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듣기만 해도 참 아슬아슬한 일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늘 경계에 서 있다. 스마트폰과 sns로 사람들과 언제 어느 때건 연락을 하려는 소통의 욕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로 연결된 사회를 탈출해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조용한 카페를 찾아가서 혼자 책을 보거나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늘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여행을 하며 해방감을 느낄 때는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어하기도 한다. 때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다이어트 생각이 나면 고개를 단호하게 저으며 음식을 밀어내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성을 닮은 곳이 있다. 바로 부암동이다. 서울시 종로구 소재 부암동은 아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내조의 여왕’, ‘찬란한 유산’ 등 유명 드라마 촬영지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동네는 단순히 드라마 촬영지라는 문구 하나로 포장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매력을 갖고 있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1020, 7022, 7212 버스를 타고 ‘부암동주민센터’에서 내린다면 제일 먼저 ‘여기가 정말 서울이 맞나?’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도심 속 시골’ 이라는 별칭 그대로 시간이 여기서만 그대로 멈춰 버린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창의문과 그 아래 허름하지만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는 골목길, 부암동에 거주하거나 작업실이 있는 작가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진행하는 <부암동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까지. 잠시 서울을 떠나 그 동안 꿈꿔온 낭만을 체험하러 여행을 온 기분이 들 것이다.



                                                    <주택 문가에 버젓이 자리잡은 미나리냉이꽃>



야생성을 품고 있는 곳, 부암동

여기까지는 이미 많은 언론과 사람들을 통해 소개된 내용들이다.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동네 주민만이 알 수 있는 부암동의 특징은 바로 ‘야생성’이다. 늘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에 가거나, 또는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엔 어김없이 고양이들과 누렁이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맴돌곤 했다. 사람이 특히 많은 주말 저녁에 카페들이 몰려 있는 부암동 주민 센터 주변을 거닐다 야생의 냄새를 당당하게 풍기고 다니는 누렁이들을 만나면, 그 녀석들이 빤히 쳐다보는 당돌한 눈빛과 화려한 조명 아래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이루는 묘한 대조(對照) 에 끌리게 된다.


부암동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식물들도 때 묻지 않은 야생성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척박한 아스팔트 틈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쏙 내밀고 있는 미나리아재비 꽃의 당돌한 자태를 보고 있자면 인간이 세워놓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무색함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드나드는 문가에도 슬쩍 발을 들여놓은 미나리냉이의 엉뚱함을 보면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보이는 서울의 야경>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누렁이>


경계의 아슬아슬함, 그 묘한 매력의 진원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하는 주택가의 골목길도 경계의 아슬아슬함을 잘 보여준다. 자하문터널입구에서 내리면 바로 맞닥뜨리는 경기슈퍼 옆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면 금세 또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그 오르막과 내리막 사이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주택들의 비정형성은 부암동의 또 다른 매력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바쁜 길가와 멀찍이 떨어져 있는 주택가의 골목길들은 그 자체로 잔잔하다. 부암동에서 2년째 거주중인 서유진 씨(여․21)도 “서울의 다른 동네와 달리 분위기가 번화하지 않고 조용해 주택가로 좋다“고 말했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매력을 즐기면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가면 남산 타워를 중심으로 서울의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낮에 보았던 무채색의 도심 풍경과는 또 다른 면모의 야경을 보고 있으면 잠시 여행을 온 기분에서 해방되어 도심 속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도심의 불빛 아래 시비에 새겨진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읽다 보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시인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바람에 어쩐지 입맛이 씁쓸해진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 언덕을 내려오면 다시금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페와 갤러리를 마주하게 된다. 현대 문명의 환한 불빛 아래 주위를 둘러보며 잰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은 또다시 누렁이와 미나리꽃이 있는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야생성의 경계를 넘나든다. 우리도 소통의 욕구와 개인의 자유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계속한다. 이러한 우리네 특성을 닮은 부암동,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이다.



                                          <경기슈퍼에서 위로 올라가는 골목길>




                                                     <골목길에 피어 있는 미나리재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