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태어나고 자라서 누군가를 만나 서로 사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키우고 늙어가고 그리고 죽는다. 물론 이건 굉장히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인생여정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전통을 유지하기엔 너무나도 현대적이 되어버린 것일까? 점점 많은 젊은이들이 새로 가정을 꾸리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 일명 삼포세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특히 20대의 결혼은 점점 드문 일이 되었다. 현재 평균 결혼연령은 여자 약 29세, 남자 약 32세로, ‘서른 넘은 노처녀, 노총각’이란 말은 이제 지난 시대의 유물이나 다름없다.

 순진했던 건지 멍청했던 건지, 나는 꽤 최근까지도 “둘이 사랑하면 단칸방에서 살아도 좋지 않을까? 별 직업 없어도 둘이 적게 먹고 적게 쓰면……” 라는 말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입 밖에 내서 하는 여대생이었다. 지금은? 솔직히 누가 무슨 죄가 있어 돈 한 푼 못 버는(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못 벌) 나랑 결혼을 해야겠나, 슬픈 마음으로 앞날을 묵념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어느 주말 아침, 사촌오빠가 곧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니, 결혼이라니? 나보다 고작 2살밖에 더 먹지 않았는데, 무슨 수로 결혼을 하는 걸까? “혹시 사고, 아니, 아니. 축복으로 아기가 생겨서?” 20대 중반의 연인이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런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단 개인적인 사고방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스물여섯살의 정수진은 나의 두 살 많은 사촌오빠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얼굴에 편한 스웨트 셔츠 차림은 얼핏 보아 그 또래와 다를 것이 없어보였지만, 그는 제 나이보다 하나 어린 신부와 결혼을 고작 일주일 앞둔 예비신랑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결혼을 해야 곧 어른이 되는 것이라 하였으니, 그는 지금 막 어른의 영역으로 그의 삶을 이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보통 사촌 사이란 기억도 나지 않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앨범을 펼쳐보면 꽤 친하게 손을 꼭 잡고 있다거나 같이 뒹굴며 노는 사진이 있지만, 사실은 데면데면하게 일 년에 많아야 한두번, 인사를 하고 나면 할 말이 없어 서먹한 그런 사이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린 어쨌거나 가족이 아닌가? 결혼 축하 인사를 미리 하고 싶다는 핑계로 만나서는, 대뜸 평생 나눴던 말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낸 동생에게 그는 과연 ‘어른’다운 면모로 관대하게 대해주었다.



Q.결혼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보통 결혼을 앞두고 도망가고 싶다거나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많던데요.
-감사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전 그런 걱정은 별로 없고, 오히려 기대가 많이 되네요.
 


Q.그것 참 좋은 일이네요. 신랑이 26세, 신부가 25세는 요즘 기준으로 굉장히 이른 결혼에 속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결혼을 하게 되셨나요?
-음, 전 사실 결혼을 생각하고 사랑이(부인 이름)를 만났어요. 원래 알고 있던 사이였기 때문에 한 2년 정도 지켜봐왔죠.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는 일단 ‘난 꼭 이 사람과 결혼을 해야겠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사귀자마자 계속 일부러 결혼에 대해 언급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경제적 상황이나 서로 가족들의 관계나 그런 것들을 솔직하게 얘기하길 원했죠. 청혼 반지도 굉장히 빨리 줬어요. 사귄지 100일에?(웃음) 사랑이도 처음에는 로맨틱한 연애를 꿈꿨는데, 제가 너무 그러니까 실망하기도 했다는데, 그래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오히려 둘 다 쓸데없는 감정낭비하고 재고 빼고 이런 과정 없이 빨리 결혼이란 목표를 향해 빠르게 올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드네요.
 


