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받았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고객들의 편의를 해결하기 위해 텔레마케터들은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 단순하게는 주문을 받거나 위치를 알려주는 인바운드 텔레마케터부터 근처 알짜배기 땅이 있어 자세하게 소개해주거나 혹은 살림살이를 꿰뚫듯 대출을 권유하는 아웃바운드 텔레마케터까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업과 고객 간의 거리를 가깝게 해주는 유화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 이만,’ 오늘은 20대 텔레마케터 양수연 씨를 덕수궁에서 만났다. 

밝은 성격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양수연 씨는 국어국문학과를 휴학하고 중국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중국어 학원이 덕수궁 근처에 있는 까닭에 제 집처럼 덕수궁을 드나든다고 한다. 못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한국의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돈을 내고 있는 셈이라고. 덕수궁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 ‘덕수궁 VIP 입장권’같은 패키지는 없냐고 묻자 크고 호탕하게 웃어보인다. 그녀는 한국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휴학 중인 양수연이라고 합니다. 시청 근처에서 학원을 다녀 덕수궁에 왔는데, 날씨가 좋아서 기분도 좋네요.


Q. 저희 고함20에서 ‘그럼이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데 수연씨에게 20대 텔레마케터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어요. 텔레마케터란 어떤 직업인지요? 

텔레마케터란 말 그대로 전화 받는 사람이죠. 예를 들어 제가 일했던 피자 가게에서는 주문 받는 일을 했고 가전제품 상점같은 곳에서는 안내를 하거나 상담해주는 업무를 했습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고객에게 문의 전화가 왔을 때 기업을 대표해서 설명해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고객은 그 사람을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전화하는 거니까요.

 

Q. 텔레마케터 말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보셨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교했을 때 텔레마케터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다른 아르바이트와 텔레마케터를 비교하면 우선 편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계속 앉아있을 수 있고, 일단 몸을 움직이지 않고 말로만 해도 됩니다. 이런 점에서 육체적으로는 편할 수 있어요.

Q. 육체적으로는 편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정신적으로는 그렇지 않나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저는 전자제품 상점과 피자 가게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했습니다. 전자제품 상점에서는 하루에 6시간을 일하고 전화 50통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일하는 것도 꽤 수월했는데, 피자 가게에서는 5시간을 일했는데 110통을 받았어요. 이곳은 전화를 끊으면 5초 만에 전화를 다시 받게 돼있습니다. 5초를 넘으면 안 된다는 규율이 있어요. 아무래도 전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다보니 양이 많고 받는 사람은 한정돼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게 전화를 5시간동안 받으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죠. 지금 제가 하는 일(편의점)이 시급도 적은데 정신적으로 훨씬 편하죠. 텔레마케터는요,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근육통이 생기거나 이런 일은 없지만 다음날 울면서 일어날 수도 있어요.

 

Q. 어떤 일 때문에 울면서 일어나셨나요?

손님은 무언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화를 내고 전화를 끊는데 다음 전화를 받는 간격이 생기면 ‘내가 손님이라면 그럴 수 있을 거야’라고 이해하고 넘길 시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간격이 짧아지면, 예컨대 주문을 받아서 조리하는 곳까지 넘기는 후처리시간이 30초를 넘지 말아야하는 식으로, 다음 전화를 5초 안에 받아야할 땐 상황이 다릅니다. 더군다나 손님하고 싸웠을 경우 5초 안에 회복될 수가 없죠. 텔레마케터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으니까 무조건 친절하게 응답해야 드려야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반복이 되다보면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식의 전화를 하루에 110통씩 응대하다보면 다음 날 충분히 울면서 일어날 수밖에 없죠. 

