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18일, ‘한글날 공휴일 추진 범국민연합’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한글날 공휴일지정 국민청원서 전달식과 기자회견을 갖고 한글날을 공휴일로 재지정할 것을 촉구했다. 5만8105명의 서명을 받은 청원서에서 한글날연합은 “다른 나라에서 글자를 공휴일의 근거로 삼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한글날 공휴일 지정은 세계적으로 더욱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 ‘트위터 대통령’이라 불리는 이외수 씨도 ‘국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한글날은 반드시 공휴일로 제정되어야 합니다’ 란 트윗을 했고, 이는 광범위하게 리트윗되고 있다.


‘한글연대 서명’이나 ‘이외수씨의 트위터’로 보아 많은 사람들이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는 것에 대해 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글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아는지 물어보는 질문에서는 실망스런 수치가 나타났다. 이번 문화관광부에서 조사한 결과 한글날이 언제인지를 아는 국민 수가 64%로 나타났다. 이는 2009년도 88.1%보다 24.1%p 감소한 수치이다. 이전보다 한글날에 대한 인식들이 점차 떨어지는 걸 확인 할 수 있었다. 한글날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감소되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한글날은 왜 중요한가요?





한글날은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에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고 적힌 것을 바탕으로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제정하게 된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66돌이다. 처음에 세종이 창조 할 때에는 이 글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했다. 취지는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하는 문자로서 만들었다. 당시에는 중화 주의가 팽배해 있던 터라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주로 부녀자들이 사용했다고 ‘암클’이라고 불렀다거나 아직 한문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나 쓰는 글이라고 ‘아햇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개화기에 이르러서 한글은 재평가를 받게 된다. 학자마다 차이는 있지만 권영민(서울대 명예교수)는 “개화계몽 시대에 이뤄진 국어국문운동은 전문적인 연구자들이 규범과 그 이론적 기반을 확립해 나간다.” 고 주장한다. 국어국문운동의 선구자였던 주시경 선생은 국어 국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언문일치를 시켜 민족 정체성 확립을 외쳤다. 이로써 국어가 지닌 민족적 독립성과 특수성을 강조하고, 언어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독립과 발전에 기초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국문운동이 민족을 결집시키며 확장되면서 자주독립의 근간이 되었단 것이 교수의 의견이다.


한글날은 일본에 민족말살 정책에 의해 한때 사라질 뻔 했다가 우리가 지켜 낸 ‘우리 고유의 언어’라는 점도 중요하다. 현재 한국어는 지구상에서 쓰는 수천가지 언어 중 13번째의 순위를 차지 할 정도로 높다. 한글날이 중요한 데는 그런 복합적인 의미들이 숨어 있다.

C : 네이버 캐스트
 





한글날은 공휴일이 되어야 한다.




이번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에 관해 9일경 문방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이나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의 대표발의로 다시 국회에 상정될 거라 전해졌다. 여야 간사가 법안 통과에 매우 긍정적인만큼 적어도 다음 년도에는 한글날이 공휴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년도에도 한글날을 맞아 준비는 성대하다. 최광식 문화부 장관의 주관 아래 한글날을 전후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를 한글주간으로 정하고 ‘한글, 누림 누리다’를 주제로 세계인이 한글을 함께 나누며 누릴 수 있는 120여 개의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한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한글날 공휴일 지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찬성 여론이 2009년 68.8%, 2011년 76.3%, 2012년 83.6%로 갈수록 커져가는 만큼 한글날이 공휴일이 되었으면 하는 열망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여론을 받아 
한글날 공휴일 지정 범국민 연합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얻게 될 문화 가치는 잃게 될 노동가치보다 많으며 4조 9066억 원의 경제유발효과를 발생시켜 내수경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글날 연합의 이대로 상임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글은 우리겨레의 문화재고 보물이라며 한글이 빛날 때 나라도 겨레도 빛났다.”고 했고, “한글로 인해 우리 자주문화가 꽃피었고 경제도 그 바탕위에서 발달했다.”는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