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커피는 나의 액세서리였다. 나는 블랙, 이라고 대답할 때의 쾌감은 끝내줬다. 백 원짜리 두 개를 넣고 뽑아 먹는 커피의 맛은 꿀맛 그 자체였다. 버튼을 누르면 하얀 종이컵이 뽁 나와서 그 위에 쪼르르 나오는 뜨거운 물을 우리는 눈을 쳐올리고 지켜보곤 했다. 슈퍼 자판기 커피는 나와 그 아이의 집안에 굴러다니는 십 원짜리 동전 교환소이자 어른이 되는 마법과도 같은 곳이었다.’ -단편 소설「소녀시대」중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오늘은 70만 명의 인생을 하루 만에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지닌 날이다. 고등학교를 지나는 버스에 붙어있는 고사장 표시, 한 시간 늦어진 대학 수업까지 이미 이 통과의례를 거친 사회 구성원들은 이들을 배려한다. 12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유감없이 펼칠, 바야흐로 소림사 진검승부이자 스파르타의 성인식에 버금가는 날인 것이다. 이제 몇 시간 뒤면 무한한 자유와 방종이 그들 앞에 놓여있다. 오늘은 수능을 종착역으로 생각하는 열아홉들에게 보내주고 싶은 소설「소녀시대」(2012년 국민대학교 북악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와 소설의 작가 차소연씨를 만나보았다. 이 소설은 작가가 수능을 앞둔 어느 여름날부터 출발해 어른의 맛이 시나몬 카페라떼나 마키아또블샷 정도라는 것을 알게될 즈음 끝난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휴학을 해서 남들 (국문학과) 3학년일 때 2학년에 재학 중이며, 4학년 수업을 듣는 우를 범하고 있는 차소연이라고 합니다. (웃음) 안녕하세요.

Q. 소설을 시작했던 게 고등학교 3학년 때라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소연 씨의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굉장히 긴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국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고등학교 때는 이과생이었어요. 부모님이 진로를 정해주고 그 길을 따라서 계속 밟아왔습니다. 처음에 의대에 가라고 하셨고 의대가 불가능하다면 간호대라도 가라고 하셨죠. 좋게 이야기하면 모범생처럼. 부모님이랑 선생님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습니다.

Q. 부모님이 의대를 생각할 정도라면 굉장한 모범생이었나 봅니다. 국문학과로 전공을 정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우연히 학교 신문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신문도 만들고, 책도 읽고. 그렇게 지내다보니까 내가 여기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과에 맞아서 이과로 진학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 않더라고요. 이과 특유의 경쟁적인 분위기, 예컨대 높은 대학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향해 싸우고,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싫증났습니다. 그 시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나랑 안 맞는 것 같은데 왜 공부해야하는지 몰랐고, 흥미를 잃고, 학교가 싫어지고. 부모님은 여전히 내가 학교를 잘 다니는 줄 알았고. (웃음)

Q. 그런데도 ‘현역’으로 대학에 들어가셨어요.

수시 원서를 접수할 때 담임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르게 문과 계열로 지원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과 계열로 원서를 넣으려면 문과 계열 수능 점수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할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때부터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지고 나는 나대로 밑바닥까지 떨어졌고. 엄마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집안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나 자신한테 확신이 있어야 했는데, 나한테서 다들 돌아서니까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안서더라고요. 그때 일기를 보면, ‘나는 그냥 하루하루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의식하며 사는 것 같다’고, 쓰여 있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옳았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대학에 문학을 배우려고 왔는데 주위서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으니 (국문학과에서는) 취직이 잘 안 된다더라, 토익 점수는 몇 점정도 나오나,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가 나쁘다는 건 물론 아니지만 계속 현실과 마주해가면서 내가 여길 잘못 선택했나, 이런 회의감 때문에 휴학을 하게 됐습니다.

Q. 휴학하는 동안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

휴학을 1년 동안 계속 한 게 아니라 1학년 2학기 때 한 번, 그리고 2학년 2학기를 다녀야할 때 한 번. 이렇게 두 번 했습니다. 처음에는 휴학을 ‘그냥’ 했어요.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계속 다니고 싶지 않더라고요. 보통 휴학을 하면 목적이나 해야 할 것을 정하고 하잖아요. 근데 저는 휴학을 하고 정말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복학해서 다시 한 학기를 다녔는데도 이게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휴학을 하게 됐어요.

