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가을 하늘 아래, 이루마의 ‘love me’를 들으며 여자 친구를 떠올리는 행복한 남자가 있다. 뭐가 이렇게 평범하냐고? 그렇다. 평범한 이 남자, 여느 23살처럼 여자 친구를 열렬히 사랑하고 훗날 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열심히 경험하고 배우고 싶어 한다. 시각장애인이 아닌 인간 채영찬, 대학생 채영찬을 파란 캠퍼스에서 만났다.


-간단히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네, 저는 현재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채영찬이라고 합니다.

-끝인가요?

네.(웃음)

-그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지금은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이예요. 4학년 올라가기 전에 저한테 필요한 공부나 활동 들을 하기위해서 휴학 중에 있고, 조금 쉬면서 하고 싶은 일도 하면 지내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쉬나요? 이를테면 취미라고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나요?
취미는 뉴에이지 음악 듣는 거예요. 음악을 들으면서 여러 가지 앞으로의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구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해요. 자신감이 필요하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을 때,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게 하는 조용한 곡들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새로운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뉴에이지곡은 뭔가요?

제일 좋아하는 뉴에이지는 이루마의 러브미라는 곡을 제일 좋아하고, 유키구라모토, 스티브 바라캇도 좋아해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노래를 들으면서 미래를 상상하신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지금 상상하고 있는 장래희망은 무엇인가요?
남들처럼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 이런 건 딱히 없어요. 규격화 되어있는 장래희망이랄 건 없고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특수교육)와 연관해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교육에 힘쓰는 일, 나중에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쉽게 말해서 특수교사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교사가 되어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다른 위치에 있을 때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특수교사로 자리 잡기 이전에 어떤 것을 익히고 쌓고 경험했을 때 장애 아이들의 자아실현,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까 탐색하고 있는 단계예요. 지금 나이가 23살인데, 뭔가를 너무 일찍 결정하면 거기에 안주할 수 있고 다른 것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것보다 내가 이 길을 갔을 때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고민하고) 많이 경험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생각이 더 커요.

-혹시 특수교육을 하기 전에 꿈꾸던 것이 있었나요?
중학교 때는 국선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억울한 일을 겪었으나 그 일을 해결할만한 여건과 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법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교사와 변호사 사이의 괴리가 큰데요, 바뀌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누구든지 그런 계기를 학창시절에 한번쯤은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한사람의 장애인이고 어렸을 적에 장애학생으로 지내면서 특수교육을 받았죠. 저한테 가르침을 주시고 열심히 살 수 있게 해준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나도 장애가 있는 아이들에게 교육으로 길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창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데 채영찬씨를 애타게 찾는 전화가 울렸다. 핸드폰을 살펴보니 수신자의 이름이 이상하다. ‘튤립’이라.

-전화 오는 것 같은데요? 튤립이에요.
하하(큰 웃음) 여자 친구는 꽃이니까. 다른 애들이 봐도 다들 소리 질러요.(웃음)

-우와 좋겠다! 여자친구 얘기 좀 해주세요. 어떻게 만났어요?
이상형이 막연하게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요, 제 이상형을 만난거죠(웃음). 같은 학과 친구예요.
 

-그러면 지금은 정말 이상적인 상황인 거네요.(웃음) 데이트할 때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어떤 사람이든지 연애를 할 때 한쪽은 쫓아다니고 한쪽은 받아주는 쪽인데 제가 많이 쫓아다녔어요.(웃음) 가장 힘든 건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는 일인데 장애인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에요. 남들과 결과적으로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투자하는 것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해요.  남들은 십분 내에 100가지를 얻는다고 하면 장애인들은 그 100가지를 얻기 위해서 백분, 천분의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거죠.

-예를 들면 어떤 상황이 있을까요?
영화를 본다고 했을 때,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은 영화를 보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겠지만 장애인들에게는 일단 만나는 것에서부터 비장애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 줘야하는 상황이 발생해요. 영화티켓을 끊고 자리를 찾고 화장실을 가는 것까지. 하지만 그런 상황을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만들고 싶을까요? 안 만들고 싶죠, 당연히.

-그래서 특별히 노력한 것이 있나요?
저는 뮤지컬을 보러가기 위해서 일일이 답사를 다녔어요. 내가 동선에 익숙해져있어야 그 사람을 만나서 일반사람처럼 똑같이 편하게 다닐 수 있으니까. 일단 동선을 익혔죠. 어디에 내려서 어떻게 가야 빨리 갈 수 있다 하는 것들. 그렇지 않으면 같이 헤매야 하니까요. 요즘은 안 그런데 예전에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데이트답사를 다녀왔어요.

-우와, 완전 감동인데요? 그분은 그 사실을 아셨나요?
나중에 알았죠.(웃음)

-그 사실을 알고 뭐라고 하던가요?

어메이징이죠.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지금 여자친구가 비장애인인데, 비장애인을 만나게 됐던 계기가 있었나요?
가끔 비장애인 여자친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는데 그냥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솔로로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나도 힘들고 상대가 너무 힘들 것이다, 그러니 일에 미쳐서 지내자’하고 생각한거죠. 그런데 감정이라는 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니까요. 좋아하게 된 걸, 관심이 생기는 걸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도와주고 조언도 해주는 사람이 되려고 했었는데 그 감정이 깊어졌어요.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내가 장애인이라 부족한 점이 있지만 여자친구를 힘들게 하지말자, 더 노력해서 일반적인 것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받을 수 있게 하자’로.
 사실 장애인으로서의 20대뿐만 아니라 일반 20대에게 있어서도 연애가 (20대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요. 이게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잖아요.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장애인이 연애에 대해서 고민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오잉?’ 이렇게 생각한단 말이에요. 하지만 장애인도 사람이에요. 연애, 결혼이라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장애인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얘기인데,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아직 1차원적인 시각에서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흥미롭다고요? 어떤 점이 흥미로운 거예요?
‘장애인들을 얼마나 올바르게 바라보고 있고 자신이 얼마나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생각해 봤나요?’ 이런 주제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도 좋을 것 같아요. 20대에게 있어서 연애가 큰 화두잖아요.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애인 대학생들도 많이 고민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와 닿는 게 가장 크니까 저는 제 전공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요. 현재 장애아동의 교육에 대해서 관심이 부족한 것 같아요. 특수교사를 뽑는 과정에서 그 숫자도 턱없이 부족하고 특수교사가 교육 현장에 많이 배치, 충원되어야 하는데 정원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대선후보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그들이 소수자,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복지를 제대로 시행하고 싶다면 장애, 소수자들의 자립을 위한 교육에 관심을 보이고 관련 정책을 펼쳐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