Q. 텔레마케터에 대한 고충이 상당해보입니다. 텔레마케터들은 전화를 받을 때 굉장히 친절하던데요? 보통 어떤가요?

당연하겠지만 ‘불친절’이라는 평가 항목이 텔레마케터의 평가 지표 안에 포함돼 있습니다. 텔레마케터 평가 모니터링 요원이 매일 평가를 합니다. 통상적으로 제가 일했던 데서는 멘트를 15개정도를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친절하게 전화를 받지 않고 조금 무뚝뚝하게 받았다거나 아니면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등의 평가가 매일같이 표에 기재돼 나오게 됩니다. 한 주 정도는 수습기간이라 봐주지만 다음부터는 윗선에서 평가 항목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옵니다. 친절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겠죠.

 

Q. 평가에 대한 어떤 경제적인 제재와 같은 피드백이 있나요?

경제적인 제재는 없습니다. 하지만 텔레마케터가 주문을 잘못 받아 금전적인 부분에서 손실이 나게 되면 회사 반: 텔레마케터 반씩 배분해서 차액을 지불합니다. 앞서 말했던 평가에 따라서 재교육을 받기도 합니다. 텔레마케터 재교육 시간이 긴 건 아니지만 여기서 업무 중 필요한 일에 대한 지적을 해주시고 이렇게 보자면 분명한 피드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Q. 텔레마케터들에게 평가가 굉장히 민감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평가 항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멘트가 있어요. 그 멘트를 다 받았느냐? 전화를 친절하게 받았느냐? 존댓말을 했느냐? 등이 평가 항목으로 포함됩니다. 예컨대 ‘∼세요’는 반말이고 ‘∼입니다’는 존댓말이잖아요. 이 밖에도 말투를 제대로 했느냐? 등이 항목에 들어가게 됩니다.

 

Q.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왜 텔레마케터를 택하셨어요?

처음에는 단순히 친구의 권유였어요. “이 일 한 번 해볼래?”라고 말해서 얼떨결에 하게 됐습니다. 근데 막상 가니까 그렇게 말했던 친구가 “너 이제 죽었어.”라고 저에게 이야기하던 기억이 잊히질 않네요. 저랑 같이 텔레마케터로 일했던 친구는 상처를 많이 받는 친구였어요. 그날 손님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 싶으면 그 다음날 학교를 못갈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어요. 일급이 좋은 편이어서 일을 계속 하긴 했는데 친구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Q. 상처를 많이 받는 사람은 텔레마케터를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텔레마케터를 잘할 것 같다는 사람이 있나요? 혹은 같이 일했던 텔레마케터 중에 이런 사람은 정말 일을 잘한다는 사람이 있나요?

긍정적인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어요. 저 사람은 손님이니까 그럴 수 있어,라며 긍정적으로 한 통화가 끝났을 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잘할 수 있어요. 오히려 세심하게 손님을 배려하는 텔레마케터는 손님들한테는 좋겠지만 텔레마케터가 되기에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통화, 한 통화 배려하다가 손님이 한 번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 친절을 베풀었는데도 손님은 불친절할 때, 상처를 많이 받는단 말이에요. 한 통화씩 세심하게 신경쓰다보면 여러 통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가 없어요.

 

 

Q. 텔레마케터로 일을 한 게 1년이 넘는데 그 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한 번은 외국인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런데 통역해주시는 분들이 주말이라 아무도 출근을 안 하신 거예요. 그래서 영어로 “기다려주세요”라고 계속 반복하긴 했는데 마땅한 대처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참지 못하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감사했죠(웃음).

또 생각나는 게, 보통 피자의 기본 배달 시간은 30분 내외에요. 물론 더 길어질 때도 있습니다. 피자가 집까지 30분 안에 도착하기가 사실 쉽지 않아요. 만드는 데 15분, 배달하는 데 15분이 걸리니까요. 근데 전화를 끊고 30분이 지나면 고객들에게 전화가 옵니다. 30분이 지났는데 왜 피자가 오지 않느냐, 30분이 지났는데 혜택이 없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면 저는 배달하시는 분들이 불쌍하죠. 배달원들은 저랑 같은 20대고 이보다 더 어린 사람들도 많은데, 그 아들의 엄마, 아빠뻘 되는 분들이 전화를 하셔서, 30분이 늦었다며 회사에서 책임지라는 이야기를 할 때 고객들한테 굉장히 섭섭합니다. 배달원들은 피자가 늦어지면 혼이 날 테고, 오토바이 속도를 조금만 빨리하면 사고가 나니까요. 제가 만약 남동생이나 오빠가 있다면 그 일을 못시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좁은 공간 안에서 굉장히 답답할 것 같은데 텔레마케터의 일하는 환경이나 대우는 어떤가요? 식대는 있나요?

