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 (자기 성격 테스트)라는 게 있다.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려주는 테스트다. 하지만 그런 테스트가 누군가의 정체성을 얼마나 정확히 밝혀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검사 하나로 파악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함으로써 자아를 찾아나가는 게 우선이 아닐까. 

김승창(24)씨는 일명 ‘자기를 찾는 남자’다. 그는 오지탐사대에 참여해 페루의 오지를 정복하고 해외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6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했다. 승창씨는 이런 다양한 활동을 모두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하는 승창씨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할 것이라 말한다.





Q. 일단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김승창이고 현재 나이는 24세입니다. 경제학과 소속이고요. 사회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Q. 대학을 다니면서 어떤 걸 하고 계시는지 구체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지금은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고요. 복수전공으로 사회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 경제학과를 들어가서 ‘경제학이 나랑 얼마나 상관이 있을까’ 란 생각을 했어요. 예전에 응급구조사를 지망했었는데 환경이 어려워서 포기한 경험이 있거든요. 예전에 라온아띠로 스리랑카를 다녀왔었는데, 현실의 경제학은 취업에 맞춰져 있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이런 다양한 고민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학은 정치와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아우르고 폭넓게 할 수 있는 학문이어서 흥미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Q. 앞서 이야기한 ‘라온아띠’와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좀 자세하게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큰 일을 하진 않았어요. 저학년 때는 술을 마시고 좀 놀기도 놀았습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제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단 마음이 생겨서, 휴학을 하고 해병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때 백령도를 가게 됐어요. 그 전에는 백령도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섬에 있다보니 사람도 없고 사회와도 떨어져 있게 됐어요. 거기서 천안함 사건을 맞게 되었습니다. 실종자 수색을 나가게 됐는데,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안좋은 일을 보다보니, 사는 게 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연평도 사건도 그러한 걸 고민을 많이 느끼게 했죠.

전역을 하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는 집 안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소들을 ‘구제역’ 때문에 죽여 묻어야했습니다. 아버지께서 한 마리씩 늘려 온 축사가 하루 아침에 무너져 재정도 안 좋아졌어요. 그때 짧은 인생에서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버려질 수도 있을거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과 마음을 모아 ‘한국 청소년 오지탐사대’에 신청을 하게 됐죠.




Q. 그런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처음에 면접 가니까 딱 세 명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해병대 출신, 산악인 출신, 체대 출신이요. 그런 전문가들을 보니까 기가 죽었죠. 서류 면접에서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서류를 통과하고 용기가 생겨 같이 준비한 사람들과 함께 체력운동을 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했습니다. 체력 면접을 한 뒤 대면 면접까지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2박 3일 산행 면접이 있어요. 모든 행동을 점수로 매기는데 이때 뭘 할 지 몰라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에는 통과해서 페루로 가게 되고 꿈 같은 시간이 보냈죠.




Q. 페루로 가셨군요. 산행이 만만치만은 않았을텐데요.



만만치 않았죠.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다 꿈 같지만 말이죠. 7000m짜리 봉우리에 으리으리한 안데스 산맥에서 만년설이 쌓인 산을 올랐습니다. 숨이 목까지 차는 고산병때문에 죽을 것 같단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게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중간 프로그램 중 비박이 있었는데 누워서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산을 갔다오니 모든 걸 할 수 있단 자신감을 얻었어요. 돌아와서는 처음으로 춘천 마라톤 완주도 해봤는데요. 그 전 같았으면 거들 떡도 보지 않았던 일들이죠. 그렇지만 나랑 상관없는 것들이 가져다주는 쾌감이 너무 좋았어요. 그후에 복학을 하게 됐죠.




Q. 해외 봉사 프로그램인 ‘라온아띠’를 다녀오셨다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라온아띠’와 ‘해피무브’라는 프로그램 두 개를 알아봤어요. 라온아띠는 6개월 단장기이고, 해피무브는 2주를 다녀오는 활동입니다. 둘 다 합격을 했지만 해피무브가 짧단 생각을 했어요. 결국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라온아띠를 가게 됐습니다. 처음에 1개월 동안은 국내에서 국제 관계를 배우면서 시각을 넓힐 수 있었어요. 교육 후에는 스리랑카로 가게 되면서 그곳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는 게 참 좋았어요. 그런 것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던 제게 오히려 아이들이 어른스럽고 스스럼없이 다가왔습니다. 그 외에도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요즘 웬만한 비싼 신발 한 개가 15만원씩 하는데 거기는 월급이 15만원이라 하더군요.




Q. 스리랑카에서 어떻게 생활 하셨나요?



일단 그곳에서는 5인 기숙 생활을 했고요. 카레를 먹고 야자수나 파인애플 같은 현지 음식들을 먹고 살았습니다. 인터넷과 TV 없이 문명과 떨어져 살았습니다. 거기서 주로 한 활동은 환경 캠페인입니다.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거였습니다. 그곳은 내전이 활발한 지역이라, 쓰레기통에 폭탄 부착 위험이 있어 쓰레기통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걸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제 생각에는 그런 점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서, 지적을 했었죠. 그랬더니 다른 분이 저를 질책했어요. ‘너희 나라가 환경 오염을 더 많이 시키는데 왜 우리나라를 질책하는 거냐고 물어보더군요.’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또 한번은 그 지역에서 마라톤을 열었어요. 제가 오랜만에 마라톤을 뛰어보겠다고 운동화부터 마라톤 복까지 쫙 빼입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현지 애들은 맨발로 나온 걸 봤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저도 신발을 벗고 달렸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
야겠단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이런 점이 제 자신을 좀 더 알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김승창(씨)에게 제 자신을 알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 같은 거죠. 저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하는 걸 하며 살수도 있죠. 장래에 집착했다면 금융 쪽에서 정해진 라인을 따라갔겠죠. 그러지 않고 많은 활동을 하게 된 건 경제학으로 평생을 먹고 살기에는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고,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단 가능성을 알게 됐기 때문이에요. 저에게 진정한 제 자신을 찾아나간다는 것은 제가 원하는 걸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과 제가 다른 게 그거라고 봅니다. 제가 불안해 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걸 못 할 수도 있단 거예요. 정말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고 그것들이 나중에 제 자신을 이루게 될 거라 생각해요.



Q. 혹시 여러 가지 활동에 도전할지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비생산 적인 것들을 해보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확실한 목표없이 불확실한 것을 해볼 줄도 알아야 한단 겁니다. 토익이나 자격증 같은 목표도 좋지만 많은 프로그램들을 탐색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지 말고 자기만의 계획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일이 100%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불확실해 지더라도 도전해보는 게 낫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걸어 겪게 되는 두려움이나 불안감 같은 것들을 조금씩 덜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Q. 정치권에 제안하고 싶은 정책 혹은 대선 공약이 있으십니까?



요즘 학생들이 수능 끝나고 성적이 좋지 않아 자살하는 게 흔합니다. 교육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항상 등수만 따지는 것이 대학에서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경쟁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다양성을 보장해줬으면 좋겠어요.



Q. 차기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뭔가 있으십니까?



아까 한 말의 연장선일 수도 있는데 남들과 비교하면서 좌절을 느끼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과 동반자가 되어 함께 할 수 있다는, 연대감같은 걸 느끼고 싶습니다. 말로는 통합을 외쳐도 사회에는 차별이라는 게 존재하는 게 사실이니까요. 그런 사회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