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공중파 뉴스에 씁쓸한 장면이 방송을 탔다. 한 전문대학의 교수가 학생의 면접을 에스코트 해주는 모습이었다. 해당 대학의 학장은 학교에서 마련한 차로 면접장까지 학생을 ‘모셔다주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다른 교수는 할당받은 기업에 찾아가 학생의 취업을 ‘읍소’한다. 신입생을 유치하러 찾아간 고등학교에서 심지어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교문에 ‘교수 출입 금지’라는 종이가 붙어 있다. 뉴스의 제목은 “취업률이 실적…’세일즈맨’이 된 지방대 교수들”이었다.

‘교수’라는 직업은 사회에서 존경받는 명예로운 직업의 하나였다. 그런데 무엇이 지방 대학 교수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든 것일까. 무엇이 교수들을 강의실 연단 밖으로 밀어낸 것일까. 바로 취업률이다. 취업률이 대학이나 학과의 존립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정부가 벌이는 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이 차지하는 비율은 20%에 달한다. 다른 항목보다 높은 수치다. 취업률이 낮다면 대학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과 학자금 대출 제한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대학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취업률로 학과 평가를 시행한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구조조정 될 수도 있다. 

출처 ; 서울신문

 대학에서 취업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그동안 수많은 논쟁과 논란이 있어 왔다. 교육의 전당이어야 할 대학이 취업의 전당으로 변화하는 것과 관련된 사회문제가 끊이질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문제를 이슈화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대학 사회 내에서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부 또한 대학을 평가·지원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고민 없이, 집계와 비교가 쉬운 취업률만을 잣대로 삼고 있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교육의 현장에서 일어난다. 실질적 교육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들이 주고받는 교육이 타격을 받는 것이다. 취업 알선과 신입생 유치로 바쁜 교수가 수업준비와 연구에 집중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교육자인지, 학생을 끌어오고 또 보내는 세일즈맨에 불과한지 직업적 정체성을 겪을 수도 있다. 

지난 8월 말, 한 지방대학의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 충원과 취업률 문제로 과중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한다. 철학 없는 성과 위주의 교육정책이 판을 치는 사이, 정부와 대학 그 위계질서의 가장 맨 끝에 서 있는 지방대학교수들의 한숨은 늘어만 간다. 교육의 현장에서 누군가는 오늘도 연구 서적대신 취업률 그래프를 보며 머리를 뜯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