ‘쿨’은 서로에 대해서 믿지 않고 개입하려 하지 않는거고 더 이상 다가가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누군가와 같이 하려면 그 사람의 삶에 어느정도는 개입해야 하지 않겠나.

 

박정훈씨

 

“87년 프레임에서 벗어나야…10년 후 대중의 정치적 목소리 커졌으면”

 

Q. 개인적인 이야기는 많이 했고, 이제 대선 이야기로 넘어가볼까.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을 것 같다. 대선판에서 좌파들이 뭘 해야 할까?

반드시 이번 대선에 진보좌파후보를 내야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적극적 역할을 해야한다.

 

Q. 노+심이 있는 진보정당추진위원회와 같이 할 생각은 있는가?  

절대 없다. 통진당 혁신파는 통진당 사태의 책임자, 그리고 진보 운동 자체에 대한 가해자다. 진보 혁신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혁신이라고 보여준 건 정치공학적인것밖에 없고, 정작 중요한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내용은 없다.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서라도 진보신당에서 진보좌파 후보를 내야한다.


Q. 하지만 진보신당의 역량 문제도 있고, 출마 자금이나 선거운동 비용을 마련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지금 박근혜를 막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과거의 방식으로 막으면 안된다. 87년 프레임 속에 갇혀있는 민주/반민주 구도를 깨야한다. 지금은 97년도의 신자유주의 문제도 있는  상황이다. 야권연대가 알맹이가 없는 박근혜 반대로 87년 체제를 지연시키고 있다고 본다. 박근혜는 좌파적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Q. 솔직히 독자후보를 내는 건 지방선거당시의 노회찬 후보를 생각하면 조금 두렵기도 한 일 아닐까? 그 때 야당 패배의 원인을 고스란히 노회찬과 진보신당이 뒤집어 쓰지 않았는가.

87년부터 계속되었기 때문에 이런 논란은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약에 우리가 독자 후보 내기를 포기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몰라도, 그것도 아니지 않는가. 어쩌면 이번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많은 진보좌파들은 어쩔 수 없이 민노당 후보를 비판적 지지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좌파적인 전망을 이야기하는 후보를 낼 수 있다.
 

Q. 학생운동권은 이번 대선을 어떻게 기회로 삼아야 할까. 청년대선캠프도 대선을 기회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 만든 조직 아닌가.

청년유니온의 김영경 전 위원장이 민주당으로 간 건, 청년유니온 또한 새로운 세력를 만드는 것이 아니가 기존 정치권 안에서 움직이겠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진다. 나는 이런 흐름에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좌파들이 20대를 조직하고 세력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존 좌파운동과도 거리가 있다. 기존 좌파운동은 대학생들이 노동자 운동에 복무하는 형식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Q. 청년대선 캠프도 대선을 맞아 좌파가 20대를 조직하고 세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인 것 같다. 청년대선캠프에서 정책연구소장을 맡고 계신데, 청년대선캠프가 내세울 수 있는 정책 공약은 무엇인가?
 

일단 기본축은 ‘급진적인 최저임금 상승’(생활임금), ‘노동시간 단축’, ‘기본 소득’. 이 세가지다. 이 세가지 정책이 이뤄져야만 생활 전반에 대한 불안이 해소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스템 하에서 청년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고용할당제 같은 정책 시행해봤자 얼마나 취업이 되겠는가?

Q. 너무 급진적인 정책들 아닌가. 솔직히 최저임금 만원이나, 기본소득 드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같이 들린다. 이런 정책공약을 보고 좌파들은 너무 근본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고립과 대중들로부터의 비난은 좌파들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난을 감수하고 사회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수행하는 게 좌파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좌파가 향후 10년안에 한국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Q. 능력있는 좌파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

좌파들이 자본과 언론 같은 일체의 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사회가 이야기하는) ‘능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사회에 대한 근본적 대안과 슬로건을 만들 필요는 있다. 비전이 단순히 ‘사회주의’ ‘반 신자유주의’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되지 않을까. 구체성을 가져야 한다.  금융위기 속에서 자본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주택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박정훈 고함20 기자 (왼쪽) 박정훈 청년대선캠프 정책연구소장 (오른쪽)



Q. 차기 대통령이 좌파가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그들에게도 기대는 있는가.

별로 기대하는 바는 별로 없지만, 87년 체제를 종식시켰으면 한다. 구태의연한 민주/반민주 구도를 없앴으면 좋겠다. 지금 선거판에 과거의 유령 두 명과 이명박의 그림자만 있지 않나. 선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이렇게 하고 있다면, 이후에는 이전 정치에 대한 종식과 미래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할 것 같다.
 
 

Q. 지금은 진보신당 청학위와 청년대선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선 이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일단 청년 세대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 그 다음에 지방선거를 준비해서 20대들이 대거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병역거부를 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에서 금기시 되는 문제에 대해서 대중운동을 벌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20대들을 조직하고 세력화 시키고 싶다.

 

Q. 가장 궁금했던 점 한가지를 묻고 인터뷰를 마치겠다. 정훈씨가 하고 있는 운동의 목표는 대체 무엇인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박하게도 고함20을 20대 대표 언론으로 만드는 것이다, 분명히 나보다는 목표가 클텐데?

인민 대중의 혁명도 꿈꾸지만 (웃음) 일단 향후 10년 내에 누구나 정치 참여를 할 수 있고, 누구나 자기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 그러기 위해서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가 삶이 안정되어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고 정치 참여에 대한 여유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외 알바 때문에 동아리 못한다거나, 차비가 없어서 집회에 못 나가거나 이런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의 목표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방식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겠지만. 앞으로도나는 글로써 고함을 칠 것이며 그는 거리에서 확성기를 들고 고함을 칠 것이다. 

 

대학생 사람연대 – 2005년 포이동 판자촌에서 활동하던 사회당 학생위원회 학생들이 저소득층 공부방과, 장애아동 주말학교를 만들자고 결의한 후 봉사활동단체로 시작했다. 이들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소외된 자들의 ‘자립’을 위해선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연대’라는 슬로건으로 대학생 사람연대라는 하나의 정치운동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현재 전국에서 100여명의 학생들이 활동하고 있다. 박정훈씨는 2009, 2010년 2년 동안 대표를 지냈다.

청년대선캠프 – 박정훈씨의 소개말 “많은 곳에서 청년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실제 청년문제를 해결할만한 후보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가 직접 출마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나이도 부족하다. 청년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없으니 청년들이 직접 대선을 치러야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주요 활동목표는 20대 정책의제를 급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각 부분에서 실태조사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낼 것이다.”  http://www.youthpresidentca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