식대는 어디서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텔레마케터에게 공간이 좁다는 건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텔레마케터들이 말하는 범위의 제약이 크다는 건 좀 힘든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전화를 받았을 때 반드시 해야 할 멘트가 있고 이런 짜여진 멘트를 계속 하다보면 마치 제가 안내멘트를 반복하는 기계가 된 느낌이에요. 그렇게 십여 통 정도를 반복하다보면 ‘내가 진짜 기계가 됐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고객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서 ‘이건 이렇기 때문에 안 된다’는 식의 부정적인 통화가 긍정적인 통화보다는 훨씬 많고 정해진 멘트와 정해진 시간이 사람을 옥죄기 마련입니다. 대우는 좋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면 5분 정도 쉬라고 이야기하는데 화장실을 갔다 오면 그 5분이 끝나버립니다. 휴식 시간이 전혀 없죠. 통화는 기본적으로 2분 10초 안에 끝나야 합니다. 근데 통화가 2분 10초 안에 끝나려면 사실상 손님이 텔레마케터가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만 해야 합니다. 그래야 2분 10초가 맞춰져요. 2분 10초가 넘으면 윗선에서 말이 들어옵니다. 다음 전화를 5초 이내로 받아야한다는 것도 역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텔레마케터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텔레마케터는 손님들의 말을 들어주지만 정작 아무도 텔레마케터의 말은 들어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그날 일이 끝나고 다음 날이 오면 처음에는 의심이 듭니다. 사람한테 상처를 받으니까 지나치는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깁니다. 얼굴을 마주보며 일하는 직업의 경우 손님을 받아도 숨 돌릴 시간이 있어요. 하지만 텔레마케터에게는 그러한 게 없습니다.

 

Q. 손님들은 정작 텔레마케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제가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텔레마케터로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보통 텔레마케터들은 ‘내가 손님이라면 저럴 수 있을 거야’라고 손님들을 이해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손님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라면 누구나 겪는 일 중 하나겠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특수한 상황이라는 걸 고려해주었으면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손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손님의 얼굴을 한 번 그려봅니다. ‘이 사람이 화가 나서 이런 식으로 말하겠구나’라고요. 하지만 손님들은 텔레마케터를 그저 전화기인 줄 압니다. ‘이 기계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Q. 장래의 꿈과 포부는 무엇인가요?

저는 장래 한국어교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텔레마케터를 할 때에도 사람들의 발음을 잘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서울에서만 살다보니 방언을 듣기 어려운 환경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전화기 안에는 여러 지역의 말들이 섞여있죠. 휴학 중에서도 한국어교사에 대한 꿈을 놓지 않으려 열심히 하고 있고요, 지금은 내년에 들을 수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외국에서 혹은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일을 싶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 이 일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텔레마케터 등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정책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휴식시간은 정책적으로 보장이 돼야 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쉬어야 합니다. 9시간을 전화를 받으면 2시간은 쉬어야 합니다. 다른 서비스업은 사람의 얼굴을 면대면 으로 대하는 거니까 자기만의 시간이 있어요. 하지만 텔레마케터는 손님들과 전화로 계속 만나야하기 때문에 휴식시간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정신과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담?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 백화점 같은 데 가면 처음 시작할 때 인사 훈련이나 예절 훈련 같은 걸 받잖아요. 텔레마케터들에게도 업무의 시작과 끝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그러한 액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이 업무를 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라고 확실히 각인시켜주는 게 필요합니다. 손님이 나 자신과 통화를 하는 게 아니라 회사와 통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