Q.아마 두 분 다 직장인이라는 것도 결혼을 결심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였겠죠?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사실 요즘 결혼을 하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경제적인 이유잖아요. 실제 결혼을 하는 데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 궁금합니다. 결혼 비용은 어느 정도를 어디에 쓰셨고 또 어떻게 부담하셨나요?
– 네, 저는 지금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수화통역사로 5년째 일하고 있고, 사랑이도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은행에서 일을 해서, 둘 다 일을 좀 일찍 시작한 편이죠. 특히 전 일을 더 빨리 시작한 편인데, 아마 저도 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구했거나 했다면 이렇게 빨리 결혼할 생각은 못했을 것 같네요. 일단 예복 대여비와 예식장 대여비, 신혼여행 경비처럼 결혼식 자체에 딸린 것들은 둘이 각자 500만원씩 모아서 1,000만원 정도로 해결했어요. 그리고 집은 약 1억 정도로 제가 했고, 가전제품이나 가구 같은 것은 그쪽에서 했지요.


Q.집을 하셨다는 건 샀다는 건가요?
– 아뇨. 당연히 아니죠. 제가 직장이 강서구라서 가까운 은평구에 전세로 구했어요. 나라에서 신혼부부를 위한 전세자금 대출이 있거든요. 이자가 4%정도밖에 안되고, 최대 10년까지 상환기한을 연기할 수 있어서 다행히 잘 이용했어요. 지금 제 경우는 그러면 한 달에 20만원 정도 이자를 내면 되고, 중간납부 수수료가 따로 없기 때문에 중간 중간 돈이 조금씩 모이는 대로 원금을 갚아서 이자를 줄여나가려고요.


Q.결혼 준비하면서 가장 부담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 두 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는데요. 하나는 일단 결혼을 진행하면서 느낀 건데 이건 저희 둘이 하는 결혼이 아니고 두 가족이 하는 결혼이더라구요. 결혼을 하면 이제 서로 가족이 되는 건데, 사실 원래 가족처럼 막 편하게만 할 수 있는 건 아닌, 그런 사이잖아요. 제일 난감했던 건, 만약에 사랑이네 쪽에서 저희 집에 선물을 보내면, 저도 뭘 또 보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런 거 안하기로 양쪽에서 딱 약속했는데…… 그렇다고 또 이런 거 보내지 마십사 말씀드리기엔 어쨌거나 예쁘게 생각해서 보내주신 건데 어떡해요. 그런 걸 매끄럽게 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집 때문이었는데, 집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서울 집값 너무 비싼 건 말할 것도 없고, 적당한 가격과 크기의 전셋집도 너무 없어요. 가격이 좀 싼 곳은 동네가 너무 후미지거나 집이 너무 좁거나 한 문제가 있구요. 집이 마음에 든다 치면 가격이 너무 비싸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적당한 걸 찾아도, 사실 아까 말씀드린 전세자금 대출은 100%가 아니고 70%정도만 빌려주는 거에요. 나머지 30%는 제 힘으로 구해야 해요. 사실 20대 중반이라면 아직 모은 돈도 많이 없고 보통 그럴 상황인데 저것도 굉장히 부담이 되지 않겠어요? 전 제가 모아놨던 돈과 아버지가 좀 보태주신 걸로 해결했는데, 솔직히 그래도 진땀이 많이 나더라고요. 왠지 장인장모님 뵙기에도 좀 면구스러운 그런 기분도 들고. 사실 집 못 구했으면 결혼 못했을지도 몰라요.

결혼을 앞둔 정수진, 김사랑 부부



Q.집 문제가 정말 큰 문제군요. 단칸방이 말이 좋아 단칸방이지, 사실 쉽지 않죠. 앞으로 만약 자녀가 생긴다면 집 문제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시겠네요. 말 나온 김에 자녀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
– (단호하게) 안 낳으려고요.