Q. 휴학을 끝마치고 지금은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요즘은 그럼 어떤 생각을 하면서 지내시나요?

요즘 생각하는 거? 없습니다. (웃음) 나 괜찮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 나 잘하고 있어 지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거대한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을 건데. 저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 이대로 가는 게 괜찮은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 얽매여있었다고 해야 하나. 여기까지 왔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돼, 뭐라도 돼야지. 이런 게 있었어요. 이제는 그냥 ‘못해도 된다’, ‘잘해도 좋지만 모든 것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그런 생각을 하는데 있어서 특별한 전환점이 된 계기라도 있나요?

두 번째로 휴학을 했을 때는 아빠와 같이 전국에 있는 명산에 다녔습니다. 첫 시작이 안산에 있는 ‘너구리산’입니다. 너구리 모양처럼 생긴 산이라 너구리 산이라고 부르는데 너구리산에 다니다가 안산에 있는 능선들을 정복해보자고 지도를 펼쳐놓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후로 전국에 있는 설악산이나 뒤에 있는 북한산도 올라가게 되었고요. 산에 계속 올라가다 보면 일정한 장소에서 보이는 NPC(Non Playable Character의 준말,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뜻함)들이 있습니다. (웃음) 일정한 시간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시는 사람, 지팡이 짚고 오는 할머니까지. 제가 산에 매일 올라가니까 되게 끈질기다고 알아봐주십니다.

거기 어떤 할아버지가 개 한 마리를 끌고 매일 올라오시더라고요. 한 달 정도 그 할아버지랑 같이 다니게 됐는데. 개도 늙은 개였고 정신도 온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안산에서 계속 살아오던 분인데 옛날에는 여기 지리가 어땠고 저긴 어땠고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셨죠. 근데 어느 날인가 할아버지가 산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오던 분이셨는데.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어떤 산악회 회원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뭔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할아버지랑 나는 (산에 가자고) 약속한 사이도,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혼자 산에 오르니 할아버지가 한 마디씩 던졌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생일이었는데 할아버지 아들이 자기 보러 안내려왔다든지, 아들 욕하고 그러다가 나중엔 그래도 이놈이 마음은 착한 놈이라고 칭찬하고 (웃음) 그냥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아, 아무 것도 아니구나. 나도 나중에 저 나이쯤 되면 누군가 나보고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을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허무한 게 아니라 그냥 인생이 원래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그러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서서히 변한 것 같습니다. 아예 확 바뀐 게 아니고.

Q. 2012년 국민대학교 북악문화상 소설 부문 (소설「소녀시대」링크:http://press.kookmin.ac.kr/site/main/view.htm?num=10792)에 당선됐다고 들었습니다. 시작이 고등학생 때라면 뭔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강력한 동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들과 관련된 소설인가요?

소설 「소녀시대」는 예전부터 조금씩 써놨던 걸 고쳐서 쭉 풀어놓은 것입니다. 근데 동기를 이야기하자면 너무 정치적일 것 같은데?

Q. (웃음) 이거 사실 되게 정치적인 인터뷰입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전 대통령이 자살한 이야기가 아주 짧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뉴스의 헤드라인이 일사 분란했다. 앵커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한 지 삼일 째 되는 날, 나란히 앉은 남녀 앵커 뒤로 백지에 그려진 그림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앵커의 목소리가 벌이 윙윙대는 것처럼 느껴져 나는 볼륨을 꾹꾹 눌렀다. 저 그림을 뭐라고 부르더라.’ -단편 소설「소녀시대」중

제가 소설을 시작했을 때가 열아홉 살 때, 정확히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지 3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생각하며 그에게 주고자 쓴 소설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꾸면 이 일과 관련이 됩니다. 내용도 전부 여기에 맞춰져 있고. 그게 너무 드러나면 안 되니까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조금씩 바꿨죠. 소녀가 바위에 올라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녀를 만나려고 바위에 올라갔는데 그 바위 위에는 아버지가 있는 거죠. 내가 죽인 사람을 만나려 올라갔는데 나에게 소중하고, 또 잊어버렸던 아버지를 보게 된다는 내용. 아버지는 사회에 의한 피해자인 동시에 내가 죽인 피해자와 같다는 의미입니다.

Q. 노무현 대통령은 소연 씨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잘 모르겠네요. 또 잘 몰랐었고. 그 사람에 대해 알거나 좋아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3년 동안 학교 신문부에서 읽었던 신문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였는데. 내내 그 신문들만 읽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대통령이 또 뭘 잘못했네?’ 라고 느끼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이제야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했죠. 근데 제가 열여덟 살 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있었잖아요. 그때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했습니다. 분명 이명박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잖아?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분노의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게 진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신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알게 되다가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노제에 무작정 찾아가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내가 잘 알던 사람도 아니었는데 엄청난 상실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기억하기에 중학교 때부터 무척 긴 세월동안 대통령 욕을 했습니다. 물만 엎질러져도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그때 엄청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 미안했어요. ‘내가 죽인건가?’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꽃을 나눠주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우세요?’ 라고 묻는데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처음 소설을 썼던 것 같습니다. 좀 오래 걸렸지만.

Q. 대통령 이야기가 나왔어요. 고의든 타의든 대통령들이 소연씨 삶을 많이 흔들어놨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대선에 마주한 후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세 후보가 비슷한 정책을 가지고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가 진보고 누가 보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세 후보가 모두 복지 정책과 경제 민주화를 내걸었죠. 하지만 실은 이것들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바뀌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공약으로 내세우고 이슈화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지난 5년 동안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펴왔다면 이제 정말 구태 하긴 하지만 서민을 위한, 노인 복지, 노인 연금 수단을 강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지가 기반이 돼야 다른 것들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경쟁에서 도태되면 낙오자가 되는 거니까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보면 찰리 채플린이 거대한 공장의 부품처럼 나옵니다. 죄를 짓지도 않고, 미치지도 않았는데 정신 병원에 끌려갑니다. 죄를 짓거나 미친 사람이 아닌 체계화된 경쟁 체제 속에서 맞춰지지 못한 사람이 정신 병원에 끌려가는 상징일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복지 시스템을 국가가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사회, 정해진 길로만 가라고 이야기하는 사회가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꿈이 없는 게 아니라 꿈을 버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의 복지, 사회 안전망 시스템을 튼튼히 하는 게 첫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Q. 요즘 느끼는 불안도 이와 관련이 될 것 같은데요? 

사회가 불안정하니까 거기서 오는 불안을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한 번 경쟁에서 낙오되고 도태되면 정신병원에 끌려갈 처지가 되니까. 난 미치지 않았는데 자의도 아니고 타의로 끌려갈 처지가 될까봐. 공무원 시험 경쟁률도 엄청나고 수능 때는 산에 가서 부모님들이 절도 하고 그러니까. 남들은 뭐 먹고 살지? 이런 고민을 한다지만 그 밑바탕에는 정해진 길로 못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그렇게 가르쳐왔기 때문에 그렇게 돼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하는 시간 늘리고, 잠자는 시간 줄이고, 딴 데 보지 말고, 다 같이 빨리빨리 잘 살아보자. 마치 새마을 운동과도 같은. 그래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백 번 양보한다면 이제는 그때의 잔재를 청산해야할 때가 아닌 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건 모든 사람들이 그럴 것 같네요.

Q. 앞으로 계속 소설을 쓰실 생각인가요? 앞으로의 꿈이나 포부 혹은 희망이 있다면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꿈과 관련된) 질문이 나올까봐 걱정하면서 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뭔가 하나를 정해서 살아가는 데 저는 없습니다. 제 문제점인 것 같아요. 원래 국문학과에 온 건 작가가 되고 싶어서 공부하려고 온 건데,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역량이 없다는 걸 느낍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죽기 전에 책을 한 번 내봤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게 희망인 것 같습니다. 뭔가 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결국 회사에 들어가서 먹고 살아야지 뭔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죽기 전에 소설책을 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