Q.정말요? 왜요?
– 사실 부모님들도 안 낳아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편이세요. 저희 둘도 안 낳기로 합의했구요. 뭐, 나이가 더 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꽤 오랫동안 아기를 가질 생각은 없어요. 일단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죠. 저희 둘 살기에도 사실 그렇게 안정적인 게 아닌데, 애가 태어나면 일단 고정적으로 드는 비용의 폭이 엄청 커질 거고, 글쎄요…., 교육비 이야기 들으면 낳을 자신이 없어요. 그리고 세상이 너무 흉흉하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들어요. 요즘 뉴스 보면 아이들한테 일어나는 범죄들이 너무 끔찍하잖아요. 전 사실 지금 맘으로는 아내 혼자 집에 있게 될 것도 너무 불안한데, 자식을 낳는 것은 더 큰 문제인 것 같아요.
 


Q.우리나라 출산율이 점점 더 많이 떨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나라와 각 지자체 차원에서 다양한 출산 장려 캠페인을 펼치고 있고요. 그럼 이런 것들이 수진씨에겐 별다른 영향이 없는 거네요?
– 그렇죠. 사실 먼저 결혼해서 아기 낳으신 분들한테도 여쭤보고 그랬는데, 그런 출산장려책들 다 별 거 없다 하시더라고요. 거의 둘째아이부터 지원이 되는데, 어떤 사람들에겐 하나 키우기도 벅찬 거고. 그리고 보통 일회성으로 장려금 얼마, 이런 식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정말 도움이 안된대요. 50만원 받자고 아기 낳는 엄마아빠가 얼마나 되겠어요?
 


Q.그렇군요. 첫 조카를 기대했는데 전 좀 아쉽습니다. 만약 나라에서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면, 어떤 게 가장 필요할 것 같아요?
– 일단 집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값이 너무 비싸요! 일단 그래도 살만한 집이 있어야 정착해서 새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건데, 문턱이 너무 높아요. 그리고 또 결혼준비하면서 이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생각한 건 생활자금 대출이에요. 혼수 말고도 신혼 살림 준비하면서 여기저기 돈 들 데가 많고, 또 한 번에 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월급만으로는 사실 좀 빠듯한 달도 있고, 앞으로 결혼해서도 당분간 자리 잡을 때까지는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찾아본 바로는, 딱히 신혼부부를 위해서 마련된 생활자금 대출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이 좀 생기면 굉장히 유용하게 도움을 받지 않을까 생각해요.




Q.그럼 이야기를 좀 틀어서, 결혼을 하게 되어서 좋은 점이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 아쉬운 점. 아쉬운 점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좋은 점은 일단 매일 매일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것?(웃음) 그리고 직장에서 퇴근하고 오면 혼자 안 있어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절 기다려준다는 게 정말 좋아요. (행복한 미소에 심술이 난 기자가 집요하게 아쉬운 점을 말하라고 다그쳤다.) 아쉬운 점은 아니고, 조심해서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이제 결혼을 하면 남 생각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남이었던 사람 둘이 만나서 새로 가족이 된 거니까. 그러니까 남 생각을 잘하고, 잘 배려해서 어쨌든 서로 잘 꾸려나가야겠다. 잘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이제 제 맘대로, 저만 생각해서는 안되는 거니까.
 


Q.곧 대선인데, 다음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음, 생각 많이 안해봤는데. 전 그냥 성실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관심 있는 대통령이면 좋겠네요. 주위에 그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결혼이 늦어지는 데는 하나의 원인이 아닌,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드러내는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한다. 거품이 많이 낀 결혼식, 기형적인 부동산 문제, 고용의 불확실성,  나날이 치솟는 교육비,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잔인한 분위기. 그 옛날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기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해서 둘이 함께 한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란 믿음, 그리고 그렇게 우리가 낳은 자식들 역시 우리보다 더 나은 미래를 누릴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호하게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스물여섯의 앳된 새신랑은 씁쓸하면서도, 가족의 입장에서 어쩐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면도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이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겠지만, 새 출발을 시작하는 이 성실한 젊은이의 바람대로, 끈질기게 변화의 한 귀퉁이를 들어 올릴 의지가 있는 이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